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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말고도… 이스라엘,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 확대 강행

2025년 1월 휴전 개시 이틀 뒤 서안 공습… 동예루살렘과 서안 연결하는 E-1 계획 포기 안 해
등록 2025-10-09 21:44 수정 2025-10-20 11:48
2025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라말라에서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체포한 팔레스타인 남성을 눈을 가린 채 끌고 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라말라에서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체포한 팔레스타인 남성을 눈을 가린 채 끌고 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월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자신의 취임식 이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이스라엘은 그의 취임식 닷새 전인 1월15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와 전격 휴전에 합의했다. 전쟁 15개월8일 만의 일이다.

이스라엘 정부 전쟁의 목적

휴전은 3단계로 나눠 이행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인 1월19일부터 6주(42일) 동안 진행되는 휴전 1단계는 제한적 포로 교환과 가자지구 주둔 이스라엘군 일부 철수, 가자지구 주민을 위한 구호품 공급 확대가 핵심이다. 2단계에선 모든 인질 석방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 완료를 맞바꾸기로 했다. 또 3단계엔 하마스 쪽이 사망한 인질의 주검을 인도하고, 국제사회는 3~5년으로 상정한 가자지구 재건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휴전 2단계와 3단계는 1단계 협상안의 이행에 따라 추후 논의·확정하기로 했다.

휴전 1단계 개시 직후부터 이스라엘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가자지구 휴전 이틀 뒤인 1월21일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작전명 ‘철벽’, 서안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소탕이 목적이라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밤 늦게까지 지속된 이스라엘군의 습격으로 적어도 9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후 이스라엘군의 작전 반경은 갈수록 넓어졌고, 공세 수위도 전례 없이 거세졌다. 2023년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 개전 직후부터 이스라엘군은 서안에서도 유대 정착민을 앞세워 무력 공세를 강화해왔다. 가자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는 사이 서안이 또 다른 전쟁터로 바뀐 게다.

가자에서도 서안에서도, 전쟁의 목적은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 정부는 8월19일 동예루살렘과 서안을 연결하는 ‘마알레 아두밈’(히브리어로 ‘붉은 비탈길’이란 뜻)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이른바 ‘이(E)-1’으로 불리는 이 계획은 애초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첫 임기를 시작한 1990년대 중반 마련됐으나, 그간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E-1이 실행되면 동예루살렘과 서안지역은 물리적으로 분리된다.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꿈도 끊어질 수밖에 없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의 8월25일치 보도를 종합하면, E-1 계획에 따라 정착민용 주택 3412채가 추가로 건설된다. 이를 통해 마알레 아두밈 정착촌 주민이 약 1만2천~1만5천 명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이 지역 유대 정착민 인구는 약 3만8천 명이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서안지역과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 일대에 유대인 70여만 명이 생활할 수 있는 정착촌 160여 곳을 건설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04년 7월9일 낸 권고의견에서 “팔레스타인 땅 점령은 불법이며, 그 땅에 유대 정착촌을 건설해 점령지의 인구 구성에 변경을 가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소 쪽은 유엔총회의 요청에 따라 2024년 7월19일 낸 권고의견에서도 같은 내용을 재확인했다.

포위당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꿈

“두 국가 체제란 환상을 실질적으로 지워버리고,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 땅의 심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역사적 순간이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만 없앨 수 있다.” 극우파인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E-1 계획 통과를 반기며 이렇게 말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스모트리치 장관의 말을 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없을 것이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여기는 우리 땅”이라고 전했다.

2025년 10월8일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야타 부근 유대인 불법 정착촌 들머리에서 중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0월8일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지역 야타 부근 유대인 불법 정착촌 들머리에서 중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스모트리치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9월3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안지구 땅의 82%를 강제 합병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들어선 라말라를 비롯해 나블루스, 제닌, 툴카렘, 예리코, 헤브론 등 6개 도시를 제외한 서안 전역을 이스라엘이 합병해야 한다는 게 뼈대다. 이럴 경우 이들 도시는 이스라엘 땅에 둘러싸인 섬이자 ‘게토’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스모트리치 장관은 프랑스·캐나다 등 서구 각국의 잇따른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서안 합병의 이유로 내세웠다. 그는 “작은 나라를 분할해 그 중심에 테러 국가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파기할 때가 왔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역사적 결단을 내리라”고 압박했다.

“서안 전역에서 이스라엘에 의한 영토 합병은 더 이상 다가오는 위협이 아닌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서안 일대에 설치된 약 900개의 철문과 군 검문소 탓에 팔레스타인 주민은 응급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도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하다. 팔레스타인 땅 곳곳에 새로운 정착촌이 건설되고 있고, 기존 정착촌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언론인이 함께 참여한 탐사보도 전문매체 ‘+972’는 9월12일 이렇게 보도했다. 이 매체는 “E-1 계획이 실행되면, 22개 베두인(유목민) 공동체에 속한 팔레스타인 주민 7천여 명이 강제 퇴거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매체는 이렇게 덧붙였다.

“E-1 정착촌이 완공되면 팔레스타인 도시 간 이동은 훨씬 어려워질 것이며, 서안지역 남부를 오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이른바 ‘주권 도로’란 이름의 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새로 건설될 도로는 유대인용과 팔레스타인인용이 철저히 구분된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서안지역 중심부 접근이 차단되고, 결국 먼 길을 돌아 목적지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마알레 아두밈과 서안지역의 합병이 빨라질 것이다.”

“서안 전역에서 빠른 속도로 정착촌 확대 중”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합의한 가자지구 3단계 휴전안은 1단계에서 멈춰 섰다. 2단계 휴전이 시작됐어야 할 3월9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봉쇄에 들어갔다. 가자지구 전쟁이 2년을 넘긴 10월7일에도 요르단강 서안에선 ‘철벽’ 작전이 계속된다. 가자에서도 서안에서도, 사람만큼 땅도 위태롭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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