"반도체 수요 미친듯 좋다" 13만전자·58만닉스 근거는 '공급자 우위 시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창밖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SK그륩

‘13만전자와 58닉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가 연일 치솟으면서 증권가에서는 기록적인 목표주가를 제시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랠리’가 향후 6개월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11만원에서 13만원으로 올려 잡았다. 국내 증권사들이 제시한 목표주가 중 가장 높다.

하나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35만원에서 66%나 올려 잡은 58만원으로 제시했다. AI 시대 처음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 열려

업계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업계에서 이번 슈퍼사이클을 유독 반기는 이유는 AI 시대가 도래한 이후 처음으로 ‘공급자 우위’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한국 기업의 주가를 보며 자자들은 메모리 기업이 AI 시대 하청업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빅테크 자가 늘고 AI칩 수요가 폭증하면서 메모리 공급자의 힘도 커지고 있다.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건 수요자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PC 등 B2C 시장이 중심이던 과거에는 수요 예측이 비교적 쉬웠지만 이제 수요의 중심축이 대규모 자가 이뤄지는 AI 데이터센터로 옮겨지면서 ‘계단식 폭증’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공급 예측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자 메모리 업체들은 점유율 확대보다 공급을 조절하며 공동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PC 시대에는 수요자가 인당 한 개의 기기만 필요로 했다면 데이터센터 기반의 B2B 수요는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2026~2027년 DRAM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AI 데이터센터 중심의 대규모 수요 폭증 속에서 제한된 공급이 새로운 업사이클을 촉발하고 있다는 전망이다.

수요자의 성격이 바뀌면서 메모리반도체 ‘업의 본질’도 변했다. AI 시대에는 과거와 달리 ‘맞춤형 반도체’가 승패를 가른다. ‘선 생산, 후 주문’ 방식이 아닌 ‘선 주문, 후 생산’ 방식, 즉 고객사 주문이 들어오면 원하는 대로 반도체를 설계해 납품해야 한다. 수요 구조가 달라지면서 기술 경쟁력을 갖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더 이상 수요를 초과하는 비효율적인 자를 감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HBM 수요처가 늘어난 것도 한국 기업에는 호재다. 미국 반도체 기업 AMD는 최근 오픈AI, 오라클과 차세대 AI 반도체 계약을 발표했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시장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갖던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가 흔들리고 HBM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범용 D램 수요, 미친 듯이 좋다”

HBM 수요뿐만 아니라 구형 D램과 낸드플래시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첨단 메모리인 HBM에 웨이퍼와 개발력이 몰리는 동안 범용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한동희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범용 D램 공급 부족이 더 심화되면 HBM 가격 협상 시에도 공급자들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며 “범용 D램 가격 상승률이 기대치를 넘어서면서 상승 사이클 기간도 기존 예상보다 더욱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조짐은 각종 지표에서 엿 수 있다. 국내 기업이 주력으로 생산 판매하는 메모리는 재고가 별로 없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세계 D램 제조 업체의 평균 재고는 3.3주로 역대 최저치다. 2017~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당시 평균 재고(3~4주)보다 낮다.

메모리 가격도 상승세다. 범용 D램(DDR4 8Gb) 가격은 1월 1.4달러에서 9월 말 6.3달러까지 올랐다. 범용 D램 가격이 6달러를 넘은 것은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이다. 지난 9월 낸드의 가격도 10% 이상 뛰었다. 범용 D램의 응용처가 AI뿐만 아니라 일반 서버, 그래픽, 모바일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공급 부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범용 메모리 수요가 ‘좋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은 수요가 ‘미친 듯이’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트렌드포스는 2026년에도 범용 D램과 낸드의 가격이 분기마다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D램은 내년 1분기 5~10% 상승에 이어 2분기 3~8%, 3~4분기에는 0~5%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낸드 가격 역시 1분기 3~8%, 2분기 5~10%, 3~4분기에 0~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가 HBM과 더불어 AI 특수를 누리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센터장은 “기업용 SSD 수요만 양호했던 낸드 시장도 에이전틱 AI(Agentic AI) 시대 도래에 따른 추론 수요 증가로 수급이 크게 개선되는 중”이라며 “초기 데이터 세트만 크게 필요했던 학습용 AI 수요와 달리 추론용 AI 수요는 RAG(검색 증강 생성) 요구 증가로 신규 SSD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변동성도 지난 사이클보다 적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오픈AI가 이끄는 700조원 규모 초대형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등 빅테크 기업의 대형 AI 자가 예정돼 앞으로 3년은 국내 반도체 기업이 특수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3분기 업황 반등을 주도한 범용 D램의 가격 상승세가 4분기에 더 가파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범용 메모리의 본격적인 반등이 9월부터 시작된 만큼 실제 효과는 4분기 실적에서 더욱 뚜렷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1.81%나 증가한 12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3년여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SK하이닉스 역시도 올해 3분기 12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시장의 기대치를 웃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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