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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지치는 게, 안 달리면서 지치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에티오피아 장거리달리기 문화 기록지, 마이클 크롤리의 ‘달리기 인류’
등록 2025-09-11 21:15 수정 2025-09-16 14:48

장거리달리기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선수들이 독보적인 종목이다. 그러나 달리기 경기 해설자들까지 종종 우간다 선수를 케냐 선수라 잘못 부르고 급기야 ‘동아프리카 선수’ 혹은 ‘아프리카 선수’로 뭉뚱그린다. 인류학자이자 달리기 선수인 마이클 크롤리는 고도와 유전적 요인 등이 에티오피아와 케냐 선수에게 ‘선천적 재능’을 부여하고, 어릴 때부터 밭에서 일하고 맨발로 먼 거리를 달리며 등하교를 하는 생활 방식이 달리기를 습득시킨다는 ‘편견’으로 놓친 ‘에티오피아 장거리달리기 문화’의 참모습을 책 ‘달리기 인류’(서해문집 펴냄, 정아영 옮김)에서 풀어낸다.

책 달리기 인류

책 달리기 인류


크롤리가 ‘참모습’을 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인류학적 현장연구 방법의 하나인 관찰적 참여다. 크롤리는 2015년 해발 2355m에 있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5개월 머무르며 장거리달리기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그가 현장에서 본 에티오피아 달리기 성과는 ‘가난 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질 좋은 음식, 러닝화·러닝복 같은 각종 장비, 좋은 훈련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비를 꼽았다. 열악한 환경과 고난은 적어도 21세기 에티오피아 ‘달리기 성공 서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또 거리가 먼 것은 ‘첨단 스포츠 과학’이다. 나이키가 마라톤 기록 2시간 벽을 무너뜨리겠다고 전방위적으로 기획·지원한 ‘브레이킹2’ 프로젝트는 저자가 보기에는 “선수들의 지식과 기량”을 저평가하는 ‘과학자를 위한 과학’일 뿐이다.

에티오피아 달리기에는 다른 나라 달리기에 없는 직관과 창의력이 녹아 있다. 선수들은 함께 앞사람의 발을 보면서 뛰었다. 발을 보며 뛴다는 것은 “앞사람의 리듬에 맞춰 뛰면서 서로 에너지를 나누며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환경 조합은 전문적이다. 고지대와 저지대를 조합하고 아스팔트나 거친 길 같은 단단한 지면과 풀밭 같은 부드러운 지면도 조합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연구를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온 크롤리는 영국에서도 ‘에티오피아식 훈련 프로그램’을 짜서 훈련했다. 그리고 2018년 에든버러 마라톤에서 2분24초43의 기록으로 3위를 했다.

글 곳곳에 몸을 써서 달리는 이들의 발끝에서 전해지는 에너지와 땀 냄새가 뭉클하다. ‘왜 뛰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달리기는 제 삶인걸요”다. 이런 대답도 있다. “달리면서 지치는 게, 안 달리면서 지치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384쪽, 2만1천원.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맥스 베이저먼 지음, 민음사 펴냄, 2만원

21세기 행동과학자들은 경영대학원에서 윤리를 가르쳐야 세상이 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기후위기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엑손, 포장육·담배·총기 산업군과는 일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백한 범법자들만이 문제일까? 저자는 평범한 이들도 자주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는 데 주목했다. 명백한 공모, 일상의 공모, 공범이 되지 않는 방법을 다룬 책.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박용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만원

‘조국 사태’ 이후 검찰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온 저자가 한겨레에 연재한 ‘검찰을 묻다’ 시리즈를 재구성한 책. 한겨레 논설위원인 저자는 이 시리즈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기자의 혼’ 상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검찰, 검찰 공화국의 역사, 검찰개혁 쟁점들을 살펴본다.


포식하는 자본주의

낸시 프레이저·라엘 예기 지음, 장석준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 2만5천원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와 라엘 예기가 자본주의를 놓고 대화를 나눈 기록. 프레이저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닌 ‘사회질서’라고 말한다. 이윤 축적은 값싸게 취한 자연,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통한 수탈, 공적 정치 체계의 뒷받침 위에 세워졌다. 예기는 ‘삶의 형태’로서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 자율성과 공동체적 삶을 소외시키는지 분석한다.


마약 전쟁

요한 하리 지음, 이선주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2천원

20세기 초부터 국가는 마약 중독자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기회를 주기보다 ‘처벌’로 응답했다. 그러나 다른 범죄와 달리 마약 범죄는 단속을 강화할수록 범죄율이 줄기는커녕 올라갔다. 유통 시장을 장악하려는 범죄 조직 사이에서 지역사회는 피를 흘렸고 이 전쟁터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마약 범죄에 노출되면 인생이 사실상 끝났다. ‘도둑맞은 집중력’ ‘매직필’ 등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가 100년 동안 이어진 마약 전쟁의 실패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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