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한 거리에 낙서된 원피스 해적기/사진=연합뉴스
인도네시아 한 거리에 낙서된 원피스 해적기/사진=연합뉴스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Z세대가 주도하는 시위 현장에 일본 만화 ‘원피스’ 해적기가 등장하고 있다. 해골이 밀짚모자를 쓴 그림의 이 깃발은 이제 젊은 세대의 분노와 저항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NBC뉴스는 15일(현지 시각) “여러 나라에서 Z세대가 시위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은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상징을 통해 저항 의지와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네팔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 페루, 모로코 등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네팔에서는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로 촉발된 Z세대 시위가 총리 사임으로 이어졌고,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젊은 시위대가 집권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원피스 해적기가 공통으로 등장하며 세대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해적기가 처음 주목받은 건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열린 시위였다. 정부가 독립 80주년을 맞아 국기 게양을 독려했지만, 수도 곳곳에는 국기 대신 원피스의 해적기가 내걸렸다.

마다가스카르의 시위대는 해적기를 자국 문화에 맞게 변형해 공식 로고로 활용하기도 했다. 밀짚모자 대신 현지 전통 모자인 ‘사트로카 버킷 모자’를 씌운 형태다.

만화 원피스에서 주인공 루피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은 불의한 세상과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인물들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서사가 여러 언어와 문화권을 가진 Z세대 시위대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트리니티 칼리지의 이즈미 가츠야 강사는 “젊은 시위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오해받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한다”고 말했다. 불의에 맞서는 만화 캐릭터들의 모습을 자신들과 겹쳐 본다는 분석이다.

영국 브리스톨대 레이나 데니슨 교수는 “원피스는 40개 언어로 번역되고 영화·카드 게임·비디오 게임·넷플릭스 실사판 등으로 확장되며 전 세계가 공유하는 하위문화 언어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인공 루피는 ‘자유의 상징’이며, 해적기를 드는 것은 곧 그 가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마닐라 시위 시위대 깃발/사진=연합뉴스
필리핀 마닐라 시위 시위대 깃발/사진=연합뉴스
한편, 원피스는 해적단이 전설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일본 만화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1997년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5억 부 이상 판매되며, 단일 작가 작품으로는 세계 최다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