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리 최 감독. 로이드 리 최 제공
2021년, 팬데믹으로 미국 뉴욕의 거리가 멈췄을 때 로이드 리 최는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매일같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문 앞의 봉투를 마주할 때마다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잖아.”
뉴욕 한가운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그들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그 질문이 씨앗이 됐고, 뉴욕의 노동계급 커뮤니티를 따라 들어간 그의 ‘관찰’은 불꽃이 됐다.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자라 미국에 건너온 지 9년, 그는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방식으로 답을 쓰기 시작했다. 카메라 하나, 조명도 없이, 록다운 중의 뉴욕 골목을 ‘훔치듯’ 빌려 5일간 찍은 영화. 배달 기사 루(Lu)가 전기자전거를 도난당한 뒤 생계와 정체성의 위기를 맞는 15분짜리 단편 ‘세임 올드’(Same Old·2022)는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이후 장편 ‘러키 루’(Lucky Lu·2025)로 확장돼 2025년 칸 감독주간에 선정됐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4년 전 모험이 그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루의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돼 호평받은 로이드 리 최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영상 전체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U9KS9czkanQ )
—영화의 주인공이 장전(장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쿠팡 배달원의 하루를 담은 영화가 칸에 초청되고, 신인 감독의 첫 장편 독립영화에 이병헌이 주연으로 나선 셈이에요.
“정말 행운이었어요. 2024년 5월, 니나 양 본조비 프로듀서를 처음 만나 점심을 함께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투자와 협업이 이루어졌어요. 1년 뒤인 2025년 5월, 칸 프리미어를 했죠. 믿기 어려운 빠른 일정이에요. 장전에게 대본을 보냈더니 바로 반응이 왔고, 줌으로 통화하고, 대만으로 날아가 만났어요. 무명 감독의 첫 장편임에도 ‘아버지의 시선’으로 참여한 그의 신뢰가 큰 힘이 되었죠.”
—누구나 살다보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 처한 루의 인간적인 면모에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는 장전의 인터뷰를 봤어요. 시나리오의 힘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시나리오는 결국 구조예요. 관객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 감정의 리듬을 어떻게 설계하느냐. 이 영화는 이틀 동안의 이야기라 그 짧은 시간 안에서 ‘긴장감의 곡선’을 만들어야 했죠. 그 리듬을 잡는 데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이야기의 방향이 확 바뀌는 지점을 찾았을 때 비로소 ‘이제 됐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감독이 한국계이니 주인공도 한국계 인물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러키 루’는 뉴욕에서 일하는 중국계 배달부의 48시간을 그린 이야기예요. 사전 조사를 하면서 한국적 연결점을 찾으려 했지만 실제로 한국계 배달 기사는 거의 없었어요. 남아시아계가 많고, 동아시아 중에는 중국계, 그 외엔 아프리카계, 히스패닉이 대부분이었죠. 구체적인 사실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결국 ‘러키 루’는 이민자의 도시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존을 다룬, 한 시대의 공기를 봉인한 타임캡슐이다. 한국 개봉은 아직 미정이지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단편 ‘클로징 다이너스티’(Closing Dynasty·2023)를 통해 로이드 리 최가 포착한 도시의 숨결을 먼저 느껴보길 바란다. 그의 이름이 앞으로 더 자주 불리게 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로이드 리 최(@lloydleechoi)의 플레이리스트
① The Invisible 65,000
팬데믹 이후 강도는 세지고 위험해진 뉴욕의 배달원들을 담은 뉴욕 매거진의 짧은 다큐 영상. ‘럭키 루’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본 영상 가운데 하나다.
② Why Do Movies Feel So Different Now?
이 영상 에세이는 요즘 영화가 과거 명작이나 우리가 자라면서 봤던 영화와 왜 다르게 다가오는지를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공감이 많이 됐다.
③ POV: Chef Breakfast & Lunch at a Top London Restaurant
이런 셰프 시점의 요리 영상을 정말 좋아한다. 이런 영상에서 볼 수 있는 셰프들의 숙련된 손놀림과 몰입감은 보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동시에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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