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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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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로 착지하는 이재명, 포퓰리즘 올라타는 국힘

비주류 ‘원한감정’ 넘어서는 치밀한 통치 전략… 보수세력이 떠난 무주공산 수월하게 차지
등록 2025-07-31 21:10 수정 2025-08-01 23:50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7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7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보수언론은 이재명 대통령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존재로 종종 묘사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 이후 행보를 보면 그렇게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포퓰리스트들은 대중의 저항을 자기 정치의 동력으로 삼는데, 이 지면에서 반복해서 분석한 대로 이재명 대통령은 비주류의 ‘원한감정’(ressentiment)을 활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주류적 시각을 내재한 통치자로서의 정치로 집권 초기 큰 방향을 잡고 있다.

 

‘노란봉투법-배임죄 완화’ 매칭한 이유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뿌리가 여의도 정치가 아닌 성남시장 및 경기도지사 등 행정가로서의 경력에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생각된다. 가령 “산재 사망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발언으로 요약되는 강력한 산업재해 근절 메시지와 노란봉투법 입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 추진과 기업을 겨냥한 배임죄 완화 검토는 그 자체만 놓고 봤을 때 포퓰리즘적 정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각각의 의제가 통치 구상의 이행에 필요한 것이라고 봐야 이해된다.

배임죄 완화는 애초 여당이 1차로 상법 개정을 추진할 때 재계에서 요구했던 바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을 규정하는 방안을 여야가 합의 처리하던 시기엔 이 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 이사 선임 과정의 집중투표제를 의무 적용하고 분리 선출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2차 상법 개정에 대해 언론은 “더 세졌다”고 평한다. 조선일보는 법인세 인상과 노란봉투법까지 하나로 묶어 ‘기업 옥죄기 3법’이라는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통치자 입장에선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배임죄는 법 조항에 포괄적이고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다른 범죄에 비해 무죄율이 높다. 이러한 특성이 자의적 수사, 가령 검찰의 공소권 남용과 만나면 부당한 사례를 양산할 수 있다. 따라서 배임죄의 구성 요건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은 법조계를 중심으로 이미 제기돼왔다. 부작용 우려도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통치의 시각으로 보면 검토 필요성이 있는 내용이다. 여기에 2차 상법 개정과 산재 근절, 노란봉투법 입법을 추진하는 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반기업적 정부’라는 공격에 대한 방어 논리를 갖춰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란봉투법을 ‘진짜 성장법’이라는 어휘를 사용해 방어한 것에도 이런 이유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대목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 초기 통치 방법론이 주류 지향적임은 충분히 확인된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2025년 4월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국민을 지킨다! 국민수사대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2025년 4월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국민을 지킨다! 국민수사대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한길’ 가운데 두고 대치한 국힘 내부

포퓰리즘적 정치는 보수 야당에서 오히려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내란을 시도한 윤석열을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앞장서 주장하다 탄압당해 옥에 갇힌 사람으로 인식하는 유튜브 운영자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면서다. 전한길씨는 국민의힘 입당 이후 전당대회 출마 예정자들에게 윤석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방식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반탄파’로 분류되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동혁 의원은 전한길씨의 공개 질의서에 답하고 유튜브 출연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반면 안철수·조경태·주진우 의원 등은 질의서 자체에 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전당대회 불출마 의사를 밝힌 한동훈 전 대표는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전한길씨를 ‘진극(진짜 극우) 감별사’라 부르며 “진극 감별사에게 기꺼이 감별받겠다고 줄 서면서 우리 당에는 ‘극우 없다’고 하는 건 국민들과 당원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안철수 의원, 한동훈 전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회동한 사실을 들며 ‘반극우연대’라 표현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극우와 합리적 보수의 대결 구도로 짜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합리적 보수의 편에 선 ‘초엘리트들’을 비판하는 칼럼도 등장했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선우정 논설위원이 조선일보 2025년 7월30일치 지면에 실은 ‘국민의힘 초엘리트들의 반극우연대’란 제목의 글이 그것이다. 이 글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일본의 아베 신조가 보수정당을 위기에서 구원한 방식이 포퓰리즘적 정치에 있었음을 밝히면서 한국의 ‘초엘리트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전한길씨를 비롯한 윤석열 탄핵 반대 세력을 ‘극우’로 규정하며 멀리할 게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낸 흐름을 타고 대중의 ‘원한감정’을 자극해 하나의 논리로 꿰맞추는 포퓰리즘적 정치로 나서야 보수가 재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는 절반의 사실이 있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많다.(언론인의 윤리에 대한 논점은 일단 미뤄두자.) 우선 이 글에서 애써 ‘우파 포퓰리즘’이라 지칭하는 정치가 오늘날 ‘극우 포퓰리즘’(far-right populism)이라 일반적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의 행동양식이 단지 과격해서가 아니다. 대중과 엘리트 구분에 의거한 선악 구도에 기반해 국수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의 관철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기성의 규범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선우정 논설위원의 조선일보 2025년 7월30일치 칼럼.

선우정 논설위원의 조선일보 2025년 7월30일치 칼럼.


 

보수 엘리트는 극우 포퓰리즘에서 자유롭나

이 글이 주장하는 정치를 통해 집권한 권력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윤석열 정권이다. 윤석열은 앞서 글에서 말하는 보수 유권자층의 ‘열등감과 상실감’을 ‘권위주의-문재인에 복수하는 자유민주주의-윤석열’의 구도로 묶어내 집권했다. 윤석열은 집권 뒤에도 그 구도에 기반한 정치 행보를 지속했다. 그 끝이 무엇인지 우리는 2024년 12월3일 확인했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윤석열이 꺼내 든 것은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이었다. 이는 정확히 극우 포퓰리즘의 정의에 들어맞는다. 전한길씨나 조선일보 일부 인사는 이 길을 다시 가자고 주장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극우 포퓰리스트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반극우연대’의 당사자들로 묘사되는 안철수·한동훈·오세훈·유승민 등의 정치도 이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거다. 앞서 조선일보 칼럼이 다른 건 다 ‘우파’라 부르면서 서부지법 폭력 사태와 ‘윤 어게인’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극우’라 하는 것과 같은 세계관을 ‘반극우연대’도 공유한다. 윤석열 이슈만 빼면 ‘친북=친중=공산주의=권위주의=더불어민주당=진보’라는 포퓰리즘적 도식에만 의존하는 정치를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여기는 듯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 역시 도식과 반대에 의존하는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만일 주류적 통치 영역에서 양당의 경합이 치열했다면 현 집권 세력 역시 어느 정도 그러한 정치로 쏠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수의 현실이 이러한 탓에 이재명 정권은 마음 놓고 주류적 통치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 보수정치가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이러한 상황은 기약 없이 장기화할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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