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보유세 강화 필요성 발언이 불씨가 됐다. 세제 개편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부동산 시장은 즉각 술렁였고, 여권은 "논의한 적 없다"며 급히 진화에 나섰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민심 이탈'로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내를 짓누르고 있다. 시장 혼란은 이미 불가피하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등 핵심 경제라인이 잇따라 보유세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세제 개편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와 여권의 정책 엇박자가 노골화되고 있다.
김 정책실장은 지난 15일 유튜브 '삼프로TV' 인터뷰에서 "세제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보유세가 낮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부동산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서는 세제가 빠질 수 없다. 취득·보유·양도 세제 전반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보유세 강화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셈이다.
구 부총리도 같은 기류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시장은 보유세 부담이 낮고, 양도세는 부담이 커 거래가 막히는 '락인 효과'가 심각하다"며 "팔 때 부담이 줄면 시장에 매물도 나오고, 거래도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국토부 장관도 지난달 2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장관이 아닌, 인간 김윤덕으로서는 보유세를 늘려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정부 핵심 관계자가 이같은 발언을 내놓자, 시장에서는 정부가 다음 수요 억제책으로 세제 개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보유세 관련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며 "국민적 감정이 집중된 과제다. 정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 기재부, "세제 개편 연내 어렵다"…합리화 방안 신중 기해야
정부의 메시지가 보유세 강화로 기우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세제 논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은 10·15 대책 후폭풍이 시장 불안을 자극할 가능성을 우려해 한정애 정책위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주택시장 안정화 TF'를 출범시켰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민심 악화를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다만 세제 논의는 하지 않는다.
야당도 즉각 맞불을 놨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는 '부동산정책 정상화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민주당과의 정면 대응에 나섰다. 국힘은 정부가 연이어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에서 "'똘똘한 한 채' 현상을 억제할 부동산 세제 강화 방안이 빠졌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며 "세제 강화, 갭투기 차단 등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세제 개편은 연내 이뤄지기 어렵다. 기재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강영규 기재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연내에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작을 해도 11월에 절차가 진행될 것 같다. 연구용역에도 최소 몇 개월이 걸린다. 내년은 돼야 (연구용역이) 끝나지 않을까 추측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부동산 세제 개편을 두고 당정이 엇박자를 내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세제 방향 설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도 세제를 손봤지만, 되레 집값이 뛰는 부작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공시가격 현실화가 주택시장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를 통한 세 부담 증가는 주택가격 상승을 안정화시키는 데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택 매매가격을 인상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사례를 볼 때 거래세 강화와 매물 출회 증가, 주택가격 안정 간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세제 합리화의 방향 설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