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제공
대학에 입학한 은중. 넷플릭스 제공
*이 글은 ‘은중과 상연’의 전개 및 주요 장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갑자기 은중과 상연이 많아졌다. ‘은중과 상연’(넷플릭스 시리즈)을 보고 둘 중 하나에 나의 어떤 면과 내가 겪은 어느 시간대를 포개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겪은 미묘한 차별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치심, 교양 있고 친절한 부모를 둔 친구 ㅅ을 부러워했던 순간, 재능 많은 친구들을 향한 질투 등이 은중을 통해 소환됐다. 아무래도 나는 류은중(김고은)에게 더 깊이 이입했지만, 누군가에게 천상연(박지현)이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상연처럼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던 순간들, 혹은 괜한 자격지심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는 순간들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은중이기도 하고, 상연이기도 한 시절을 겪으며 살아왔다는 걸 드라마를 보며 깨달았다.
이런 보편적 공감이 가능한 이유는 ‘은중과 상연’이 ‘쇼트폼’(짧은 동영상)에 온통 시선을 빼앗긴 요즘 트렌드와 어긋난 선택을 한 점, 즉 15화에 걸쳐 공들여 촘촘하게 그들의 서사를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은중과 상연이 15화에 걸쳐 쌓아 올린 선망과 질투, 경쟁과 우정, 배신과 용서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은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43년에 걸친 두 여성의 생애와 30여 년간 지속된 관계가 우리와 공명할 수 있었다.
은중과 상연의 어린 시절.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은 새로 쓰인 여성 서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미디어에 늘 존재하긴 했다. 주인공이기보다는 감초 혹은 상황과 사건의 매개로서 주로 등장했다. 남성들의 관계는 우정과 의리로 포장됐지만, 여성들의 관계는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라는 낙인으로 축소됐다. 때로는 애정과 성공을 욕망했다는 이유로 ‘쌍년’으로 불렸다. 사회가 바뀌며 대중의 인식도 변화해 미디어 속 여성 서사가 더 다양해졌지만, 단지 등장인물 가운데 여성이 많은 것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여성이 주체적 존재로서 관계와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실제 여성들의 삶과 관계는 그간 미디어가 재현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갈등과 경쟁 속에서도 돌봄과 연대, 사회적 경험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은중은 대학교에서 첫사랑과 이름이 같고 똑같이 사진을 하는 ‘김상학’ 선배를 만난다.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은 이런 점에서 그간 반복된 여성 서사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궤적을 그린다. 무엇보다 둘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한 여성 서사를 보여준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여성들의 관계를 어떤 편견 어린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상연의 파란만장한 사연은 상연의 행위를 쉽게 정당화하거나 ‘악녀’ 프레임에 가두는 데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연을 이해하도록 돕는 주석과 같은 구실을 한다. 두 사람은 사진 동아리 선배인 김상학(김건우)을 사이에 둔 ‘연적’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도 다른 이성애 삼각관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상학은 두 사람에게 한때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은중과 상연을 뒤흔들고, 인생 경로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는 상학이 아니다. 은중과 상연, 두 사람 자신이다.
‘은중과 상연’은 두 사람의 생애와 관계를 곁가지가 아닌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두 사람은 누군가의 연인이나 가족을 위한 장치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이 없어. 그냥 여자애 둘이 지지고 볶다가 절교했다, 그게 다예요”라는 은중의 말은 사실 그대로다. 두 사람이 경쟁과 질투, 동경과 상처를 반복하다가 끝내 화해에 이르는 긴 여정이 이 드라마의 전부다. 즉, ‘은중과 상연’은 흔히 소비되던 여성 캐릭터의 틀을 넘어, 여성들 사이의 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도 있게 따라간 여성 서사다.
또한 이 드라마는 영영 다른 존재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끝내 서로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받아들임’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은중과 상연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했는가 하면, 꼭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둘 사이에 생긴 긴장과 오해를 애써 해결하지도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멀어진 채로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 뿐이다. 은중과 상연의 인연이 이어지는 동안 세 번의 공백기가 있는데 드라마는 그 공백기 동안 두 사람이 어떻게 지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은중과 상연은 헤어졌다가 영화 한 편을 제작하면서 다시 만난다. 넷플릭스 제공
오랜 공백기를 가진 은중과 상연의 관계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극적으로 변화한다. ‘영화판’에 있던 시절 은중이 기획한 작품인 ‘파랑의 기원’을 빼앗아 영화사를 차려 성공한 상연은 10년이 지난 뒤 은중 앞에 다시 나타난다. “나 죽는대. 고작 마흔셋밖에 안 됐는데 말이야. 암 말기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안락사를 할 수 있는 스위스에) 나랑 같이 가주지 않을래?” 은중은 느닷없이 나타난 상연의 부탁을 “너 이거 되게 폭력적인 거야”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은중은 끝내 그 부탁을 수용하고 상연이 죽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는다.
두 사람이 마침내 화해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어느 한편의 죽음이라는 점이 못내 못마땅하지만, 결국 이 죽음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연의 말 때문이다. 아직 말하고 걷고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왜 그곳에 가냐는 은중의 말에 상연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럴 수 있을 때 가려는 거야. 내가 아직 나일 때.” 죽음을 매개로 한 화해라는 설정은 다분히 극단적이고 감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상연에게는 “더는 아프지 않고 내가 누군지 아는 채로 죽고 싶은, 고통을 거절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며, 은중에게는 잃어버린 친구를 결국 다시 찾은 계기가 된다.
상연은 은중에게 안락사를 하기 위해 가는 스위스행에 동행을 부탁한다. 넷플릭스 제공
상연의 죽음에 관해 상연의 오빠, 천상학(김재원)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상학은 은중의 첫사랑이자, 은중에게 처음으로 사진을 알려준 사람이다. 상학은 입대를 앞둔 어느 날, 산에서 죽는다. 상학과 상연이 죽는 이유와 과정은 달랐지만, 두 사람의 죽음은 연결돼 있다. 여성으로 살고 싶었던 상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들킨 날을 회고하며 그의 친구 딜런(김혜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너는 그날 나에게 친구만 되어준 게 아니야. 너는 나에게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주었어.” 그러나 그 세상은 찰나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상학은 끝내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만나지 못해 죽은 것이다. 상연에게는 은중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세상’이 허락되지 않았다. 윤현숙(서정연)은 은중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상연에게는 사랑을 주지 않은 나쁜 엄마였다. 선배 상학도 상연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상연은 홀로 외로웠고, 그 외로움에 잠식돼 자신과 친구를 망가뜨린다. 상학과 상연의 죽음은 세상을 가지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인 것이다.
상연의 오빠 천상학이 골목길에서 은중에게 카메라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받아들임’이란 결국 그 사람에게 ‘세상'을 주는 일 아닐까? 흥미롭게도 드라마는 은중의 내레이션으로 흘러가지만, 은중의 상황보다는 상연의 사연을 보여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마치 류은중 작가가 상연의 일기장을 가지고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 대본을 쓴 건가 싶을 정도로.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은중이 몰랐던 상연의 사정을 보여주고, 영화감독 경승주(이상윤)와의 대화 장면을 통해 상연의 진짜 마음을 전해준다. 또한 상학의 일기에 등장하는 ‘M’이 누구인지, 상학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는 딜런을 통해 알려준다. 마치 우리가 그들의 ‘세상’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상연을 그저 나쁜 사람으로만 단정하지 않고, 상학의 선택을 이해하려 애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은중이 상연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세상이 되어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는 않다. 작가의 시선에 기대어 긴 시간 동안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은중이었다가 상연이기도 했고, 둘 다 아니기도 했다. 삶과 인간관계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아예 멀어져버리기도 한다. 이해받고 싶으면서도, 이해받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끝내 상대를 완전히 알지 못한 채 영영 어긋나기도 한다.
은중과 상연의 관계사(혹은 애정사)를 통해 결국 드라마가 보여주려 한 것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불완전한 받아들임’ 아닐까?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은중이 상연에게 한 가장 모진 말인 “누가 너를 받아주겠니?”라는 말은 상연의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끝내, 네가”라는 말로 되돌아온다. 마침내 은중은 상연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에게 세상을 주었고, 그 세상을 찾은 상연은 평안히 눈을 감는다. 나와 다른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에게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주는 것, 이것이 ‘은중과 상연’이 보여준 관계의 가능성이자 지향이다. 비록 그 과정이 쉽지도, 완벽하지도 않더라도.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상연은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하고 은중은 그 길에 동행한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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