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범죄에 연루돼 정아무개씨 등 한국인 청년 3명이 감금 상태로 지내다가 지난 19일 밤 구조된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 겸 레지던스.
2025년 10월17일 밤 9시 캄보디아의 경찰 급습 당시, 문 잠긴 호텔 1313호에 갇혀 있던 건 20살, 23살, 26살 청년이었다. 한국에서 일용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했다는 이들 청년은 현지에서 촬영 장비 정비 일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에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했다. 그들에게 맡겨진 건 ‘로맨스 스캠(사기)’이었다. 구출된 청년 3명은 캄보디아 경찰에 구금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재외국민안전대책단장인 김병주 최고위원은 2025년 10월18일 주캄보디아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밤 한국 청년 3명을 구조한 긴박했던 과정을 전했다. 김 최고위원이 10월15일 캄보디아로 출국하던 도중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의 한 부모가 연락해 자녀 정아무개(20)씨 구조를 요청했다. 정씨를 구하는 과정에서 범죄 조직 안에서 함께 방을 쓴 다른 한국 청년 2명도 세상 빛을 봤다. 청년들은 이날 오후 김 의원과의 면담을 마친 뒤, 현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갇혀 지낸 곳은 캄보디아 프놈펜 한복판 고층 호텔 겸 레지던스였다. 물과 나무로 입구를 꾸민 세련된 휴양 호텔 이면에 온라인 사기와 위협, 감금이 점철한 ‘범죄 공간’이 공존했던 셈이다. 정씨가 찍어 친구들에게 보낸 사진이, 감금 장소를 찾아내는 단서가 됐다고 한다.
김 의원이 청년들과 면담한 결과, 청년들은 한국에서 일용직 등으로 일하다가 각각 친구 소개, 과거 캄보디아 여행 중 만난 지인 소개, 구직 누리집 등에서 촬영 장비 정비를 하면 월 5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에 혹해 2025년 8월 캄보디아 프놈펜을 찾았다. 도착 뒤 마중 나온 차에 올라타자마자 여권을 빼앗겼다. 곧장 로맨스 스캠 범죄에 투입됐다.
더불어민주당 재외국민안전대책단장인 김병주 최고위원 18일 저녁 주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인선 기자
청년들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호텔 건물 14층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 피해자를 속였다. 피해자와 관계를 쌓는 ‘접촉 단계’ 업무를 맡았다. 이렇게 ‘낚인’ 피해자들은 이후, 관계를 강화하는 조, 돈을 요구하는 조로 넘겨졌는데 피해자별 매뉴얼에 따라 범행은 치밀하게 이뤄졌다. 김 의원은 “일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빠따(몽둥이)로 때렸다고 한다. 두 세대 정도였고, 자주는 아니라고 했다”고 전했다. 옆사람과의 대화도 금지돼, 두 달 여를 갇히고도 청년들은 조직의 규모나 성격 등은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총책임자가 중국인인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청년들은 “탈출 계획도 세웠지만, 감시가 심해 나갈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구조 과정은 긴박했다. 김병주 의원은 범죄 현장을 파악하고 지속해서 현지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캄보디아의 경우 신고 뒤 회의를 거쳐 경찰 단속을 결정하기까지 2~3주가 걸렸다. 지속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전한 끝에 전날 밤 9시 급습 작전이 개시됐다. 애초 정씨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호텔 방은 비어 있었다. 김 의원과 한국 대사관 등이 요청해 캄보디아 경찰은 2개 조로 나뉘어 호텔 다른 동을 뒤졌다. 다른 동 1313호에서 마침내 청년들이 발견됐다. 조직 관리자와 감독자 상당수는 이미 도주한 상태였고, 남은 이들도 최근 범죄 공간을 옮기려 짐을 싸는 중이었다는 게 김 의원 얘기다.
김 의원은 “정씨와 어머니 통화를 연결했는데 고마워하시면서도 많이 우셨다. 구조된 청년들은 ‘이상하게 많은 돈을 주는 건 사기니까 응하지 말아라. 우리처럼 속아서 오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했다”고 했다. 월 500만원을 약속받고 온 청년들은 현재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라고 한다.
청년들은 현지 경찰 조사 뒤 이민국에서 추방 대기 기간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김 의원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젊은이들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험에 빠져 있다면 먼저 구출하고 그다음 한국에서 법적 처리를 해야 이런 사건이 없어질 것”이라며 “이번 일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좋은 일자리가 있었다면 청년들이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놈펜/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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