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前 금빛 발하니…천둥, 폭우가 쏟아졌다
出자형 장식, 금실로 구슬 매달아…4C 최고 권력 상징 화려함의 극치
힘차게 나는 '천마도' 생생한 모습
세게 통틀어 13개 뿐인 순금 금관…국내 7개, 그중 6개 경주서 출토
K-컬처 진수, APEC 맞춰 특별전
1973년 7월 26일 경주 황남동 미추왕릉지구 제155호분(천마총) 발굴 현장. 오늘은 피장자의 머리맡 부분을 발굴하는 날. 지난 13일 바로 옆 80~90cm 떨어진 곳에서 금관을 장식하는 새 날개 모양의 금제 관식(冠飾·꾸미개)이 나온 터라 이제 곧 금관이 나오리란 기대감에 하루하루가 흥분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날 늦은 오후, 검붉은 흙더미에서 금빛이 발하더니 마침내 금관 끝부분 출(出)자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대가 그대로 적중한 순간. 4월 6일 발굴 착수 3개월여 만이었습니다. 조사단은 이 역사적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실측해 도면에 옮겼습니다.
금관은 내관과 외관이 분리된 채 발견됐습니다. 외관은 관대 위로 3개의 출자형 장식과 2개의 사슴뿔형 장식이 서로 포개진 채 나왔습니다. 장식에는 금판으로 세공한 반짝이, 영락(瓔珞)을 무수히 달고 곳곳에 금실로 반달 모양의 구슬, 곡옥(曲玉)을 매달았습니다. 지금껏 발굴된 신라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했습니다.
1차 수습을 마치고 무덤에서 금관을 들어 올리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조사단은 두려움에 금관을 내려놓고 급히 사무실로 피했습니다. 당시 경주에는 가뭄이 극심해 왕릉을 파는 바람에 그렇다는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여태 비 한 방울 없었는데 금관을 수습하는 날 폭우라니,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금관 출토 한 달여 만인 8월 23일, 이번에는 부장품 수장궤에서 믿기지 않는 천마도가 나왔습니다. 수습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백화수피·白樺樹皮)을 누벼 만든 말다래에 그린 2점(한 쌍)과 대나무를 얇게 깎아 엮고 그 위에 금동판을 입힌 말다래에 그린 1점 등 모두 3점. 금동판 말다래는 수장궤 윗부분에 노출된 탓에 썩고 삭아 그림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 아래로 겹쳐진 백화수피 말다래 중 아랫장을 들어내는 순간 조사단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선명한 극채색으로 힘차게 하늘을 나는 천마. "세상에 !…." 이런 물건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신라 천년을 통틀어 단 한 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천5백년 전 채색화 천마도. "저건 그때 나오면 안 되는 게 나온 거야" 훗날, 발굴을 지휘했던 김정기 조사단장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1971년 청와대는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세웠습니다. 1970년 준공한 서울~부산간 경부고속도로가 경주로 휘어진 것도 이 때문. 155호분 발굴은 그 첫삽이었습니다. 제일 큰 98호분(황남대총) 발굴을 위해 연습으로 판 이 무덤에서 유물이 1만 1천526점이나 쏟아졌습니다. 천마도가 나온 뒤부터 일제가 붙인 155호분은 천마총으로 불렀습니다. 피장자가 누군지 몰라 릉(陵)이 아닌 총(塚)이 됐습니다. (매일신문 1973년 7월 17일~ 8월 25일 자)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견된 금관은 총 20개. 그 중에도 순금 금관은 13개. 이 중 우리나에에만 7개. 이 가운데 6개가 신라 땅, 경주에서 나왔습니다. 학자들은 이 금관 모두 4세기 중반 이후 신라 마립간(麻立干)시대 것으로 추정합니다. 징기스칸의 칸(干)처럼 마립간은 간(왕) 중에도 으뜸인 왕중의 왕. 신라 금관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경주는 이스탄불, 교토(京都)와 어깨를 맞대는 세계 3대 천년고도(千年古都). 금관, 천마도, 불국사,석굴암, 첨성대 등 크기는 작아도 알고 보면 모두가 놀라는 세계유산이 수두룩합니다.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10월 31일~11월 1일)가 경주에서 열립니다. 금세기 최고 권력자들이 경주를 찾습니다. 때를 맞춰 신라 금관 6개가 처음으로 경주 신라금관특별전(10월 28일~12월 14일)에서 한자리에 모입니다.
바야흐로 경주의 시간. 신라의 지혜, K-컬처 진수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입니다. 준비 되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