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성 건강돌봄시민행동 대표가 2025년 10월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정작 간병이 필요한 중증환자의 입원을 거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강 대표는 중증 신부전으로 지난 3년 동안 투석 치료를 하고 있고, 시력 장애도 겪고 있다. 강주성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생전에 기록하여 둔다.
나는 1999년 골수이식을 하고 대상포진으로 오른쪽 눈이 거의 망가졌을 즈음인 2000년 10월께부터 2003년 3월까지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약가 투쟁을 했다. 글리벡 약가 투쟁은 백혈병 환자들과 시민단체가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정부를 상대로 벌인 의약품 가격 인하 운동이다. 한달에 300만원이나 되는 약값을 내리고 건강보험 적용을 하라는 요구였다.
그때만 해도 의료 제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3개월이나 반년 정도만 싸우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싸움은 3년여나 진행됐다. 길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 싸움의 결과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우선 글리벡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됐다. 소아 환자와 위암의 일종인 위장관기질종양(GIST) 환자들까지 보험이 확대되어 적용됐다. 백혈병 환자들과 GIST 환자들은 노바티스로부터 일부를 환급(명목은 환자지원금)을 받아 실질적으로 한달에 300만원짜리 글리벡을 지금까지 25년 동안 돈 한푼 안 내고 복용하고 있다. 나아가 이 투쟁으로 당시 30%였던 암환자 본인부담율이 20%로 낮춰지기도 했다. 이후 암환자 본인부담금은 다시 10%로, 또 다시 지금의 5%로 낮아지게 되었다.
2002년 글리벡 약가 투쟁 당시 사진. 한겨레21 자료 사진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백혈병 환자들이 무상으로 글리벡을 먹을 수 있게 만든 건 약가 투쟁의 잘못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됐다. 후회하고 반성할 일이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약가 투쟁의 합의는 마지막 싸움이었던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당시만 해도 그 비싼 약을 환자들이 돈 걱정 안하고 그냥 먹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만족했지만, 이건 10년이나 20년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나와 운동집단의 한계였다. 이것을 깨달은 지는 한 10년 되었다. 그 시기는 글리벡의 특허가 만료되고 글리벡 복제약이 국내 제약사에 의해 우르르 쏟아지던 때였다. 국내에서 10곳이 넘는 제약회사가 글리벡의 특허가 끝나기 무섭게 글리벡 복제약을 무더기로 출시했다. 복제약이니 가격도 오리지널 약보다 저렴했다.
약가 투쟁을 처음 시작하던 때는 전국에 글리벡을 먹어야 하는 만성백혈병 환자가 600명가량에 불과하였지만 글리벡 출시 뒤 사망 환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신규 환자만 꾸준히 늘어 지금은 환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 이는 제약회사의 매출액이 10배로 급격히 늘어났다는 의미다. 노바티스가 개발비용으로 10억달러를 투입했다고 주장하는 이 약은 출시 5년만에 단일 약으로 전세계 매출액 150억달러를 기록했다. 개발비의 15배를 뽑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지났으니 이 약 하나로 제약회사인 노바티스가 전 세계적으로 그동안 벌어들인 돈은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비싼 약에 대응하여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무려 13종이나 출시했지만 어느 환자도 더 싼 복제약을 먹으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바티스가 2004년 초 약가 투쟁 합의 이후 무려 22년 동안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을 환자지원금이리는 명목으로 대신 내주어 모든 환자가 글리벡을 돈 한푼 안내고 먹고 있기 때문에 복제약이 더 싸다한들 그 약을 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8월 노바티스가 병원과 의사들에게 수십억원대 리베이트를 주다가 정부 당국의 단속에 걸렸다. 정부 당국은 규정대로 글리벡의 시장 퇴출 여부를 논의했고, 나 역시 언론을 통해 글리벡을 시장에서 퇴출하라고 압박했다. 글리벡이 퇴출되어도 복제약이 13종이나 출시됐기 때문에 환자들 입장에서도 염려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환자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약을 그냥 먹고 있는데 복제약을 왜 돈 주고 먹으라는 거냐”는 항의였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지만, 환자들이 수십년 동안 글리벡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던 건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퇴출 규정을 어기며 글리벡을 그대로 둘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 역시 환자들의 여론에 밀리면서 글리벡의 시장 퇴출 대신 과징금 767억원 부과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 과징금은 글리벡을 1년만 팔면 벌 수 있는 돈이다. 이 결과로 국내 제약사의 글리벡 복제약은 먹는 환자가 거의 없는 약이 되고 말았다. 건강보험료를 더 적게 쓰면서도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여전히 글리벡을 먹어야 한다는 환자들 때문에 더 많은 건강보험료가 쓰이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제약회사의 환자지원금이 독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제약회사의 환자지원금이라는 것이 의사에게 주는 리베이트와 대상만 다를 뿐 그 성격은 똑같다고 깨달은 것도 그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약회사의 환자지원금은 불법이고 의사들에 대한 리베이트와 성격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못박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약가 투쟁의 최종 결과를 두고두고 후회하고 반성하며 이를 죽기 전에 반성의 기록으로 남겨둔다. 후대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강주성 건강돌봄시민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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