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7월1일부터 3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수는 총 69만4552명이다. 2024년 같은 기간 관람객(33만8868명)의 배가 넘는다. 연합뉴스
2025년 넷플릭스에 혜성처럼 등장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로 대중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마저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는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호작도’, 임금의 뒤에 배치된 ‘일월오봉도’, 한국의 전통 무기와 한복, 한양 도성, 기와집 등이 등장했다. ‘까치호랑이’ 등 관련 굿즈는 연일 매진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했던 각각의 재료가 애니메이션에서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묶이는 순간, 정말 세련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연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런 한국 전통문화 내용이 가득 전시돼 있기에 애니메이션을 즐긴 이들이 관련 콘텐츠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모양새다.
애니메이션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로 연일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까치호랑이’ 장식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주목도가 어느 정도냐면 언제든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던 전시관 입구마저 요즘은 바깥까지 긴 줄이 생겨 한참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박물관 내부도 사람으로 북적북적해 마치 외국의 이름난 박물관과 유사한 수준의 인파를 보여주고 있다. 가히 ‘열풍’ 수준이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으로 이주해 새롭게 개관한 이래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방문하던 나로서는 이러한 주목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긴 줄로 인해 입성이 힘들어져 아쉬움이 생기는 묘한 기분이 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니만큼 공간과 전시 유물의 규모 면에서 당연히 국내 최대 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므로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이 크고 복잡한 공간 안에서 마주하는 제일 첫 감정은 혼란일 수도 있겠다. 어디서부터 또는 무엇부터 봐야 할지 막막할 테니까. 이에 오백 번 이상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누구보다 많이 방문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기회에 이곳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감상법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한국 역사 전반을 훑어보기 위해 1층 전시관을 구경해보자.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첫 번째 전시실로 들어서면 선사시대 유물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곳이 시작점이다. 전시 흐름을 따라 이동하면 자연스럽게 고조선, 삼한,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로 이어진다. 다만 신라 전시실에서 1차 동선이 끝나기 때문에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당황할 수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때는 전시 방향이 선사 전시실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게 돼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많은 관람객이 이 사실을 잘 몰라서 신라시대 유물까지만 열심히 보고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시계 반대 방향’을 생각하며 신라 전시실이 끝나면 마주하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안쪽 맞은편으로 걸어가자. 그러면 통일신라 전시실을 찾을 수 있다.
통일신라 전시실에 들어서면 다시금 전시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해, 고려, 조선 순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한 바퀴를 돌아서 조선 전시실을 나오면 드디어 1층 한 바퀴를 돈 셈이다. 우리 역사를 전체적으로 선보이는 1층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국사 교과서에서나 봤던 유물을 실물로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를 처음 봤을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점인 1세기에 등장한 금 부장품으로, 세밀하게 장식된 용과 비취의 화려함에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점인 1세기에 등장한 금 부장품. 세밀하게 장식된 용과 비취가 화려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 전시실이 끝나는 지점에 서면 처음에 들어섰던 선사 전시실 입구가 보이면서 박물관 구조에 조금은 익숙해진다. “아, 박물관 1층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 5천 년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다니…” 하는 감탄이 나올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 한국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서울 용산. 접근성도 좋으니 자주 방문해 1층을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흥미로운 점은 열 번, 스무 번 돌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유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자주 방문해 보게 되면 전에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면면이 서서히 보인다.
사실 세계 유수의 박물관을 가보더라도 국립중앙박물관처럼 자국 역사를 시대순으로 잘 보여주는 곳은 찾기 힘들다. 아무래도 다양한 한국 유물을 역사 흐름이라는 스토리텔링에 맞게 잘 배치해서가 아닐까 싶다. 한국 역사를 활자로만 배웠다면 이곳에 전시된 유물을 통해 선조들의 숨결을 직접 느껴보기를 권한다. 자, 1층을 여러 차례 방문해 유물로 보는 한국사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면, 이제 2층 서화관과 3층에 있는 조각관·공예관에서 깊이를 더해보자. 이곳에서는 전통 예술품을 종류별로 나눠 선보여 당대 문화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세부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2층 서화관에선 서예실과 전통회화, 불교회화 전시실이 인기를 모으는데, 우리 눈과 귀에 친숙한 작가의 작품이 망라돼 있고 그 시대의 문화와 정신의 족적을 가늠케 하는 설명이 상세히 제공돼 감상의 즐거움이 쏠쏠하다. 3층 조각관과 공예관에는 도자기와 금동으로 만든 유물이 많이 전시돼 있어, 우리 역사 속 도자기와 불교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사실 회화, 도자기, 불상 등은 골수 마니아층이 두껍게 형성돼 있어 1층 정도는 아니지만 항상 관람객이 많은 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방. 한겨레 백소아 기자
특히 2층에는 2021년부터 ‘사유의 방’이라는 특별 공간에서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반가사유상은 마치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의 ‘마스코트’로 관객에게 특별한 감상을 선물한다. 개인적으로 이전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특별한 공간에 단독 배치한 만큼 굳이 새롭게 전시장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든 적도 있으나, ‘사유의 방’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공간 덕분일까? 1400년 이상 된 반가사유상임에도 전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상의 기술을 하나 더 전하자면, 1층 전시와 2·3층 전시를 잘 연계하면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큰 역사의 줄기는 1층에서 즐기되 각각의 세부적인 문화는 2층과 3층에서 느끼는 형식의 관람이 그것. 여기까지 감상법이 익숙해지는 순간 어느새 1층과 2·3층을 왔다 갔다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이런 방식의 관람법에 맛을 들이면 지식에 대한 갈구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더욱 자주 찾을 테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그 누구보다 한국 전통문화에 깊은 안목을 지닌 나로 변모한 모습에 감탄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역사에 꽤 익숙해졌다면 3층의 세계문화관을 통해 감상 수준을 더욱 올려보자.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유물이 전시된 세계문화관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히 공들여 관리하는 공간이다. 국내에서 세계 문물을 충분히 접할 수 있도록 국외에서 여러 아시아 유물을 구입하거나 임대해 선보이고 있으니까. 물론 이름난 외국 박물관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춘 상태다. 그렇게 외국 유물을 감상하는 경험이 쌓이다보면 색다른 관람법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명나라 청화백자가 조선 청화백자에 큰 영향을 미친 만큼 이를 비교해 감상해보는 방식, 또는 인도의 간다라 불상과 삼국시대 초기 불상을 비교해 감상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세계 문화 흐름 속에 한국 문화의 위치를 이해하면서 감상의 폭이 넓어지고 더 나아가 세계관마저 확장되는 모습이라 하겠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 한국 문화를 넘어 세계 문화까지 폭넓게 감상하는 관람자가 된 상황이다.
1층부터 3층까지 전시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감상할 만큼 자주 방문했다면 이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특별전에도 관심을 가질 시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총 2개의 기획전 공간에서 다양한 전시를 특별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상설전시장 바깥에 따로 꾸민 특별전시실1에서는 대규모 전시가 기획돼 펼쳐진다. 주로 이름난 국외 미술 전시부터 국내 특정 시기나 유물을 부각하는 전시가 열리고, 전시 수준과 완성도 면에서 국내 최고라 관람료를 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예를 들면 인상파·그리스·이집트 같은 매우 주목도가 높은 국외 전시부터, 고려불화·조선전기미술·조선백자 등 한반도 역사를 기반으로 한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상설전시장 1층에는 특별전시실2가 있는데, 1보다 규모는 조금 작지만 역시나 다양한 국내 문화와 세계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이어진다. 특별전의 경우 전시 감상 뒤 도록을 사서 읽는 것이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도록에는 전시된 유물 사진뿐만 아니라 국내외 최고 전문가의 해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좋은 감상 지침서라 하겠다. 어느 정도냐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도록을 읽는 경험이 쌓이면 한반도를 넘어 세계 문물까지 이해하는 감상자의 눈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듯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뿐만 아니라 매번 색다른 특별전시를 선보이기에 아무리 자주 방문해도 늘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역사 공부는 물론이고 문화적 상식과 예술에 대한 이해마저 자연스럽게 깊어지니, 대중을 위한 문화 교육 시설로 국내에 이만한 곳이 과연 또 있을까? 이 수준까지 왔다면 드디어 이 즐거움을 다른 이와 함께 즐길 시간이 되었다.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1~3층을 돌아다니고 더 나아가 특별전을 감상해보자. 그리고 함께 온 이에게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국립중앙박물관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순간, 국립중앙박물관의 매력에 빠진 또 다른 한 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황윤 작가·‘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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