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家 손잡고…국내 토종 패밀리오피스 뜬다

美 IB 캔터 피츠제럴드 자문받아
비트플래닛, 뉴욕서 1억弗 조달
패밀리오피스, 전통 자산서 디지털로

미국 뉴욕 맨해튼 파크애비뉴에 위치한 캔터피츠제럴드 본사. 사진=박시은 기자

“패밀리오피스(FO)의 전체 자산 중 5~10%를 디지털자산에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미국 뉴욕의 투자은행(IB) 캔터피츠제럴드에서 디지털자산 업무를 총괄하는 리처드 우 전무는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제 비트코인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장기 투자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식과 부동산 등 전통 자산에 머물러 있던 패밀리오피스 자금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패밀리오피스의 목적이 단기 이익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부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현지의 인식이다.


2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비트플래닛은 캔터피츠제럴드와 손잡고 1억 달러(약 1400억 원) 규모의 자금 유치에 나섰다. 비트코인 매입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다. 현재 미국뿐 아니라 유럽·중동 기반 투자자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체 투자금의 약 30%가 패밀리오피스 자금으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투자 유치의 자문사인 캔터피츠제럴드는 1945년 설립된 월가의 중견 IB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상무부 장관을 맡고 있는 하워드 러트닉 일가가 소유한 곳이다. 러트닉 장관이 오랜 기간 회사를 이끌며 월가의 대표적 보수 금융인으로 자리매김했고 현재는 아들 브랜던 러트닉 회장이 경영을 총괄한다. 최근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의 자산운용을 맡으면서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입지를 빠르게 넓히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가상화폐 기조에 힘입어 월가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브라이언 리 인코코캐피털 대표는 “뉴욕 금융의 핵심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것이 진짜 경쟁력”이라며 “자본은 기회를 만들고 관계는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야 지속 가능한 자산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캔터피츠제럴드 본사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자 전 캔터피츠제럴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초상화. 현재는 아들인 브랜든 러트닉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사진=박시은 기자

“가상화폐도 세대간 자산이전 수단”…美 FO 70%, 비트코인 투자[富의 설계자 패밀리오피스]

뉴욕 맨해튼 파크애비뉴에는 JP모건체이스와 UBS·소시에테제네랄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본사가 밀집해 있다. 금융 중심가 한복판에 자리한 캔터피츠제럴드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디지털자산 업무 총괄 리처드 우 전무는 “2000년대 초 아무도 인터넷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산업이 인터넷 위에서 돌아간다”며 “현재 가상화폐도 같은 길을 걷고 있고 이미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캔터피츠제럴드는 월가의 전통 강자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가상화폐 산업에 발을 들인 IB다. 미국 재무부의 국채 주요 딜러이자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의 자산을 수탁·관리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제도권 IB인 캔터피츠제럴드의 참여가 테더의 자산 운용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월가의 자금이 움직이고 있다. 초고액자산가 전용 사무소인 패밀리오피스(FO)들이 주식과 채권 중심의 전통 자산에서 벗어나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 기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상화폐를 단기 매매가 아닌 장기 보유 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다. 패밀리오피스의 투자 철학은 단기 시세가 아니라 구조적 성장성에 초점을 맞추는데 블록체인은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기술 기반 자산으로 평가된다. 이연재 다올뉴욕법인 대표는 “패밀리오피스는 자기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다”며 “일반 운용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23일 UBS와 캠든웰스가 공동 발표한 ‘글로벌 패밀리오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패밀리오피스의 가상화폐 투자 비중은 2020년 2%에서 2024년 6%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패밀리오피스 10곳 중 7곳이 이미 블록체인이나 비트코인 관련 펀드에 투자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UBS는 “패밀리오피스가 가상화폐를 새로운 대체 자산으로 편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책 환경의 변화도 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하워드 러트닉 전 캔터피츠제럴드 회장이 상무부 장관으로 합류한 뒤 미국 정부는 디지털 자산을 전략 산업으로 규정했다. 지니어스 액트로 가상화폐 규제 마련이 본격화됐고 세제와 시행령이 구체화되면 전통 금융기관의 진입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명확한 규제 환경 아래에서 기관 자금이 유입되고 패밀리오피스도 그 흐름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특히 가상화폐가 단기 차익이 아니라 세대 간 자산 이전의 수단으로 여겨질 정도다.



미국 뉴욕 기반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캔터피츠제럴드에서 디지털가상자산 부문 총괄을 맡고 있는 리처드 우 전무가 글로벌 고액 자산가들의 가상자산 투자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시은 기자

캔터피츠제럴드가 한국의 비트코인 트레저리 기업 비트플래닛과 손잡은 배경은 한국 가상화폐 시장의 잠재력과 제도적 신뢰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 전무는 “한국은 제도적 투명성과 투자자 기반이 결합된 시장으로 글로벌 패밀리오피스들이 주목하는 지역 중 하나”라며 “비트코인 트레저리 모델이 제대로 구축된다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제도권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메타플래닛의 경우 미국 상장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고 한국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월가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이성훈 비트플래닛 대표는 “한국의 고액자산가들도 이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핵심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국내 고액자산가들의 움직임은 이미 가시화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고액자산가의 가상화폐 보유율은 2022년 12%에서 올해 18%로 상승했다. 정영주 하나증권 WM센터장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나 디지털 자산 펀드와 관련한 상담이 최근 부쩍 늘었다”며 “글로벌 패밀리오피스의 가상화폐 투자 흐름이 국내 시장으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향후 가상화폐 과세가 시행되면 기관과 기업형 자금의 진입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자본시장 신뢰 위에서 디지털 자산 산업이 성장해야 한다”며 “투기에서 투자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가문 손잡은 국내 토종 패밀리오피스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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