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실 서울시청 감독은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축구계를 완전히 떠난다는 말이 아니다. 여성 지도자가 갈 수 있는 판을 넓히겠다는 선언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다음은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최 3개월 전인 1990년 6월 최초로 출범한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한국방송(KBS) 다큐멘터리 영상(1990년 8월28일 방송)에 나온 신문기사 제목이다.
‘「수준 미달」 女(여자)축구 북경(베이징)行 낙찰―체육부, 「중국(中國)과 관계 개선 위해 참가 약속」 강행’
이처럼 여자축구 대표팀은 첫발을 떼자마자 비난에 시달렸다. ‘강행’이란 말과 ‘수준 미달’이란 말을 함께 사용해, 해서는 안 될 일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부정적 느낌을 주는 이 기사 제목은 비단 언론의 시각만은 아니었다. 앞서 1985년 대한축구협회 직할 팀으로 여자축구단이 발족했을 때도 여론은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는 쪽이었다. 이 여자축구단이 2년 만인 1987년 해체되고 3년 만에 여자축구 대표팀이 구성됐지만, 여론의 싸늘한 시선은 그대로였다.
‘여자축구 국가대표 1세대’를 지낸 유영실(51) 서울시청 감독이 국가대표 선수로 뛰기 시작한 1992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영실 감독은 버텼다. 악착같이 버텼다. 2008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고 이듬해인 2009년부터 그의 오랜 꿈인 지도자(감독, 코치)의 길을 걸었다. 2025년으로 지도자 경력 17년째를 맞은 유 감독이 2025년 8월3일 경남 창녕군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21을 만나 심정을 털어놓았다. “홀로 황무지를 개척하는 심정이었어요.”
남성이 판치는 축구계에서 유 감독은 이를 악물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축구는 여성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축구판에서 남성 지도자는 최소한의 능력만 있어도 되지만 여성 지도자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 여성 지도자의 실패를 여성 성별 전체의 무능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달걀이 아니라 스스로 바위가 돼야 했다. 한 남성이 실수하면 그건 개인의 잘못으로 끝나지만, 한 여성이 실수하면 그 실패는 모든 여성에게 돌아간다. 한 사람의 결점을 성별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성차별주의의 골자다.(책 ‘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고 싶었어요. 후배 양성을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여자축구 국가대표 1세대’ 선수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유능하고 열정이 넘치는 여성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제가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유 감독이 2019년 12월 더블유케이(WK)리그 팀인 서울시청의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에 지도한 팀들은 한마디로 망가진 팀이었다. 그가 2016년 대전에 있는 대덕대 여자축구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대덕대 여자선수는 12명에 불과했다. 팀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18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대덕대는 여자축구팀을 조만간 해체할 계획이었다. 이런 위기 속에 팀을 구하기 위해서는 성적을 잘 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유 감독은 결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그는 2019년 열린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과 추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에서 대덕대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은 유 감독은 2018년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았다.
대덕대 감독을 맡기 전인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서울 노원구에 있는 동산정보산업고(현 서울동산고·이하 동산고) 여자축구팀 코치와 감독을 지냈다. 그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도 선수는 엔트리 기준인 14명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일에 주력했던 유 감독은 2014년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과 청학기 전국 여자 중·고 축구대회 준우승에 이어, 같은 해 열린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엔 우선 선수 파악이 중요해요. 어떤 선수가 무엇을 잘하는지 먼저 파악해야죠.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축구를 팀에 입히려 하면 팀이 잘될 수가 없어요. 선수들의 장점을 먼저 살리고, 그것을 토대로 팀의 기반을 잡고, 그다음에 본인이 원하는 팀 컬러를 입혀야죠.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 감독은 처음부터 팀 색깔을 바꾸려고 해요.” 유 감독의 말이다.
유 감독은 여자축구 발전과 부흥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고, 지금도 뭐든지 하고 싶어 한다. 한 예로 2025년 2월27일 서울 내 초·중·고 여자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일일 축구교실을 열어 선수들을 가르쳤다. 비슷한 시기에 타이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어린 선수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그는 또 1997년 남자프로농구(KBL), 1998년 여자프로농구(WKBL)가 출범하기 전까지 실업팀과 대학팀, 국군체육부대 등 모든 성인 농구팀이 참여하는 농구대잔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여자축구 실업팀과 대학 여자축구팀이 함께 겨루는 대회 개최도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선수들이 더 잘해야 하지만, WK리그 실업팀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연봉 상한제(연봉 상한선을 5천만원으로 제한한 제도)도 없애야 해요. 여자축구 선수들이 실력에 맞는 연봉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연봉 상한제는 여자축구 유망주가 실업팀으로 가는 것을 막아 장기적으로 여자축구 발전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한국여자축구연맹과 달리 하루도 여자축구 걱정을 놓은 적이 없는 유 감독. 그런 그가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축구계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남자축구팀을 이끄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선언이었다. 여성이 활동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겠다는 뜻이다.
그 전에 서울시청에 창단 첫 우승컵을 안기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서울시청은 2009년 WK리그 출범 뒤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우승 가능성은 열려 있어요. 잡아야 할 팀을 꼭 잡으면 기회는 아직 있어요. 지금은 우선 우승만 생각하고 가려 합니다.” 유 감독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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