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비디오 대여점 체인 블록버스터는 미국 전역에 90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했고, 연매출은 60억달러(약 8조3400억원)에 달했다. 주말엔 가족 단위 손님이 매장을 메웠고, 비디오 케이스를 들고 집에 가는 것이 의식처럼 여겨졌으며, 파란색 멤버십 카드는 지갑 속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반납 걱정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고, 매장을 찾던 행렬은 사라졌다. 위기를 느낀 블록버스터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연체료 수익에 대한 집착과 기존 매장 확대 전략이 변화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10년, 블록버스터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고객도, 자본도, 브랜드 신뢰도 있었던 산업의 강자가 손쓸 틈도 없이 무너진 이유는 뭘까?
르망 24시, 판을 바꾼 포드의 선택
여름, 극한의 경주라 불리는 ‘르망 24시’에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포드는 기술력만 놓고 보면 페라리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포드는 이탈리아 절대 강자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경기 시작 전, 포드의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드라이버인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는 차량 상태를 살피며 마지막 점검을 했다. 마침내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붉은 페라리가 화살처럼 치고 나갔고, 관중석에는 함성이 터졌다. 반면 포드 GT40은 출발이 뒤졌지만 조급함 없이 트랙을 돌며 상태를 점검했다. 마일스는 무전으로 “타이어 그립 정상, 브레이크 양호”라고 보고했고, 셸비는 별다른 지시 없이 스톱워치만 응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 흐려졌고, 빗방울이 트랙을 적셨다. 빗길에 몇몇 차량은 미끄러졌고, 페라리 중 한 대는 트랙을 이탈했다. 하지만 마일스는 제동 지점을 앞당겨 침착하게 대처했고, GT40은 젖은 트랙 위에서도 정확히 코스를 통과했다.
밤이 찾아오면서 경기는 본격적인 내구전으로 접어들었다. 포드 진영은 훈련된 군대처럼 움직였다. 연료 주입, 타이어 교체, 드라이버 교대까지 모든 작업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해 시간 손실을 없앴다. 반면 페라리는 브레이크 문제로 정비가 길어졌고, 그 때문에 포드와 페라리의 차량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새벽녘, 일부 차량이 기계 결함으로 이탈했고, 페라리도 기어박스 문제로 속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마일스는 흔들림 없이 주행을 이어갔고 셸비는 “계획대로 가자”는 말 외에 간섭하지 않았다. 피트에서는 남은 연료, 트랙 주행 수, 경쟁 차량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상황을 관리했다. 날이 밝자 관람객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처음에 페라리의 질주에 열광했던 이들이 끈기와 정밀함으로 선두를 지키는 포드에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구간에서도 마일스는 엔진 과열 없이 코너를 부드럽게 통과했다. 피트 내의 모든 동작은 수십 번 진행한 예행연습처럼 매끄러웠다. 팀 전체가 완주 가능성에 맞춰 모든 자원을 움직였다. 승리의 순간 포드는 단순히 빠른 차를 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기 초반, 화려한 속도로 관중을 매료시킨 페라리와 달리 포드는 경기 전체를 지배하는 내구성과 안정성에 승부를 걸고 경쟁 구조를 속도에서 운영 방식으로 바꾸고 있었다.
경쟁 전략: 구조를 읽고 길을 정한다
마이클 포터는 산업구조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5 Forces)을 언급했다. 신규 진입자, 대체재, 공급자와 구매자의 교섭력, 기존 경쟁자의 강도가 그것이다. 그는 경쟁 우위를 가지려면 이 다섯 가지 힘이 만들어 내는 산업구조를 잘 분석하고 그에 맞춰 이기는 길을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드 V 페라리’의 르망 레이스는 이 같은 경쟁 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경기 초반 페라리의 질주는 기존 경쟁자의 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속도가 곧 승부’라는 통념과 강자의 명성이 만들어 낸 진입 장벽이었다. 하지만 빗길 코너에서 마일스가 안정적으로 빠져나가는 장면은 경쟁 기준이 속도에서 완주 가능한 내구성으로 대체되었음을 보여준다. 차량 정비를 위한 피트 스톱에서는 공급자의 힘이 드러난다. 페라리는 정비 문제로 시간을 잃었지만, 포드는 표준화된 운영과 부품 관리로 빠르게 대응했다. 이는 공급망 안정성과 운영 체계가 핵심 경쟁력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또한, 르망이라는 고비용 무대에 후발 주자로 뛰어든 포드가 기존 경쟁자인 페라리에는 신규 진입자의 위협이 되었다. 포터는 산업구조 분석 후, 선택할 수 있는 본원적 전략으로 원가 우위, 차별화, 집중 세 가지를 제시했다. 르망 24시에서 포드는 이 중 차별화와 집중을 결합했다. 기존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 내구성을 중심에 둔 차별화 전략을 세웠고, 르망에서 승리하기 위해 차량 설계부터 피트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포드는 강자가 만들어 낸 성능 경쟁에 매몰되는 대신, 경기의 규칙 자체를 바꿀 수 있었다. 흔히 차별화와 원가 우위는 양립 불가능하다지만, 포드는 명확한 전략으로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은 셈이다.
산업구조 분석에 따른 전략 성공 사례
산업구조 분석과 그에 맞는 전략으로 성과를 거둔 기업은 영화 밖 현실 세계에도 많이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고정비가 높은 항공 산업에서 원가 우위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다. 대형 항공사가 허브 앤드 스포크(hub-and-spoke) 모델을 운용할 때 단거리 직항(point-to-point) 네트워크로 공항 슬롯(slot) 확보 비용을 줄이고 운항 효율을 높였다. 또 단일 기종(보잉 737)만을 운용해 정비와 교육 비용을 절감했다. 이 전략은 공급자의 교섭력을 낮추고, 구매자에게는 낮은 요금을 제공하며 30년 이상 흑자를 이어가는 기반이 됐다.
넷플릭스는 방송과 케이블이 중심이던 산업에서 기술 발전과 소비자 요구 변화에 주목해, 2007년 DVD 대여에서 스트리밍으로 경쟁의 무대를 옮겼다. 회사는 시간과 기기의 제약 없는 콘텐츠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대신 자사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구매자 교섭력을 낮췄다. 2024년 기준 가입자는 2억60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의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전기차 산업에서 불리한 구조를 피해 틈새시장에집중했다. 초기 전기 버스와 상용차 중심으로 정부 수요를 확보했고, 이후 배터리를 자체 생산해 공급 의존도를 낮췄다. 배터리와 차량을 수직 통합 설계해 원가 우위와 차별화를 동시에 달성한 결과, 2022년 186만 대, 2023년에는 300만 대를 돌파하며 전기차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다. 세 기업은 공통적으로 산업구조를 분석하고 자사에 유리한 전략을 선택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고정비 산업에서 원가 우위를, 넷플릭스는 전통 미디어 구조에서 차별화를, BYD는 틈새시장에서 집중 전략을 통해 성공했다. 이처럼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는 전략의 출발점이다.
경쟁 구조를 바꾸는 전략
블록버스터는 자본도 고객도 풍부했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를 읽지 못해 무너졌다. 반면 포드는 24시간 지속되는 경주에서 승부는 내구성과 안정성에 달려 있음을 간파하고, 차별화와 집중 전략으로 승리했다. 같은 무기로 싸우는 대신 새로운 기준을 만든 것이다. 포드와 사우스웨스트항공, 넷플릭스, BYD 사례는 산업구조를 분석하고 자사에 유리한 무대를 선택하는 경쟁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불편하다고 외면하거나 거부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어디에서 어떤 규칙으로 싸울지 결정하고, 이길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현재 어떤 구조에서 싸우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그에 맞게 경쟁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