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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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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하청으로 생계 잃어” 택배기사 손편지에 엉뚱한 답장

부들부들 떨며 용기 냈는데…국토부 ‘원청 그대로 두고 하청업체만 제재’ 답장
등록 2025-08-14 21:51 수정 2025-08-19 18:01
CJ대한통운의 3차 하청 노동자인 택배기사 신태하(46)씨가 쓴 택배 다단계 하도급 실태에 관한 손편지다. 그는 다섯 장 분량의 편지를 두 장으로 줄이고 줄여 2025년 6월23일 대통령실로 보냈다.

CJ대한통운의 3차 하청 노동자인 택배기사 신태하(46)씨가 쓴 택배 다단계 하도급 실태에 관한 손편지다. 그는 다섯 장 분량의 편지를 두 장으로 줄이고 줄여 2025년 6월23일 대통령실로 보냈다.


“제가 대통령님께 편지 보냈을 땐 이미 해고 전날이었거든요. 그러니까 해고가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보낸 거예요.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하고 싶어서, 대통령님께서 이런 현실을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근데 국토교통부는 원청 씨제이(CJ)대한통운은 언급도 없이 그냥 1·2차 하청업체인 브이투브이(VTOV)와 더블유에이치(WH)로지스만 징계 처리한다는 거잖아요.”

택배노동자 신태하(46)씨는 CJ대한통운의 3차 하청 노동자다. 최근 택배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알리고자 2025년 6월23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쓴 편지를 보냈다. ‘다단계 위탁 구조로 대형 물류사와 택배사가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길면 안 읽으실까봐 사흘 동안 분량을 줄이고 줄여서” 쓴 편지였다.

약 한 달 만인 7월21일 국토교통부가 답변을 보내왔다. “민원을 넣으신 기업(1·2차 하청업체)은 화물운송사업자로 판단된다. 화물운송법에 따라 민원 기업들이 직접운송 의무를 위반한 것이니 관할관청에 조사 및 제재 통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신씨가 앞서 말한 대로 ‘원청의 불합리한 다단계 하청 구조는 그대로 두고 하청업체만 제재하겠다’는 취지다. 신씨는 황당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택배업체와 계약한 화물운송업체는 신씨 등에게 일감을 줘선 안 되고 택배를 직접 운송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신씨 입장에선 자신의 일감만 빼앗기게 된 것이다.

택배노동엔 정규직이 없다

택배노동엔 정규직이 없다. CJ대한통운 등 택배업체가 택배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리점’이라는 1차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택배노동자로 구성된 전국택배노동조합이 꾸준히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요구했다. 2021년 택배 과로사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분류노동 폐지를 요구하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에 해고 방지 조항을 넣었다.

그러자 택배업계는 하청 단계를 더 늘리기 시작했다.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직접 하지 않고 화물운송업체를 거쳐 계약했다. 택배 물량을 넘겨받은 화물업체는 또 다른 업체에 소개료만 떼고 물량을 다시 넘긴다. 이런 식으로 2차, 3차, 4차 하청이 만연하다.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하청업체만 가운데서 수수료를 챙기고 정작 물건을 배송하는 노동자에겐 더욱 적은 몫의 수수료만 남는다.

2025년 7월22일 서울의 한 분류터미널에서 ‘2회전’ 배송 물량이 출고되고 있다. 차량 옆에 있는 선풍기는 택배 분류 인원 몫이고 기사들을 위한 것은 따로 없다. 신다은 기자

2025년 7월22일 서울의 한 분류터미널에서 ‘2회전’ 배송 물량이 출고되고 있다. 차량 옆에 있는 선풍기는 택배 분류 인원 몫이고 기사들을 위한 것은 따로 없다. 신다은 기자


앞서 한겨레21이 폭염 노동 실태를 취재하러 택배기사와 동행했는데, 이때 만난 택배기사도 CJ대한통운 3차 하청 노동자였다. 이날 그는 ‘쓱배송’ 46개 상자를 배송하고 1만5천원을 받았다. 원래 CJ대한통운이 책정한 단가 4만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수수료가 줄었다.(제1575호 기사☞무더위에 3명 숨진 택배 노동, 이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꼭 설국열차 맨 끝 화물칸에서 난리 치는 느낌이에요. 솔직히 안 되는 싸움 하고 있고 그냥 (원청 입장에선) 맨 마지막 화물칸만 떼어내면, 꼬리 자르기 하면 끝이구나 싶죠.” 신씨가 말했다.

택배업계에 다단계 하청 구조가 빠르게 퍼진 데는 쿠팡발 속도 경쟁도 한몫했다. 쿠팡이 ‘새벽배송’을 내걸고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이자, CJ대한통운 등이 기존 배송 체계의 바깥에 있는 화물운송업체에 ‘당일배송’을 하청 주는 방식으로 경쟁에 참여한 것이다. 택배노조가 쿠팡 문제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는 까닭이다.

해고도 재고용도 원·하청 편의로만 이뤄지는 구조

화물업체와 계약하는 택배노동자는 법적으로 ‘택배기사’도 아니다. 생활물류서비스법은 택배기사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최대 6년간 계약갱신권을 보장하고 계약 해지 사유도 엄격히 제한한다. 대신 이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국토부에 등록된 택배서비스사업자(택배기업)나 그 영업점과 계약한 택배기사여야 한다.

신씨의 경우 CJ대한통운-VTOV(1차)-WH로지스(2차)-제이앤에스로지스(3차)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의 3차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이 경우 VTOV와 WH로지스, 제이앤에스로지스가 모두 택배기업이 아닌 화물업체여서 이들 업체와 계약한 택배노동자는 생활물류서비스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원래 생활물류서비스법이 만들어진 이유가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 특수고용직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법에도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그래픽 이다은

그래픽 이다은


“(택배기사 분류) 기준이 일관된 것도 아니에요. 저희랑 똑같이 ‘쓱배송’을 해도 새벽배송팀은 택배기사로 분류해요. 말도 안 되죠. 똑같은 업무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택배기사로 보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업체 편의에 따라, 문제 생겼을 때 책임을 전가하려는 거죠.” 신씨의 지적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2024년 11월 택배업계의 재위탁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생활물류서비스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택배업의 재위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불가피한 사유’에 한해서만 재위탁하자는 취지다. 2025년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 안건이 올라가자 국토부는 ‘신중 검토’ 의견을 내면서 “(지금은) 재위탁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괄적으로 재위탁을 금지하는 것은 사적 자치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고 밝혔다. 이후 2025년 3월 개정안에 대해 ‘일부 동의’로 선회했으나, 여전히 “영업점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재위탁을) 1회(로) 한정”하자는 단서를 달았다.

“어떻게든 알리고파, 바뀌지 않으면 반복”

이런 다단계 하청 구조는 신씨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2025년 6월24일, CJ대한통운의 1차 하청업체인 VTOV는 쓱배송의 품질 저하 등을 문제 삼아 2차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이 일로 신씨를 포함한 택배기사 7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VTOV가 계약 해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계약 해지 후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으로 택배기사 이탈이 반복되자 서둘러 다시 계약한 것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 아래에선 노동자 해고도 재고용도 원·하청의 편의만으로 이뤄진다.

그런 환경에서도 신씨가 자신을 드러내고 싸우는 이유는 뭘까. “제가 이번에 노조를 처음 해 봤더니 그나마 목소리 내니까 업체 쪽이 협의에 응하더라고요. 지금도 개인이 하기엔 너무 큰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부들부들 떨리는데 용기 내는 거예요.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서,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요.”

2025년 7월23일 한 택배기사가 CJ대한통운 터미널에서 택배상자를 분류하던 중 쏟아지는 땀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분류노동은 2021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문제제기한 대표적인 ‘공짜노동’이다. 신다은 기자

2025년 7월23일 한 택배기사가 CJ대한통운 터미널에서 택배상자를 분류하던 중 쏟아지는 땀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분류노동은 2021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문제제기한 대표적인 ‘공짜노동’이다. 신다은 기자


결국 근본 해결책 내지 않은 국토부

이렇게 노동자를 제도 밖으로 내모는 다단계 하청 구조는 건설업과 조선업에 국한되지 않고 배달, 택배, 서비스 업종까지 널리 퍼져 있다. 이 가운데 다단계 하청이 금지되는 업종은 건설업뿐이고 그마저도 일회성 적발에 그친다.

“수수료만 떼이고 맨 밑에 있는 업체가 책임을 다 떠안는 건설업 다단계 하청 구조가 택배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거죠. 고객은 모르잖아요. 한진 택배 시켰으면 한진 기사가 오는구나 하지, 하청의 하청이 짬뽕된 것을 모를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다 똑같은 택배기사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신씨가 말했다.

국토부는 2025년 8월6일에야 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CJ대한통운, 쿠팡, 롯데, 한진, 로젠 등 주요 5개 택배사에 불시 점검을 실시했다. 폭염 속 택배업계 종사자의 장시간 노동을 초래하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방지할 목적이라고 정부는 설명했지만, 다단계 하청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은 내지 않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택배노동자 신태하씨가 보낸 편지 전문

 

존경하는 이재명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계양구 박촌동에 거주하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택배기사 신태하라고 합니다. 대통령 당선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빠른 내란 종식과 국내 민생안정과 경제성장을 위해 발 빠르게 쉼 없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이제 진짜 대한민국이 되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산적한 과제들과 국정 업무들이 많으신 가운데 이렇게 저희의 상황을 말씀드린다는 것이 송구합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 6월24일자로 계약 해지되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단계 위탁 구조의 계약으로 원청인 CJ대한통운에서 1차: VTOV 2차: WH로지스 3차: 제이앤에스로지스로 저희 기사들은 3차 업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모두 책임을 전가하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어서 이렇게라도 상황을 전하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대통령님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메시지를 보냈으나 답변이 없어 직접 방문하여 급하게 전달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힘도 상황을 해결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하여 부득이 대통령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소년공 노동자로 누구보다 우리 택배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탁월한 행정력과 문제해결 능력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택배기사들의 상황을 잘 해결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희 택배노동자들이 이에 처한 상황에 대해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다른 재계약한 택배노동자들도 동일하게 반복된 어려움과 부당한 처우와 노동에 시달릴 것입니다. 택배노동자들을 만나 현실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도 들어주시고 해당 원청사인 CJ대한통운을 비롯한 대형물류사들과 택배사들의 부당한 계약구조를 개선하고 택배노동자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소통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재명 대통령님, 내외분의 건강과 성공한 정부, 진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열심히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태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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