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7일 전남 담양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수연씨. 대학교까지 축구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현재 6년차 캐디다. 류석우 기자
“은퇴하고 캐디 한다는 말, 많이 들었죠. 주변에 축구를 했던 사람들 90%가 캐디 일을 하니까. 그런데 저는 나중에 축구를 그만둬도 캐디는 하지 않고 싶었어요. 제가 축구를 했는데 (다른 직업인) 캐디를 하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하게 되더라고요.”
6년차 캐디 김수연(28)씨가 말했다. 수연씨는 한때 축구선수가 되길 간절히 원하던 유망주였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캐디로 일하게 됐을까.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수연씨는 축구 유망주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중·고등학교 때 연령별 국가대표팀을 거쳤고, 2015년 여주대 축구부에 진학했다. 감독이나 팀의 스타일이 수연씨와 잘 맞았고, 1학년을 마칠 때쯤인 2015년 11월엔 실력 좋은 예비 신입생도 많이 들어왔다. 통상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년도 겨울부터 합류해 함께 훈련한다. 잘하는 후배들이 들어온 만큼 동계훈련 때 잘 갈고닦으면 2학년 땐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블유케이(WK)리그 입단도 손에 잡힐 듯했다.
2015년 12월 어느 날, 기숙사에 갑자기 학부모들이 들이닥쳤다. 함께 훈련하던 예비 신입생 학부모들이었다. 감독이 그만뒀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에 찾아왔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짐을 싸들고 기숙사에서 나갔다. 수연씨는 그때까지도 감독이 그만둔 것을 몰랐다. 학교와 예산 배정 문제로 갈등이 생겨 그만뒀다는 걸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그렇게 예비 신입생이 대거 빠지자 학교엔 2학년만 남았다. 학교는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지 않았다. 수연씨를 비롯해 몇몇 학생은 학교를 옮겼지만, 많은 학생이 축구를 그만둬야 했다. 2016년 초 여주대 여자축구부는 해체됐다.
수연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만둔 감독의 추천으로 여자축구부가 있는 위덕대에 재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덕대 축구부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원치 않는 포지션 변경은 첫 번째 시련이었다. “감독님이 제가 키가 크다며 중앙수비로 세웠어요. 제 자리(공격)엔 이미 잘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수비가 정말 안 맞았거든요. 그러다보니 잘 뛰지도 못하게 되고, 점점 감을 잃었던 것 같아요.” 2025년 7월7일 전남 담양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연씨가 말했다.
중학교 때도 억지로 포지션을 변경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수연씨의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감독이 골키퍼로 포지션 변경을 요구했다. 당시 골키퍼 자리가 비었는데, 수연씨가 그저 키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슷한 시기 축구부가 해체된 다른 중학교 학생들이 대거 전학을 왔는데, 그 팀에는 잘하는 학생이 많았다. 감독은 수연씨에게 “네가 (전학 온 애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겠느냐, 그냥 골키퍼 해라”라고 했다.
수연씨가 공격수 포지션을 되찾은 건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다. 감독을 찾아가 울면서 사정한 끝에 다시 포지션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되찾은 공격수 포지션을, 여주대 축구팀이 해체되면서 다시 잃었다. 대학을 옮긴 이후 악재는 포지션 변경뿐이 아니었다. WK리그 지원 기회도 빼앗겼다. 여자축구연맹 규정상 대학에 입학한 경우 2시즌만 마치면 드래프트가 가능하다. 수연씨는 재입학했어도 이미 여주대에서 1년을 마쳤기 때문에 한 학년만 더 다니면 드래프트 지원이 가능했다. 수연씨도 그걸 원했다. 그런데 감독은 1년을 더 해보고 드래프트 신청을 하자고 했다.
“저는 사실 상무(현 문경상무)팀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상무 지원 일정을 말씀 안 해주시더라고요. 당시 상무에선 한 명만 뽑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다른 선수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인을 통해 서류 접수 소식을 듣고 지원해보려 하니까 감독님이 다음에 넣게 해줄 테니 이번엔 기다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해를 넘겼지만, 수연씨는 이듬해에도 끝내 드래프트 신청을 하지 못했다. 이번엔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그땐 그냥 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연씨가 축구를 그만두고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위덕대 감독한테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코치 자리가 있는데 한번 가볼래?”
지도자를 꿈꾼 것도 아니지만 평생 축구만 해온 수연씨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축구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장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축구 지도)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수연씨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코치로 일하게 됐다.
초등학교 지도자의 길은 쉽지 않았다. 아침 7시30분에 선수반 첫 훈련을 하고 학생들을 학교에 보낸 뒤 오후엔 취미반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후 학교를 마친 선수반 아이들과 오후 훈련을 하고 저녁을 먹는다. 때에 따라 저녁 8~9시까지 야간 훈련을 하면 일과가 끝난다. 그러나 합숙하는 학교의 여성 코치는 일이 끝나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사감’ 역할도 해야 했다. 평일엔 저녁 시간이 아예 없다. 토요일 오전 훈련을 마친 뒤 나가 일요일 오후에 들어오는 것이 일주일 중 유일한 휴일이었다. 사실상 24시간 대기하는 구조다. 학부모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고, 아이들이 아프거나 기숙사에서 일이 생기면 모두 수연씨에게 의지했다.
이렇게 일하고 학교에서 받는 급여는 월 120만~130만원 정도였다. 학부모들이 따로 챙겨주는 돈이나 방과후 취미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 과외 교습비까지 다 더해도 월 200만원을 겨우 넘겼다. 1년 반을 버티던 수연씨는 2019년 7월께 학교를 그만뒀다. 그 직후, 고등학교 때 함께 축구를 했던 친구가 ‘같이 캐디 일 해보자’고 했다. 수연씨는 업무 교육을 받고 2020년부터 캐디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주에 3~4일 일하고 월 500만원 정도를 번다. “초등학교 코치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제가 공부를 많이 안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디는 테스트 같은 걸 보긴 하지만 엄청 공부를 많이 필요로 하진 않았거든요.”
한겨레21이 진행한 ‘여자축구 생애사’ 설문조사를 보면, 여자축구를 하다 은퇴한 선수 35명 가운데 3명이 ‘캐디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겨레21이 직접 만난 전현직 여자축구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이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더 큰 비율의 은퇴선수가 캐디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은경 전 한양여대 감독은 “주변에 은퇴한 선수 가운데 절반 정도는 캐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은퇴한 여자축구 선수들이 캐디 등 특정 직업으로 몰리는 배경과 구조는 뭘까. 시작은 학창 시절 부족한 진로교육에 있다. 2024년 한국레저사이언스학회지에 실린 ‘여자축구 선수의 은퇴 진로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성민지)를 보면 “선수들은 운동 외 다른 것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진로 선택에 있어 어려움이 나타난다”며 “이미 대한체육회 진로지원센터에서 진로상담이나 진로교육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고, 현행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진로전환 성공률이 낮다는 연구도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진로 탐색 기회가 부족한 건 비단 여자축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여자축구 선수든, 남자축구 선수든, 은퇴 이후 가장 쉽게 접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 문제는 여자축구 선수들은 그마저도 제한된다는 점이다. 국내 초등학교부터 WK리그까지 여자축구팀 수는 64개로, 남자팀(1069개)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데 여자축구팀 안에서도 남성이 지도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21이 제24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 참여한 62개팀을 분석한 결과, 감독이 공석인 한 곳을 뺀 61팀 가운데 33팀의 감독이 남성이었다. 반면 남자 초등학교~대학교 축구부와 프로팀에 여성 감독은 단 한 명도 없다. 김태희 전 감독이 2019년 수원FC U12팀에 감독으로 부임했던 사례가 유일하다. 기은경 전 감독은 “남자팀에 계셨던 지도자들이 여자 쪽으로 많이 넘어온다”며 “여자팀에는 여자 지도자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남자 지도자들이 다 꿰차고 있으니 들어가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은퇴한 여자축구 선수가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도 환경은 녹록지 않다. 이들은 ‘코치’라는 직함으로 불리지만, 실상 하는 일은 기숙사에서 선수들과 함께 상주하면서 이들을 관리하는 ‘보모’ 역할에 가깝다고 한겨레21이 만난 전현직 지도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365일 애들이랑 같이 묶여 있어요. 너무 힘든 거죠. 그래서 여자축구 선수들이 캐디로 많이 빠지는 거예요. 어차피 똑같이 힘들 거라면 제일 (준비 기간 없이) 빨리 할 수 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캐디를 하는 거죠. 오죽하면 은퇴한 제자들이 저한테도 캐디를 해보라고 제안하겠어요.” 기은경 전 감독이 말했다.
그래서 많은 선수가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로 뛰어들었다가 다른 길을 찾는다. 대학교 때 축구를 그만둔 뒤 잠시 코치로 일했던 문채림(25)씨는 현재 미용사로 일하고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채림씨는 학창 시절 친구들 머리를 다듬어주던 기억을 살려 미용 일을 시작했지만, 주변에 캐디로 넘어간 동료가 많다고 털어놨다. “원래는 축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은퇴 후) 지도자 쪽으로 가지 않는 이상 할 게 없었어요.”
여자축구 지도자보다 캐디 일을 하면 훨씬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세종스포츠토토와 창녕WFC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가 2021년 은퇴한 장민영(32)씨도 “저도 캐디 일을 준비했다”며 “운동하면 아무래도 지출이 많은데, 캐디는 급여가 많이 보장되는 게 있다보니 그쪽으로 많이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연씨는 “주변에 캐디 일을 하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보면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며 스스로도 자기 일에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수연씨에게 여자축구 코치 일과 캐디 일의 연봉이 비슷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무조건 코치로 일하죠.”
축구를 그만둔 이후 잠시 코치를 했던 문채림씨. 현재는 미용 일을 하고 있다. 문채림 제공
수연씨는 대학교 팀이 해체된 것을 계기로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축구를 그만둔 케이스지만, 선수들이 가장 많이 축구를 그만두는 이유는 부상이다. 한겨레21이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축구를 그만두거나 은퇴한 이유를 묻는 말에 ‘부상’이라고 답한 이가 39%로 가장 많았다.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두는 선수의 경우 대부분 다른 진로에 관해 생각해보거나 은퇴 이후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교 때 세 번째 십자인대 파열로 축구를 그만둬야 했던 정수아(24)씨도 그랬다.
수아씨는 축구를 잘하는 편이었다. 설봉중과 오산정보고를 나와 축구로 유명한 울산과학대에 진학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당시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설이나 이런 인프라는 너무 잘돼 있어 축구 하기엔 좋았던 곳이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말도 워낙 거칠고 그런 게 버티기 힘들었던 거 같아요.” 7월3일 경기 광주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아씨가 말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수아씨는 고등학교 때 같이 운동하던 친구가 여럿 재학 중인 경기 광주시의 동원대로 옮겼다. 학교를 옮기고 나선 한동안 모든 것이 좋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2024년 6월, 고등학교 때 두 차례 다쳤던 십자인대가 또다시 끊어진 것이다. WK리그가 간절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더 해보려 했지만 부모부터 의사까지 모두 말렸다. 같은 부위를 세 번째 다쳐서 수술도 한 번에 못한다고 했다. 부상 직후 1차 수술로 골반뼈를 이식한 뒤 6개월 뒤에 2차 수술을 해야 했다. “1차 수술 직후까지만 해도 계속 버텨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평생 제대로 걸을 수 있으려면 그만둬야 했어요.”
막상 축구를 그만두기로 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너무 힘들었다고 수아씨는 돌아봤다. 그래서 시작한 게 아르바이트였다. 쿠팡 배달부터 식당, 축구장 매표소 일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축구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말고 밖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축구 말고도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게 많구나…, 그때 마음 정리를 했어요. 2차 수술 때는 그래서 오히려 마음도 편했어요.”
수아씨는 특히 서비스직이 잘 맞았다. 그러다가 생각이 든 게 미용이었다. 어려서부터 꾸미는 걸 좋아했던 그는 2차 수술 이후 미용학원에 등록했다. 현재 미용사 국가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수아씨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면서 다른 진로를 정했지만, 모두가 쉽게 바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둬야 했던 정수아(24)씨. 현재 미용학원을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정수아 제공
한겨레21이 진행한 여자축구 선수의 생애사 설문조사에서 은퇴한 35명 중 ‘은퇴 이후 직업이 없거나 한 개의 직업만을 가졌다’고 답한 사람은 12명이었지만,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졌다’고 답한 사람은 23명이었다.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말엔 “축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거나 “축구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 등의 답변이 많았다.
팀의 해체든 부상이든 갑자기 사회로 내몰렸을 때의 막막함은 국가대표를 경험하고 WK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찾아왔다. 2010년 U17 여자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돼 국민체육진흥공단(현 화천KSPO) 소속으로 WK리그에서 뛰었던 오다혜(32)씨는 2019년 스물여섯 살에 은퇴했다. 2025년 3월12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WK리그에서 오랫동안 뛰었지만 은퇴 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지만 전문선수 생활 자체가 누르면 직업이 튀어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인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축구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축구를 비교적 빨리 그만둔 이유 중 하나는 청소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축구 말고는 해본 게 없다는 것도 컸어요. 축구만 하다가 더 늦은 나이에 은퇴하면, 이후 삶의 비전을 찾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았어요.”
다혜씨는 은퇴 이후 지인 회사에 입사해 3년간 사무직으로 일했다. 일하면서 필라테스 자격증을 따고 회사는 그만뒀다. ‘돈의 쓴맛’도 봤다. 전세 대출 이자는 계속 오르는데 필라테스 강사로 버는 돈은 한계가 있었다. 2023년 친오빠가 한 ‘홍게 장사’ 제안을 덥석 받은 것은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축구선수 출신 홍게장사’라고 뾰족한 수가 생겨 매출이 막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6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축구 코치다.
다혜씨를 포함해 은퇴한 이들은 전문 축구 선수로 생활하면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축구 외에 다른 진로를 고민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내가 잘하는 게 뭐지? 내 스타일은 뭐지? 이런 걸 알고 찾아가며 크는 게 맞는데, 한국에서 축구를 비롯해 어떤 스포츠를 하면 딱 그 스포츠만 보고 살게 돼요. 제 경우에는 ‘축구밖에 생각을 못하는 경주마’로 키워졌던 거죠. 운동선수들은 이른 나이에 스포츠를 그만두게 되는데 ‘은퇴 준비’는 은퇴하고 나서부터 시작해요.” 다혜씨가 말했다.
수아씨도 “어렸을 때는 그냥 무조건 축구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고, 그만둘 생각조차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무조건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밖에 안 해서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축구를 그만두면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혜씨는 일본 축구선수 이야기를 듣고 ‘그게 가능하구나’ 놀랐다고 했다. “일본은 (축구가) 서브잡이라더라고요. 완전 1군이 아닌 이상은 자기가 할 일을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준비되니 얘네는 갑자기 그만둬도 뭔가 할 일이 있는 거예요. 그냥 그런 게 좀 놀랍죠. 아예 그런 세계를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저는 가스라이팅 당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실제 한겨레21이 일본에서 만난 고등학교 축구부 학생 중에 프로선수를 준비하는 학생은 1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경찰관이나 구조견 훈련사 등 이미 다양한 장래 희망이 있었고, 축구부에 참여하면서도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7883.html)
17살 이하(U17) 여자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WK리그에서 뛰었던 오다혜씨가 축구 연습을 하는 모습. 경북 포항에서 가족과 함께 홍게 장사를 하다가 현재는 서울에서 축구 코치를 하고 있다.
수연씨는 빨리 캐디를 선택한 게 오히려 잘된 것 같다고 한다. “축구를 하는 학생들이 다 프로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밥만 먹고 축구 한다 해도 모두가 되는 게 아니니까. 저는 WK리그 안 가고 그냥 그만두길 잘한 것 같아요. 지금 (WK리그에서) 뛰는 친구들도 보면 어쨌든 언젠가는 축구를 그만둬야 하잖아요. 그럼 분명 그만두고 할 게 없어요. 무조건 코치를 하거나 캐디를 하겠죠. 이미 제가 다 겪었던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도착지는 같은데 누가 더 빨리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느냐의 차이 같아요.”
축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도’ 하면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한겨레21의 고민은 ‘은퇴, 준비 없는 시작 아닌 준비된 전환으로’(공개 예정)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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