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글로벌 컨설팅사 헨리앤파트너스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 4분기 기준 헨리여권지수를 발표했다. 헨리여권지수는 여권 소지자가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 수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이번 조사에서 1위는 193개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싱가포르가 차지했다. 이어 한국은 190개국으로 2위, 일본은 189개국으로 3위에 올랐다.
반면 미국은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에 머물렀다. 가디언은 미국의 순위 하락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강화된 이민·여행 정책이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불법 이민을 표적으로 삼은 이 단속이 관광객,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으로까지 확대된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미국 여권 소지자는 180개국에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지만, 미국은 단 46개국 국민에게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상호주의 결여로 인해 브라질은 미국 국민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철회했으며, 파푸아뉴기니와 미얀마도 입국 규정을 강화했다. 중국과 베트남 역시 새롭게 확대된 무비자 대상국 명단에서 미국을 제외했다.
그 결과, 현재 미국보다 여권 파워가 높은 국가는 36개국에 달한다.
크리스티안 칼린 헨리앤파트너스 회장은 “지난 10년간 미국 여권의 약세는 단순한 순위 변동을 넘어, 세계 이동성과 소프트파워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개방성과 협력을 중시하는 나라가 급부상하는 반면, 과거의 특권에 안주한 국가들은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처럼 자국민에게 광범위한 여행 자유를 제공하면서 외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들은 최근 몇 년간 여권 파워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헨리앤파트너스는 미국 시민권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초강대국 지위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신호로,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서 이중 국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템플대 피터 J.스피로 로스쿨 교수도 “앞으로 더 많은 미국인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추가 시민권을 취득하려 할 것”이라며 “미국 사회에서 복수 시민권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유럽 주요국은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독일·이탈리아·룩셈부르크·스페인·스위스가 공동 4위, 오스트리아·벨기에·덴마크·핀란드·프랑스·아일랜드·네덜란드가 5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2015년 94위에서 올해 64위로 10년 만에 30계단 오르며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북한은 100위(38개국)에 머물렀으며, 아프가니스탄(106위·24개국), 시리아(105위·26개국), 이라크(104위·29개국) 등 중동 국가들이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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