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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나는 어쩔 수 없었지만 국민은 안돼”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의 내로남불 [핫이슈]

이은아 기자

입력 : 
2025-10-23 09:15:50
수정 : 
2025-10-23 10:28:47

뉴스 요약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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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의 발언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는 자신이 갭투자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을 받았고, 국민의 주거 문제에 대한 공감 부족으로 비난이 일었다.

정부는 투기 억제를 위한 정책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지만,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직자의 발언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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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모아서 집값 안정되면 그때 사라구요? 차관님은 이미 사셨잖아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게 바로 갭투자예요.’ ‘나는 했지만 너네는 하지 말라면 누가 말을 듣나요.’

이상경  연합뉴스
이상경 연합뉴스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 발언의 파장이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22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 차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렸다”면서 “당 최고위원이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 차관은 지난 19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지금 (집을) 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돈 모아 집값 안정되면 그때 사라”고 말했다. 10·15 대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주택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느낀 온도는 달랐다. 무주택 서민의 조급한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다. 책임있는 공직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기도 했다.

이 차관이 갭투자를 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논란은 확산했다. 이 차관 배우자는 지난해 7월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아파트를 33억5000만원에 샀는데, 잔금일 이전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해당 지역은 이번 부동산 대책으로 갭투자가 금지됐는데, 본인은 대책 발표 1년 전에 갭투자로 집을 산 것이다. 문제가 되자 이 차관은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집을 구매하면서 입주 시점 등이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전세로 살며 입주 시점을 조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같은 처지에 놓인 국민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 없게 됐는데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니 공감을 얻을 수 있겠나.

이 차관뿐 아니라 초강력 대책을 주도한 정책입안자 상당수가 고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 장·차관급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등 고위 공무원 102명이 보유한 아파트 103채 중 70%인 72채가 규제지역에 있을 정도다. 자신들은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해 놓고, 강력한 대출 규제로 청년과 중산층·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위 관료들의 가벼운 입과 부동산 내로남불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고위 관료들의 입에서는 ‘지금 집 사면 낭패’ ‘사는 집 아니면 다 파시라’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등의 발언이 쏟아졌지만, 그 말을 따른 사람만 낭패를 보게 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관사에 살면서 재개발 투자를 했다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 올렸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다주택 공직자에게 주택 처분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대신 지방 주택을 처분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강남에 집이 두 채였던 김조원 민정수석은 집 한 채를 매각하는 대신 청와대를 떠났다.

국민이 분노한 것은 이들이 비싼 집을 가져서가 아니라, 말과 행동 달랐기 때문이다. 다주택자가 되거나 갭투자를 해야만 하는 사정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직장 때문에, 자녀 교육 때문에, 부모 봉양 때문에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국민이 있다. 이들에게 투기꾼 딱지를 붙이고, 무주택자의 분노를 부추겨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

정부는 ‘투기 억제’와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솔한 발언과 과격한 정책을 내세워 시장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필패의 길이다. 집값 급등 국면마다 징벌적 과세와 규제지역 확대 등 27차례의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집값을 잡지 못한 채 5년 만에 정권을 내 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공직자는 말이 가진 무게를 새겨야 한다. 불신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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