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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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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축’서 맹활약하는 목선정 “한국 9년보다 일본 1년 더 성장”

한국서 드래프트 탈락 뒤 일본 건너가 니가타·가고시마서 ‘주경야동’… 인기 선수 이어 명품 지도자까지
등록 2025-08-28 16:38 수정 2025-08-31 11:40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가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가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드래프트 전체를 포기하겠습니다.”

2012년 12월7일 서울 코리아나호텔 7층. 최인철 당시 인천현대제철 감독이 ‘드래프트 포기’를 선언했다. 2013 한국 여자축구 더블유케이(W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장은 바깥보다 더 찬 바람이 불었다. 감독들의 입에서 선수 이름 대신 지명하지 않겠다는 ‘패스’가 자꾸 나왔다. 드래프트 신청자 47명 가운데 절반이 안 되는 20명만 뽑혔다. 전년도 드래프트인 ‘2012 WK리그 드래프트’에 58명이 지원해 35명이 지명받은 것에 견주면 지명률이 확 떨어졌다.

그 드래프트 신청자 47명 중에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가 있었다. ‘목선정’이라는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9년 동안 축구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진짜 선수’가 되려는 문 앞에서, 문이 닫혔다. 이제 뭐 하지? 어디로 가지?

 

평생 팬이 보내주는 1500㎞ 눈물겨운 쌀 

“주유소 ‘알바’를 해볼까 생각했어요.” 2025년 8월6일 일본 니가타현 기타칸바라군에 있는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목 코치는 ‘어떻게 일본으로 왔냐’는 질문에 답하며 2012년을 돌아봤다. “저는 사실 축구를 못했어요. 한양여대 다닐 때 1년 동안 주전으로 한 번도 못 나가기도 했거든요.”

목 코치는 그래도 축구가 좋았고, 희망을 놓지 않았고, 열심히 했다. 그러나 정작 드래프트에서 떨어지자 막막했다. 그때 같이 한양여대에서 뛰었고, 역시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친구 오유선이 부추겼다. “우리 일본 가자.”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에 가서 입단 테스트를 봤다. 그리고 덜컥 합격해버렸다. 2013년 2월 목 코치는 일본 나데시코 2부리그 팀인 주브릴레 가고시마에 입단했다. “와, 다시 축구의 길이 열리나보다. 처음에는 마냥 설렜죠.”

몇 년간은 설렘보다는 힘겨움이 컸다. ‘주경야동’의 생활이 시작됐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운동하는 생활. “일본은 낮에 일하고 밤에 운동해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무작정 왔는데 일의 비중이 크더라고요.” 구단 사무실 전화받기, 회계문서 정리 등 안 한 일이 없었다. 일이 끝나고서야 훈련했고, 주말에는 경기를 뛰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스스로 달라짐을 느꼈다. “사실 한국에서 9년 축구한 것보다 여기서 1년 동안 하면서 스스로 실력이 성장한 걸 많이 느꼈어요.”

‘평생 팬’도 생겼다. 나데시코 2부리그에서 ‘죽어라 열심히 뛰는’ 목 코치의 플레이 스타일에 반한 팬은 목 코치가 가고시마 선수로 생활하다가 2017년 12월 은퇴하고 2018년 3월 가고시마 유나이티드 FC 스쿨코치로 옮긴 뒤에도, 2021년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유스팀 코치로 옮긴 뒤에도 계속해서 직접 농사지은 쌀을 보내준다. “니가타로 옮기고 나서는 그 감사함이 더 커졌어요. 일본의 땅끝 가고시마에서 니가타까지 1500㎞를 날아온 쌀이잖아요.” 눈물겹고 따뜻한 자랑이었다.

 

‘6살반’에서 시작한 지도자의 길

목 코치는 어떻게 지도자가 됐을까. 2014년 주브릴레 가고시마 감독은 목 코치에게 여섯 살 이하 어린이팀인 ‘6살반’ 축구코치를 맡겼다. “당시 일본말도 잘 모르던 때였어요. 말을 잘 못하니까 훈련 때 쓸 단어를 종이에 적어 메모를 읽어가면서 아이들을 지도했어요.”

일본어도 못하는 한국인 축구코치가 못 미더워 그만두는 학부모도 많았다. 목 코치 수업에 아이들이 1명만 남은 때도 있었다. 그래도 목 코치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지도자 자격증’에 도전했다. “1명이든 2명이든 저한테 축구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아무렇게나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주경야동’의 생활에서 ‘야독’, 공부까지 더해졌다. ‘동네 축구클럽’ 등 보급형 수업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일본축구협회 D급 지도자 자격증에서 시작해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축구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B급 자격증까지 따며 ‘실력을 갖춘’ 지도자가 됐다. “제가 노력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아이들이 모였어요. 나중에는 일주일에 600명 가까이도 가르쳤어요.”

2018년 3월에는 일본 남자축구 J2리그 팀 가고시마 유나이티드에서 아카데미 코치 제안을 받고 나데시코 리그에서 J2리그로 입성했다. 목 코치는 또 다음 도전에 나섰다. 당시 가고시마 유나이티드에 한국인 선수가 이적해 와서 통역도 담당하면서 ‘남자축구 경기’를 자주 보게 됐는데 가슴이 확 타올랐다. “성인팀에서도 코치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가슴에서 뭔가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목 코치는 누가 물어볼 때마다 ‘지도자로서 더 성장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말했다. 그리고 가고시마 유나이티드 코치의 소개로 2021년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유스팀 코치로, 2022년에는 성인팀(톱팀) 코치로 일하게 됐다.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톱팀 코치로 일하면서 2년 동안은 매일 일이 끝나면 ‘니가타 알비렉스’ 남자팀에 가서 코칭 훈련을 부탁드려 배웠어요.”

2025년 8월6일 팀 훈련을 마친 뒤 개인 훈련을 돕고 있는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제공

2025년 8월6일 팀 훈련을 마친 뒤 개인 훈련을 돕고 있는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제공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선수 훈련 계획을 세우고, 오전 2시간 훈련에 참여하고, 오후에 피드백 및 전술 회의를 하고, 오후 4시 다음날 훈련 계획을 마무리하기까지 하루 8시간이 빠듯하다. 그러나 오후 4시 ‘여성팀’ 일이 끝나면 알비렉스 니가타 남자팀에 가서 어떻게 피지컬 훈련 계획을 세우는지, 어떻게 선수들의 몸 상태를 분석하는지 등 하루도 빠짐없이 배우기를 2년간 지속했다. 그 성실성 때문인지, 목 코치와 하시카와 가즈아키 감독이 온 다음해인 2023/2024 시즌부터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팀은 일본 여자축구 프로리그인 위(WE)리그 클럽 8위에서 클럽 4위로 도약했다. 야마모토 히데아키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대표는 “목 코치가 우리 팀 선수들의 피지컬을 정말 체계적으로 훈련시켜주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 ‘막아’ 지시만 있던 한국, 일본은?

WE리그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로 자리 잡은 목 코치는 한국 축구 지도방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제가 10년간 한국에서 축구를 배울 때는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센터백 내려가, 올라가’ ‘차’ ‘막아’ 오직 지시만 있었어요. 일본에서 지도자 자격증을 따면서 배운 코칭 방식은 답 대신 재료를 주고 선수 스스로 답을 찾는 방식, 두뇌 회전을 빠르게 하는 훈련이라는 점이에요. 지도자 역시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저 선수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를 계속 생각하고 그에 맞는 코칭을 해요. ‘아 상대방을 못 봐서 저렇게 움직이는구나’ 파악되면 상대방을 보도록 하고, 체중이 뒤로 실려서 그렇다면 자세를 바꾸도록 하고. 제가 어릴 때 배운 한국의 코칭은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목표는 뭘까. “아직, 우리 팀이 리그 4위예요. 저는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이제 조금 팀을 보고 팀과 함께 올라가고 싶어요. 아직 올라갈 곳이 있기 때문에 계속 가슴이 뜁니다.”

 

니가타(일본)=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가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목선정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코치가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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