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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죽음 이후 22년 만에 통과된 노란봉투법 “‘돈의 감옥’ 처참함 드러낸 노동자 투쟁 덕분”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사용자 범위·손배 청구 제한 대상 확대해 무분별한 ‘불법 파업’ 딱지붙이기 제동
등록 2025-08-25 12:47 수정 2025-08-25 16:49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된 2025년 8월24일 오전 민주노총 조합원,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활동가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봉투법 입법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중노출 촬영.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된 2025년 8월24일 오전 민주노총 조합원,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활동가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봉투법 입법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중노출 촬영.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2025년 8월24일 오전 본회의를 열어 노란봉투법을 재석 의원 186명 가운데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가결했다. 표결 지연을 위해 전날 오전부터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투표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키자 법안 표결에 불참했다. 노란봉투법은 국무회의에서 공포되면 6개월 후 시행된다.

 

72년 만에 사용자 정의 변경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제2조에서 정한 사용자 범위를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이 조항은 원청에 하청과의 노사 교섭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주로 대기업) 사업주와 노동조건을 교섭할 수 있게 됐다. 노조법에서 사용자 정의가 변경된 것은 72년 만의 일이다.

아울러 기존 노조법 제3조는 사용자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는 노조와 노동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는데, 노란봉투법은 그 범위를 ‘그 밖의 노조 활동’으로 확대했다. 노조가 벌일 수 있는 파업의 범위도 ‘노동 처우’에 더해,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주요 결정’으로 넓혔다.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이 청구됐던 파업은 사용자 쪽이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정리해고에 반대했던 2008년 쌍용자동차 파업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정리해고 반대 투쟁’ ‘구조조정 반대 투쟁’ 같은 노조의 행위를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포함되지 않는 불법행위라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해왔는데,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이 손해배상 청구 제한 대상에 포함되면서 노조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사용자의 무분별한 ‘불법 딱지’ 붙이기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조에 손배 청구를 하지 않으면 ‘배임(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기업 쪽 주장에 사용자가 노동자를 ‘면책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도 추가했다.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는 불법·폭력행위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했고, 책임과 배상액도 개인의 역할과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크게 제한했다.

 

1993년께 어느 노동조합 행사에 참여한 고 배달호씨가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는 동료들과 놀러 오면 항상 즐겁고 활기 있게 흥을 잘 돋우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1993년께 어느 노동조합 행사에 참여한 고 배달호씨가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는 동료들과 놀러 오면 항상 즐겁고 활기 있게 흥을 잘 돋우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22년 거슬러 올라가는 노란봉투법 역사

 

노란봉투법의 역사는 2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였던 고 배달호씨가 정리해고에 저항하며 파업에 참여했다가 회사가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조합원 임금 53억원까지 가압류했다. 이에 6개월 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배씨는 2003년 1월9일 새벽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내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씨가 남긴 유서에는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사건은 노동계의 쟁의권 확대 요구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됐다.

같은해 10월17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이어가던 김주익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배달호 노동자의 죽음과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노동조합 파업 이후 조합원 180명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15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압박했다. 실제 노조 활동을 이유로 떨어진 18억원의 손배·가압류 집행으로 임금명세서에 찍힌 월급은 고작 13만원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씨를 포함한 노조 간부 7명은 집까지 가압류를 당했다. 김씨는 유서에서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배·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조를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적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지회장이 생전 40m 높이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지회장이 생전 40m 높이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본격적으로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이 제기된 건 2014년부터다. 앞서 2009년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저항한 노동자들이 76일 동안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했는데, 사쪽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정리해고 사태의 장기화와 사쪽의 손배·가압류 등으로 고통받던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지자, 한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47억원의 10만분의 1인 4만7천원을 노란색 봉투에 넣어 언론사에 전달했고, 손해배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과거에 월급봉투로 쓰였던 노란 봉투에 십시일반 그들의 월급을 모아주자는 의미로 노란봉투 캠페인이 이어지면서 약 15억원이 모금됐다. 이후 ‘노란봉투’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배 가압류를 거는 사쪽에 저항하는 법 개정 운동의 상징이 됐다.

정치권에서 계속 외면받던 노란봉투법은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다시 부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주도한 하청노조 소속 노동자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비판이 거세지면서 국회는 2023년과 2024년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두 번 다 윤석열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가로막혔다가 윤석열 탄핵 파면 이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2018년 7월5일 오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씨 분향소에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와 가족들을 추모하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8년 7월5일 오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씨 분향소에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와 가족들을 추모하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손잡고 “노란봉투법, ‘돈의 감옥’에 갇힌 노동권 해방의 작은 출구”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는 2025년 8월24일 논평을 내어 “우리는 이번 ‘노란봉투법’이 법을 지키지 않는 자본가들이 법의 허술한 점을 비집고 들어가 만들어낸 창살없는 ‘돈의 감옥’에 갇힌 ‘노동권’이 해방될 수 있는 ‘작은 출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며 “그리고 ‘출구’를 만들어낸 선두에서 ‘돈의 감옥’의 처참함을 온 몸으로 세상에 드러내준 건, 사법부가 기존 ‘판례’를 변경할 수 밖에 없도록 천문학적 손배청구에도 굴하지 않고 ‘교섭’을 시도해온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이었음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도 같은날 논평을 내어 “이번 법안에서는 노동3권의 실질적 실현을 위한 내용들이 포함되었다”면서도 “노동조합의 사각지대인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 추정조항’이 도입되지 못했고, 사내하청을 준 자의 사용자성도 법안에 명시하지 못했다. 근로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또한 여전히 열려 있다. 우리 모임은 개정된 노조법이 노동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나아가 미처 개정하지 못한 입법상의 미비를 보완할 수 있도록, 노동권의 온전한 실현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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