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옥수동도 평당 1억…역대급 규제 부른 서울 집값[부동산 서킷브레이커①]


“지금 내집 마련을 꿈꾸던 서울 무주택자들은 멘털이 거의 나갔다.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가 10·15 대책(‘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 직후 말했다.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 연휴 직전까지 서울 부동산은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없는 듯 달렸다. 명절 화제는 자연히 ‘집값’에 쏠렸다.

일명 ‘한강벨트’로 불리는 핵심지역 일부 단지는 올해 하반기에만 수억원 상승했다. 마포, 성동의 인기 아파트는 3.3㎡당 1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들 지역이 기존에도 비쌌던 강남권의 뒤를 추격하면서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결국 지난 9월 14억원(KB국민은행 기준 14억3621만원)을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보다 온건할 것으로 예상됐던 현 정부의 기조 변화는 그만큼 “시장 상황이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집값이 과열되면서 정부와 여권에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꽃이 10월 10일과 11일 사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지역으로는 서울, 연령별로는 20~30대 젊은층에서 여권의 지지율이 야권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책발표 전날 국무회의에서 “정보 왜곡을 통해 부동산 시장 교란이 일어나거나 비정상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부동산 시세조사 의심 사례까지 언급했다.

결국 정부는 시장 예상보다 강력한 대책을 내놨다.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 용산, 성수, 목동 등 ‘요주의 대상’만 포함된다고 인식되던 토지거래허가제의 범위는 이번 10·15 대책을 통해 서울 25개구 전역, 서울 인근 경기도 남부 지역까지 확대됐다.

정부는 선제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는 한편, 앞으로 보유세까지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이다. 내년 입주 아파트 물량이 급감하는 데다 금리인하도 앞둔 탓이다. 강남도 아닌데…‘3.3㎡당 1억’ 확산

이번 상승장 특징은 ‘비(非)강남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뒤 올해 초 시장을 달구던 매수세가 마포, 성동을 넘어 광진, 강동, 동작 등으로 번져간 것이다. 최근에는 도심인 중구와 재건축 호재가 있는 경기도 성남 분당구, 광명 집값도 급등했다.

일명 ‘한강벨트’ 인기 아파트의 경우 연초 대비 5억원 가까이 올랐다. 세대에 따라 한강조망이 나오는 동작구 ‘아크로 리버하임’ 전용면적 84㎡ A타입은 10월 10일 33억원 최고가에 계약을 마쳤다. 전용면적 84㎡는 공급면적 33~35평형으로 3~4인 가족에게 선호도가 높아 ‘국민 평형’(국평)이라 불리기도 한다. 즉 동작구 흑석동 ‘국평’이 3.3㎡(평)당 1억원에 달한 것이다.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 전용면적 84㎡는 올해 8월 29억원에 손바뀜됐다. 연초 약 23억5000만원 실거래 이후 5억5000만원가량이 올랐다.

2024년 11월 입주한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무려 1만2032가구 규모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청약 당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로서 수분양자에게 실거주 2년 의무가 있어 거래할 만한 매물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새 아파트의 미등기 상태가 지속되면서 통상적인 소유권 이전과 주택담보대출에 제약이 있었음에도 일부 조합원 입주권 등이 손바뀜되며 가격이 대폭 올랐다.

젊은 실수요가 많은 마포에서도 전용면적 84㎡ 타입 새 아파트가 3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마포 대장주로 부상한 ‘마포 프레스티지 자이’ 84㎡ E타입도 28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토허제·대출규제 극복한 매수심리

이 같은 지역에선 소형인 전용면적 59㎡ 타입조차 20억원대에 진입했다. 소형 구조가 잘 나와 인기인 성동구 옥수동 ‘e편한세상 옥수파크힐스’ 전용면적 59㎡ 타입은 10월 10일 23억8500만원에 거래됐다. 59㎡ 타입이 약 24평형임을 고려하면 이 역시 3.3㎡당 1억원 정도이다.

해당 타입은 올해 초 17억~18억원대에 거래되다 급격하게 가격이 올랐다. 특히 올해 6월 20억원을 돌파한 뒤에도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6·27 대책, 9·7 대책에도 시세가 오른 것이다. 강남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고 주택담보대출 한도 역시 6억원으로 막히면서 고가 주택 수요가 강남 인근 한강변 새 아파트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풍선효과’가 일어난 셈이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강남에 집을 산 젊은층의 대출 규모는 10억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도 “대출을 더 받을 수 있다면 강남으로 갔을 수요 일부가 성동으로 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규 매수주택 실거주가 어려운 갭투자 수요도 강북 한강벨트로 몰렸다. 10월 12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올해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서울 갭투자 의심거래 5673건 중 30~40대 매수 사례가 78%인 4430건에 달했다. 이들이 주로 매수에 나선 지역은 마포, 용산, 성동이었다.

경기도 지역 집값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9·7 대책이 나온 9월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경기도 분당구였다. 분당 외에도 광명, 과천 등 재건축 호재가 있는 서울 인접지역의 상승폭이 가팔랐다. 특히 분당은 9·7 대책에 포함된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본격화’의 대표 수혜지역이다.

분당에선 재건축 선도지구로 지정된 수내 양지마을 금호 전용면적 84㎡가 9월 20억원을 돌파했다. 6월 18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석 달여 만에 2억원 올랐다. 지역 공인중개사무소에선 “최근에 추가 대책 이야기가 나오면서 요즘 집값이 크게 오른 분당도 규제지역으로 지정된다는 말이 돌았다”며 “규제지역 지정 전에 매수를 하겠다는 문의가 더 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저렴한 지역까지 상승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영등포구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가격이 오르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나와 있던 매물이 다 빠졌다”며 “일부는 새 주인을 찾았으나 이제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매물을 거운 사례도 적지 않고 몇 개 없는 매물도 호가를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이 잡힐 방향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정부가 고용 안정 및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수도권 입주 물량은 더욱 감소하는 추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6년 수도권 입주예정 가구수는 11만1470가구로 올해 14만5237가구 대비 감소한다. 2027년 입주 물량은 10만5100가구로 더 줄어든다. 결국 정부는 ‘수요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10월 15일 부동산 대책 합동 브리핑에서 “현재 주택시장은 한강 인접지역의 시장 불안이 주변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글로벌 금리인하 기조와 수급 불균형하에서 주택시장으로의 자금유입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며 “주택시장의 불안을 조기에 차단하고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자본이 투자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