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북극의 눈물’과 ‘아마존의 눈물’ 제작에 모두 참여한 김민아 PD.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도 또다시 빠져들게 된다는 그녀의 다큐멘터리 제작기.
험난한 제작 환경을 딛고 만들어낸 ‘웰 메이드’ 다큐
높은 시청률만큼 시청자들의 호평도 줄을 이었다. 총 제작비 15억원에 9개월의 사전조사와 250일간의 촬영 기간을 거쳐 완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아마존 본연의 색과 광활한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식인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아마존강에서 수중촬영을 감행하기도 했다. 또 국내 최초로 브라질 국립영상위원회와 인디오 보호국의 정식 허가를 얻어 문명과 단절된 채 원시성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원시부족 ‘조에’의 삶을 생생하게 조명했다.
쉽지 않은 촬영이었던 만큼 제작진들은 촬영 내내 ‘제작진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워낙 알려진 게 없는 생소한 곳이기 때문에 사전조사 때부터 수많은 난관에 부딪쳤다. 열대우림이 우거진 곳에서의 촬영 또한 순탄치 않았다. 숨 막히는 더위와 싸우는 것을 시작으로 먹고 자는 것, 불편한 생활, 벌레 및 곤충과의 사투, 촬영 진행에 대한 심리적 부담까지 모두 감내해야만 했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명품’ 다큐를 완성해낸 제작진 중 유독 돋보이는 이가 바로 홍일점 김민아(30) PD다. 특히, 그녀는 ‘북극의 눈물’에 이어 ‘아마존의 눈물’까지 극지와 오지를 모두 경험하며 유일하게 두 편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모두 참여했다. 북극에서는 얼음물에, 아마존에서는 강물에 빠지는 사고를 겪으며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죽다 살아난’ 주인공이기도 하다.
중동·북극·아마존까지 누비고 다닌‘오지 전문’ PD
나이보다 훨씬 앳된 얼굴에 해사한 미소를 머금은 김민아 PD는 제작팀의 막내이자 유일한 여자 PD다. 오지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녀린 외모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지 전문 연출가’로 불릴 정도로 배짱과 경험이 돋보이는 연출가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연달아 ‘고생길’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치솟았다.
“북극에 합류하게 된 건 MBC 의학 다큐멘터리 ‘닥터스’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조준묵 PD(‘북극의 눈물’ 담당)께서 전화를 해서는 ‘뭐 하냐’고 물으시더니 대뜸 ‘북극 같이 가자’ 그러는 거예요. 북극에 뭐 하러 가냐고 물었더니 ‘북극곰도 찍고 사람도 찍을 거야’ 하시더라고요. 자세한 설명도 없어요. 24시간 동안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내일 통화하자며 끊더라고요. 북극이라, 솔깃하긴 했죠.”
“잘 몰라서 오히려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인 줄 알았다면 망설였겠죠.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을 끝내고 차를 타고 가는데 같이 다니던 정부군 장군 차가 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하마스 한복판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지기도 했거든요. 무사히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무척 위험한 일이긴 했어요. 그 뒤에도 육체적으로 힘든 촬영을 많이 다녔어요. 킬리만자로에도 다녀오고요. 제가 재밌어하니까 선배들이 ‘오지 전문 PD’라고 놀리곤 했죠. 그래도 북극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좀 고민되더라고요.”
당시 그녀는 한동안 계속된 불규칙하고 거친 생활을 접고 개인적으로 내실도 다지고자 이것저것 일을 벌여놓고 있을 때였다. 새롭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며 회사 문제가 걸리지 않을 수 없는 노릇. 하지만 도전정신 가득한 천성은 숨길 수 없는 법. 북극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저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거든요. 부모님을 비롯해 친구와 선배들에게 전화를 돌렸죠. 딱 한 명 빼고 모두들 ‘좋은 기회니까 무조건 가라’는 거예요. 결심이 서고 당장 주변 정리를 끝낸 뒤 3주 만에 북극으로 가게 됐어요.”
그렇게 해서 참여한 ‘북극의 눈물’은 모두 잘 알다시피 당시 다큐멘터리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TV 상영에 그치지 않고 제2, 제3의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하나의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북극에 사는 사람들과 동물을 담은 담백한 영상은 결코 계몽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영화와 책으로도 개봉·출간됐고, 북극곰을 살리기 위한 자발적인 모금 운동까지 일기도 했다.
“오히려 제작진들이 더 놀랐어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방영 후 특별히 어떤 행동을 의도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여기저기서 구체적인 행동이 이루어지고 우리에게도 문의가 오니까 놀라우면서도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그동안 늘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북극의 눈물’만큼 관심을 많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북극의 눈물’을 통해 여러모로 얻은 것이 많았기 때문일까. 결국 김민아 PD는 아마존 제작팀에도 합류하게 됐다. 선배들이 “민아가 아마존에도 가야지” 하며 북극에서부터 건넨 농담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 북극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렇게 김민아 PD는 또다시 아마존에 몸을 던지게 됐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활약에 대해 놀라워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 PD가 어떻게 그런 거친 일을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험난한 환경에서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거의 없었다.
“제가 정말 좋은 사람들하고만 일을 해서 그런지 별로 어려움이 없었어요. 여자라서 특별히 못하게 하는 것도 없고, 봐주는 것도 없고 그냥 똑같이 지내요. 물론 선배들이 조금씩 배려해주시는 건 있죠. 밀림에서 재규어가 나타날 때까지 숨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릴 때 제가 피곤해하면 망 보는 시간을 살짝 빼준다거나, 네다섯 명이 100kg이 넘는 장비를 직접 갖고 다녀야 하는데 그때 무게를 좀 덜어준다거나 하는 정도요. 환경이 열악하니까 오히려 팀원들끼리 똘똘 뭉쳐 가족처럼 지내게 돼요. 텐트에서 같이 먹고 자고 빨래도 하니까 나중에는 아무도 제가 여자라는 걸 모르는 것 같던대요(웃음).”
오히려 육체적·외부적 어려움보다 촬영이 원하는 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때 겪게 되는 심리적인 어려움이 더 컸다. 더욱이 ‘아마존의 눈물’은 ‘북극의 눈물’이후 대중들의 기대치가 높아진데다 촬영 기간도 짧아 부담이 많이 됐다. 촬영 기간 중간에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확산되는 바람에 촬영을 금지당하기도 했고 찍어야 하는 동물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는 등 ‘제대로 촬영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되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긴박했던 순간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였다. 이미 ‘북극의 눈물’ 때 두 번이나 얼음물에 빠져 익사 위험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바 있는 김 PD는 이번에도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동료 제작진들과 아마존강에만 산다는 대형 물고기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타고 있던 보트가 맞은편 보트와 충돌해 전원이 물에 빠진 것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굉장히 이상한 날이었어요. 아침에 늘 하던 대로 커피를 따라 마시려는데 갑자기 주전자 뚜껑이 뚝 떨어지더니 컵에 들어가 쩍 깨지는 거예요. 그리고 촬영을 나가서도 이동때마다 진행도 매끄럽지 않고 조금씩 시간이 어긋나서 마지막 페리를 놓쳤어요. 원래는 페리를 타고 다니는데 하는 수 없이 수상택시를 탔다가 사고가 난 거였어요. 저희 팀 말고도 18명 정도가 타고 있었는데 몽땅 물에 빠졌어요. 천만다행으로 모두 구조되긴 했는데 그 비싼 카메라와 장비 등을 다 잃어버렸죠.”
“북극에서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는 황당하기도 하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는 생각에 잠깐 우습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겁이 나더라고요.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시꺼먼 북극 바닷물이 눈앞에 휙 지나가는 거예요. 밤새도록 신음하면서 뒤척였대요. 한동안 계속 잠들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번 아마존에서의 사고 직전에는 제가 보트에 앉아서 얼핏 잠이 들었었는데, 그대로 물 속으로 몸이 빠지는 순간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 몸이 물에 잠기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눈앞이 까맣고 머리가 하얘지더군요. 구조되고 나서도 3일 정도는 가슴이 뛰어서 힘들었어요.”
그녀의 사고 소식 후, 예전에는 촬영을 나간다고 하면 적극 찬성하시던 부모님께서도 “앞으로는 웬만하면 피하도록 해보라”고 권하신단다. 최근 한 달 정도 해외 촬영이 없어 국내에서만 머물고 있는데 얼마 전 만난 부모님께서 “내가 요즘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한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네가 한국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을 정도. 한 집에 살고 있지는 않아도 그녀가 국내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신다고.
다큐멘터리만이 할 수 있는 솔직한 이야기
하지만 김민아 PD는 여전히 이런 ‘날 것 그대로’의 다큐멘터리가 그 어떤 것보다 재미있고 소중하다고 느낀다. 북극을 다녀와서부터는 세상을 보는 시선도 꽤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낯선 세상,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좀 더 넓게 보고 다양하게 생각하며 깊게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더라도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훨씬 더 많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현장이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무엇을 담아내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도 조금은 키운 듯하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경력이 오래됐어도 굵직한 프로그램 하나 제작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벌써 창사 특집을 세 번이나 했어요. 자료 조사만으로는, 공부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들이 제 자산이 됐죠. 최신 장비도 다뤄볼 수 있었고 수중촬영처럼 특수한 촬영도 배우고 외국 스태프들과 일하면서 얻은 것도 많아요. 참 감사하고 뿌듯해요.”
김민아 PD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사람들이 귀 기울일 만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사람의 주관이 어느 정도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날 것’의 상태로, ‘벌거벗은’ 채로 사실을 보여주고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가 갖는 영향력을 알고 있기에, 좀 더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볼 생각이다. 사실 이러한 계획은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1월 15일 MBC ‘W’에서 그녀가 직접 연출한 핀란드 순록 사육 유목민 편이 방영됐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심상치 않다. 김 PD가 몸으로 부딪쳐 담아낸 이야기인 만큼 그 생생함과 진정성이 남달랐다는 것이 프로그램을 본 주변 이들의 반응. 앞으로 그녀가 만드는 명품 다큐멘터리를, 그녀의 세상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제공 / 이성훈, 김민아 ■장소 협찬 / 쥬빌리 쇼콜리띠에 여의도 2호점(02-785-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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