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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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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네팔 청년 죽음 내몬 폭행, 노동자 모두의 일상이었다

가혹행위 일삼은 사장, 6개 죄목으로 징역 2년… 괴롭힘 가담한 네팔인 팀장은 집행유예 2년
등록 2025-09-05 17:57 수정 2025-09-10 14:01
전남 영암의 한 돼지농장에서 괴롭힘 피해를 당한 뒤 목숨을 끊은 툴시 푼 마가르(왼쪽 둘째)가 2024년 12월 친구들과 목포로 놀러 간 모습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제공

전남 영암의 한 돼지농장에서 괴롭힘 피해를 당한 뒤 목숨을 끊은 툴시 푼 마가르(왼쪽 둘째)가 2024년 12월 친구들과 목포로 놀러 간 모습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제공


“물탱크로 가자. 여기서 죽어도 문제없다. 너 2년 동안 어디 가서 우리 회사 나쁜 얘기 하면 죽여버리겠다.”

사장이 속삭였다. 그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으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ㅍ씨를 끌고 가 분이 풀릴 때까지 구타했다. ㅍ씨의 머리와 배를 마구 때리고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ㅍ씨가 도망가려 하자 팀장이 막아서서 외쳤다. “다음부터 이렇게 안 한다고 말해. 네가 너무 잘못했다고 말해!”

구타의 이유는 단순했다. ㅍ씨가 동료에게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거였다. ㅍ씨는 자신을 때린 사장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발에 이마를 대는 ‘네팔식 사과’를 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2025년 2월11일, 전남 영암의 돼지농장 ‘우성축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2025년 2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툴시 푼 마가르(28)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까지 내몬 돼지축사 사장이 평소에도 직원들을 화장실에 감금하고 심하게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 한겨레21은 우성축산에서 사업주와 팀장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툴시의 사연을 단독보도했다.(관련기사☞눈빛까지 통제하는 일터, 28살 툴시의 꿈은 절망으로 끝났다)

‘퇴사하고 싶다’ 넋두리에 무차별 폭행과 모욕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최형준 판사는 2025년 8월20일 우성축산 사장 홍아무개(43)씨에게 징역 2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또 사장을 도와 노동자들을 함께 괴롭힌 네팔인 팀장 샤샨카(38)씨에게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의 위반 죄목은 무려 6가지(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최저임금법, 형법상 상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감금 등)나 됐다.

판결문에는 사장 홍씨가 상습적으로 직원을 폭행한 사실이 가감 없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홍씨는 2024년 6월30일 밤 9시께 우성축산 사무실에서 ‘축사에 팬을 켜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 ㅅ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몸을 밀쳤다. 그러고는 밤 10시께 ㅅ씨를 화장실에 들어가게 한 다음 밖에서 문을 잠갔다. ㅅ씨는 이튿날 새벽 6시까지 8시간 동안 그 화장실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또 2024년 10월19일 홍씨는 직원 ㅍ씨가 일을 게을리한다며 ㅍ씨의 머리를 잡아 책상에 내리치고 샤워실 쪽으로 끌고 가 뺨을 때렸다. ㅍ씨가 중심을 못 잡고 쓰러지려 하자, 홍씨는 다시 ㅍ씨의 뺨을 손바닥으로 세게 때렸다. 구타로 ㅍ씨가 쓰러지면서 문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다. 이후 ㅍ씨가 뇌진탕 진단서를 들고 경찰서까지 갔지만 홍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 결과, 이번 판결에도 동종 전과가 없다는 점이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됐다.

홍씨는 2025년 1월7일 직원 ㅌ씨와 ㄹ씨를 불러다 ‘휴무일을 주 1회에서 월 1회로 줄이겠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했다. 두 사람이 이를 거부하자 홍씨는 그들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볼펜으로 배를 수차례 찌르면서 “서명하지 않으면 네팔로 보내버리겠다”고 말했다. 2월11일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또 다른 ㅍ씨를 CCTV가 비추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머리를 때리고 발로 차서 쓰러뜨린 뒤 주먹으로 배를 때렸다. 그러곤 ‘여기서 죽어도 문제없다’고 위협했다.

환풍기 켜두지 않았다며 화장실 8시간 감금

네팔인 팀장 샤샨카씨는 홍씨의 폭행과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사장의 말을 네팔어로 통역하고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장에게 일러바쳤다. 도망치려는 피해자를 막아서고 ‘네팔식 사과’를 하도록 종용했다. 앞서 ㅌ씨와 ㄹ씨, ㅍ씨 등이 당한 폭행 모두가 샤샨카씨의 험담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이런 식으로 홍씨가 2024년 6월30일부터 2025년 2월11일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피해자 13명을 폭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우성축산이 2016년부터 고용허가제를 신청한 점을 고려하면, 수사기관이 입증한 피해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샤샨카씨는 재판에서 ‘단지 통역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의 통역이 없었다면 사장이 피해자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피해자 진술에 비추어보면 피고인은 사장의 말을 단순히 통역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들에게 상당히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샤샨카씨에 대한 피해자 진술은 이랬다. “피고인이 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서의 서명을 강요했다.” “평상시 내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발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 “사장에게 맞아 쓰러졌는데 팀장이 ‘똑바로 서’라고 말했다.” “도망치려고 하자 문을 막아섰다.” “‘배고프고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냐’고 했다.” “(팀장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사장의 발에 이마를 대고 10분간 사과했다. 팀장은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상습적 임금체불… 툴시 죽음 이후 재판받고 지급

임금체불도 상습적이었다. 2018년 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5년간 노동자 55명에게 1억4천여만원 상당의 임금과 연차휴가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 2023년 5월부터 현재까지 또 다른 노동자 7명에게 8천여만원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고,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32명의 야간수당 9100여만원을 체불했다. 노동자 48명에게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았고, 노동자 7명에게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줬으며, 노동자 4명에게 2천여만원의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사장은 이 모든 일이 언론보도로 드러난 뒤에야 직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우성축산의 만행은 2025년 2월 툴시씨의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툴시씨 역시 두 사람의 상습 폭행과 폭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굴욕적인 ‘네팔식 사과’를 강요당했다. 툴시씨의 죽음 이후 직원들은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 도움을 청했고 동영상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그 결과 우성축산은 더는 고용허가제를 쓸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미 죽은 툴시씨를 살릴 수는 없었다.

⇒관련 기사 : 눈빛까지 통제하는 일터, 28살 툴시의 꿈은 절망으로 끝났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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