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2일 주흘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 인근에서 찍힌 어미 산양과 아기 산양. 이 두 산양은 2025년 6~8월 카메라 설치 기간 동안 카메라에 여러 차례 포착됐다. 녹색연합 제공
우거진 숲을 지나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빽빽하게 자리 잡았던 나무들이 공터처럼 비어 있었다. 새로 올라온 어린나무들 사이로 베어진 나무가 켜켜이 쌓였다. 한 신갈나무는 베어진 상태로 다른 나뭇가지에 걸려 허공에 떠 있었다. 아직 베어지지 않은 신갈나무 군락에 두른 노란색 띠가 보였다. 이곳은 경북 문경의 주흘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이 들어설 예정지다. 아직 본격적인 착공 전이지만 벌써 숲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그렇게 터전이 훼손당한 이곳에 아직 산양이 살고 있다.
2025년 9월23일 녹색연합과 함께 문경새재도립공원 옆 주흘산을 찾았다. 녹색연합은 6월12일부터 8월20일까지 주흘산 내 케이블카 사업 예정지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 결과 상부정류장 예정 부지 근처에 설치한 카메라에서 산양이 24차례나 포착됐다. 상부정류장에서 600m 떨어진 주봉 방향 능선부에서도 산양이 4차례 찍혔다. 녹색연합은 상부정류장 부지 내에 산양 3~5개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 “상부정류장 부지 내에서 산양이 발견되지 않았고 산양이 사업지구로 유입될 가능성이 작다”고 적시한 문경시의 조사와 배치되는 결과다.
앞서 2023년 진행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서 문경시는 첫 본안 평가서 제출 당시 산양에 대한 언급 자체를 누락했다. 이에 대구지방환경청이 산양의 영향 가능성을 면밀하게 파악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아 보완 요청을 하자, 2023년 10월4일부터 16일까지 13일 동안만 카메라를 설치해 산양을 관찰했다. 그 결과 상부정류장에서 627m 떨어진 주봉 인근에서만 산양이 발견됐다고 평가서에 적었다.
문경시는 상부정류장과 중간지주에 설치한 카메라에서 산양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사업지구 일대에서 담비의 서식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볼 때 산양 개체군이 사업지구로 유입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했다. 대구지방환경청은 결국 “담비의 흔적만으로 산양의 서식지를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산양에 대한 영향 저감 방안을 확대 수립하라”며 협의 의견을 내줬다.
그러나 일반적인 산양의 행동반경이 1㎢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지구 내 유입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긴 어렵다. 주흘산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월악산국립공원의 산양 행동반경은 4.2㎢라는 조사 결과가 있기도 하다. 녹색연합에서 직접 카메라를 설치하고 관찰한 이유다. 그리고 직접 산양의 모습을 포착하면서 문경시의 허술한 조사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이날 주흘산 주봉과 능선 등을 8시간에 걸쳐 꼼꼼히 살피면서도 상부정류장을 비롯해 중간지주 근처에서 산양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순 없었다. 하지만 험준한 산지와 암벽지대로 이뤄져 산양이 살기에 알맞아 보였다. “카메라엔 산양이 이동하는 모습뿐 아니라 먹이활동 하는 모습도 찍혀 있었습니다. 특히 산양이 찍힌 시간대가 다양했고, 어미 산양이 아기 산양과 함께 있는 모습도 여러 차례 찍혔어요. 이곳을 자주 지나다닌다는 이야기거든요.” 함께 간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가 말했다.
조사를 진행한 녹색연합은 “상부정류장이 서식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며 환경영향평가 재심의를 요청한 상황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산양의 이동은 우리 조사로도 확인이 돼서 인지한 상태”라며 “환경단체 주장도 추정이기 때문에 계속 우리가 관찰하면서 진짜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면 다른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산지에 견줘 우뚝 솟은 모양의 주흘산은 경사가 급하고 험준했다. 특이한 점은 다른 명산들처럼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일부 경사가 급한 곳에 설치된 계단 외엔 흔한 매트나 난간 등도 거의 없었다. 인간의 손길 자체를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 두려고 한 흔적이 보였다.
그런 주흘산에 손대기 시작한 것은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숲 가꾸기’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사실상 나무를 베어내면서다. 상부정류장 예정지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소나무 군락이 자연스레 형성된 곳으로 2022년까지만 해도 생태·자연도 1등급을 받은 숲이었다. 그러나 문경시는 미세먼지 저감 차원이라며 숲 내부 나무를 일정 비율로 베어내면서 등급은 2등급으로 한 단계 낮아졌다.(제1499호 참조)
아직 착공 전인데도 상부정류장 부지 일대 숲이 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주변에 알린 임휘철 문경시민희망연대 대표는 “전국에서 (자연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손대지 않는 것이 관광지로서 더 장점이고 오래갈 수 있는 길인데, 지금 시장은 개발사업을 벌이려는 생각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24년 9월 경북 문경 주흘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이 들어설 공간에 나무들이 베어진 모습. 벌목이 진행된 숲이 빽빽한 숲과 대조를 이룬다. 녹색연합 제공
케이블카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면 환경부 고위직 출신인 신현국 문경시장의 꼼수가 보인다. 정식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해 사실상 사업계획을 수정하고, 문경새재 관광지 조성사업(리조트)과 주봉~관봉을 잇는 하늘길 조성 사업을 별도 사업으로 나눠 진행했다. 신 시장은 2025년 7월19일 열린 취임 3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본평가를 하지 않고 소규모(환경영향평가)로 간 건 환경영향평가법에서 평가 대상이 2㎞ 이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부정류장을) 400m 위로 올린 것이 불법인가요?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불법인가요? 문경은 산이 80%입니다. 우리가 산만 쳐다보고 살 수 있습니까?”
박준형 산과자연의친구 사무국장은 “케이블카 사업과 관광지 조성사업, 하늘길 조성사업, 5주차장 조성사업, 숲길 조성사업 등 5개 사업이 사실상 같은 사업인데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해 쪼개기를 했다”며 “케이블카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관광지 조성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로 쪼개서 이미 협의를 완료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카와 관광지 조성, 하늘길 사업 등은 모두 신 시장의 공약에 포함돼 함께 추진됐다.
그렇게 주민 의견 수렴도 없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마쳤는데, 그마저도 환경청이 제시한 저감 방안을 지키지 않아 공사가 멈춘 것이다. 대구지방환경청은 2025년 7월 초 “협의 내용 미이행 사항이 발견됐다”며 공사 중지 및 이행 조치를 명령했다. 착공 전 하늘다람쥐 인공둥지를 설치해야 하는데, 설치 없이 사업을 착공했다는 이유였다. 현재 하부정류장 예정 부지가 있는 4주차장 쪽엔 케이블카 공사 가림막이 설치돼 있지만, 실제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등산로로 가면서 자연을 훼손할 우려에 대해서도 문경시는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문경시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케이블카 설치로 인해 등산객 증가와 정상부 생태 영향 악화를 우려해 등산로 연결 차단 계획을 제시했다. 대구지방환경청도 “상부승강장에서 외부 출입을 통제하고 주변 산지로 탐방객이 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신 시장을 비롯한 문경시 공무원들이 실제 하는 얘기는 달랐다. 신 시장은 “케이블카를 타고 주흘산에 올라 관봉과 주봉 사이의 하늘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여행스케치 2023년 11월 인터뷰)거나 “케이블카와 연계해 주흘산 정상에 하늘길을 만들어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고자 한다”(아시아투데이 2024년 7월 인터뷰)고 말했다.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때는 케이블카와 등산로 연결 차단 계획을 제시해놓고, 실제로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하늘길로 갈 수 있음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늘길은 주흘산 케이블카로부터 약 300m 떨어진 관봉에서 주봉까지 2.3㎞ 구간에 전망대와 스카이워크, 잔도 등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문경시의 이런 행보는 시의회 회의록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경환 의원 “자 케이블카까지 다 했다 칩시다. 그러면 하늘길 지금 못 들어가게 하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일원화로 봐야지 이원화로 보면 안 됩니다.”
윤상혁 문경새재관리사무소장 “케이블카만 생각하고 한 게 아니고 하늘길까지 다 같이 생각을 했습니다.”
(2024년 6월21일 산업건설위원회 회의록 중)
2025년 9월23일 주흘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찾았다. 노란색 띠를 두른 신갈나무 뒤로 베어진 나무가 켜켜이 쌓여 있다. 류석우 기자
시의원들은 케이블카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신성호 의원은 2024년 6월21일 “케이블카만 가지고는 어떤 전국적으로 수익성이 없다”며 “하늘길을 한다는 전제하에 케이블카가 이동 수단으로 들어가는 거지, 그거를 관광 자원화 상품화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저영 산림녹지과장은 같은 해 6월25일 “하늘길은 케이블카에 대한 서비스존”이라며 “케이블카가 영업이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는 (…)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할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차원에서 하늘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휘철 대표는 “애초 (문경시에서는) 하늘길 사업을 같이 해야지만 사람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시의회에서 케이블카 사업만으로는 수익성이 없는 것을 알고 하늘길 사업을 같이 하는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경시 관계자는 “상부정류장 주변에 펜스를 설치할 예정이고, 다른 등산로나 하늘길로 가지 못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시의회 회의록에 하늘길 연계가 언급된 부분에 관해 묻자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부정류장과 6번 지주를 지나 내려가는 길에 여러 차례 희귀식물인 꼬리진달래를 마주했다.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경북 울진과 봉화, 문경, 강원도 정선, 영월, 충북 단양 등지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한여름에 피는 하얀색 꽃이 모여 있는 모습이 토끼의 꼬리 모양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산양의 주 먹이이기도 하다. 주흘산의 꼬리진달래는 케이블카 사업 지역에 고르게 분포했다. 이곳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온 꼬리진달래도 곧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문경시는 5번, 6번 지주에서 꼬리진달래의 직접적인 훼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문경(경북)=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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