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가 2025년 9월17일 오후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이 2025년 10월7일로 만 2년을 넘어섰다. 가공할 폭력과 만연한 굶주림으로 숱한 가자 주민이 스러져갔다. ‘집단살해’(제노사이드)란 국제사회의 외침에도 전쟁은 멈출 줄 모른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최악의 미국 정부와 최악의 이스라엘 정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학계에서 대표적 미국 전문가로 꼽히는 이 교수는 거세지는 미국의 통상 압박과 관련해 “대미 관계에서 동맹의 틀 밖으로 나올 때가 됐다”고도 강조했다.
인터뷰는 2025년 9월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6층 카페에서 2시간여 진행했으며, 10월1일 오전 전화 통화로 내용을 보충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이 2년을 맞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칼럼(8월25일치)에서 가자 전쟁을 ‘살인, 형제살해,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가자지구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살인’ 행위이자, 전쟁 수행 방식 탓에 유대인 내부를 분열시킨 ‘형제살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국제적 위상을 파괴시킨 ‘자살’이라고 말이다. 그 자살을 미국이 지원하고 있으니 ‘조력 자살’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테러를 저지른 하마스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팔레스타인 자체를 없애려 한다. 집단살해의 기본 개념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주장한다.
“테러 공격을 당했으니 자위권이 있다는 건데, 그걸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과도한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가 극심했던) 독일 드레스덴 폭격이나 미군의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핵무기 투하도 자위권에 해당할까?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도 자위권을 주장하며 대테러 전쟁을 벌였다. 그러니 똑같은 논리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을 통제하지 못한 거다. 전쟁법의 기본은 상대를 정당한 전쟁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하마스는 절멸의 대상이다. 선제공격과 예방전쟁, 9·11 때 나왔던 논리와 같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가자지구에서 집단살해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게 2024년 1월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의 체포영장을 발부한 건 2024년 11월이다. 미국이 지원한 무기가 반인도적으로 사용되면 최소한 금수 조치라도 취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 휴전 결의안도 다 막았다. 가자의 참상은 최악의 미국 정부와 최악의 이스라엘 정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유럽 등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유럽, 특히 독일은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에 대한 집단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기근 사태와 집단살해의 실상을 목도하면서 최근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발표했고,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등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했다. 임계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미국만 ‘왕따 국가’가 됐다. 서구의 쇠퇴와 균열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차원에선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단살해를 방지하고, 일단 벌어진 집단살해는 즉각 중단시키는 게 국제법상 인류 모두에게 부여된 의무다. 각국은 최소한 세 가지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집단살해에 사용되는 무기 수출·공급을 차단해야 한다. 둘째, 인도적 지원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셋째, 국제법적 제재 부과를 포함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류 전체가 나서야 집단살해를 막을 수 있다.”
2025년 9월29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가 새로운 평화 구상을 발표했다.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정확한 평가는 어렵다. 일단 하마스는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기존에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처럼 가자지구 주민을 자기 땅에서 완전히 축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 쪽엔 최소한의 자치권도 부여하지 않을 모양이다. 이른바 ‘평화위원회’를 구성해 임시통치를 맡길 텐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여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 가능성을 아예 닫지는 않았지만, ‘과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분명치 않다. 자치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담은 이번 구상은 위임통치에 가까워 보인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본 입장은 ‘정착민 식민주의’로 볼 수 있다. ‘정착민 식민주의’의 원조는 미국이다. 백인 정착민이 선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해 오늘의 미국을 건설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벌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최근 논문에서 미국을 ‘반자유주의 깡패 국가’(Illiberal Rogue State)로 규정했는데.
“트럼프 행정부 1기와 2기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1기 때는 관습과 규범을 깨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2기 들어선 그 정도가 심해졌고, 나아가 규칙과 제도를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1기 때는 보조금을 주면서 국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에 집중했다면, 2기 때는 자국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들도 미국으로 오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나오는 식이다. 1기 때는 관료조직이 어느 정도 작동했고, 주변에 조언하는 원로도 있었다. 하지만 2기 들어선 이런 기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체계적인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백인, 기독교도, 남성’이 ‘정상성’인 나라다. 인종차별을 바탕에 둔 형사처벌 권한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가 가하는 ‘사적 형벌’(린치)을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최고 징역 3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조 바이든 행정부(2022년 3월) 들어서야 통과됐다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제 이민자, 난민, 무슬림, 트랜스젠더 등은 ‘비정상성’의 상징이 됐다. 의회나 정치권 차원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막을 수 없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 패권 쇠퇴론이 사이클처럼 반복됐는데, 패권이 약해질수록 반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지금 미국은 한국 보수가 추앙하는 ‘시혜적 패권’의 모습과 정반대다. 국제질서의 안정자이자 세계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던 미국은 이제 규칙을 깨고 시장을 교란하는 불안자가 됐다.”
―미-중 갈등도 증폭될 조짐이다.
“바이든 행정부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을 비판하는 논리는 ‘제도적 권위주의’가 아니라 ‘사적 권위주의’라는 점이었다. 권력자 개인의 ‘자의성’이 지나치게 크다는 얘기다. 지금 미국이 딱 그렇다. 트럼프주의는 ‘짐이 곧 국가’다. 최소한의 안정성도 없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도 깨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깨고, 국회가 비준 동의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도 다 깼다. 규칙을 깬다는 측면에서도, 주권국가 체제에서 지켜야 할 국제법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도 불량국가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모델은 제국이다.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만들겠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중국과 미국이 다른 점이 뭐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트럼프 특색 자본주의의 대결 구도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0월1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대미 투자금 3500억달러 ‘선불’ 압박에 직면했다.
“국회에서 관련 질의를 하는 걸 봤다. 국민의힘 쪽은 ‘다 퍼주고 얻은 게 뭐냐’는 식이더라. 과거 북한을 겨냥해 했던 주장을 이제 미국을 두고 하더라. 여당과 정부는 ‘국익을 방어하면서 동맹을 건설하고 있다’는 식이다. 양쪽 모두에 동맹은 신성불가침 존재란 뜻이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먼저 때린다. 동맹이 미국이 제공한 안보에 무임승차했고, 불공정한 경쟁으로 미국 제조업을 다 가져가 천문학적 무역적자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이득 취한 것을 한꺼번에 정산하라는 미국한테 ‘동맹’을 앞세우는 게 도움이 될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공정한 경기는 불가능하다. 합의해도 이를 지킬 것이란 보장이 없다. 미래지향에 대한 확실성을 보장하지 않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다. 체계적인 전략 없이 동맹을 악성 채무자 취급한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쪽에 살짝 기운 상태에서 다변화와 자강을 추구하겠다는 ‘연성 편승’ 전략을 택한 거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와 중산층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라도 ‘동맹 논리’에서 벗어나 이익 중심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상대보다 취약한데 결기도 없으면 협상은 불가능하다.”
―달라진 국제질서에 맞게 한-미 동맹을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양자보다 다자 외교로 가야 하는 이유는 힘의 비대칭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 규칙을 깨고 양자로 돌아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문제는 ‘동맹’이 국내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이란 점이다. 이 ‘신화’를 깨야 한다. 더 이상 가치동맹의 ‘가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경제동맹도 호혜적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없게 됐다. 군사동맹 측면에선 대북 억제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전략적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비자발적 분쟁 유입 위험이 커졌다. 한-미 전략동맹의 3개 기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동맹만 생각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겼다. 대미 관계에서 동맹의 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는 큰 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자각할 수 있는 계기였다. 우리 내부에 ‘명예 백인’ 의식이 있는데, 남미의 불법 이민자와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와는 또 다른 충격, 한국 안에 있는 ‘완고한 숭미’가 깨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정부도 이를 최대한 활용해 협상해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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