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경력직 선호 등 미래 불확실성 확대…경제적·사회적 기반 갖춘 세대 향한 시기·질투
최근 온라인상에서 탄생한 신조어 ‘영포티’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의 화두로 급부상했다. ‘영포티’는 젊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YOUNG(영)’과 40대를 일컫는 영어 단어 ‘FOURTY(포티)’의 합성어다. 등장 초기만 해도 젊어 보이거나 젊은 감각을 지닌 40대를 지칭할 때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그 의미가 변질돼 철없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조롱의 목적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우후죽순 등장하는 신조어 홍수 속에서 특정 신조어가 의미의 변질과 함께 사회 전반에 널리 확산되는 데 대해 ‘이례적 현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이례적 현상의 배경에 20대 청년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안정적 기반을 갖춘 기성세대에 대한 시기·질투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문턱, 경제적 자립의 어려움 등 청년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과 값비싼 브랜드를 착용한 영포티 조롱 이미지의 극명한 대비가 분석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한국 사회 강타한 ‘영포티’ 논쟁, 온라인 조롱 게시물 대부분 ‘돈·경제력’ 관련 깊어
최근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영포티’ 논쟁이 뜨겁다. 20대는 ‘나이에 맞지 않게 자신들의 유행을 따라한다’며 조롱하고 40대는 ‘개인의 취향이나 소비 행태를 조롱하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라고 맞서는 식이다. 영포티 논쟁은 단순 의견이나 생각 차이로 인한 갈등을 넘어 세대 간 혐오 양상으로까지 확대돼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극심한 사회분열의 징후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 다양한 요인이 지목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의 20대들이 직면한 열악한 현실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독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영포티’라 불리며 조롱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이유 중 상당수가 20대가 특히 취약한 ‘경제력’과 관련 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SNS,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 퍼지고 있는 ‘영포티 구분법’ ‘영포티 특징’ 등의 게시물을 보면 행동이나 말투가 간혹 언급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경제력과 관련된 내용들이 유독 많은 편이다.
게시물에는 ‘영포티 브랜드’ ‘영포티 이미지’ 등의 제목과 더불어 특정 브랜드를 유독 좋아하거나 자주 구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게시물에 등장한 브랜드는 타 브랜드 보다 높은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일례로 ‘영포티 인증 스마트폰’으로 지목된 아이폰의 경우 동일 기종 타 브랜드 대비 가격이 약 30% 가량 높은 편이다. ‘영포티 브랜드 리스트’에 등장하는 의류·악세사리 브랜드 또한 일정한 수입이 없는 20대가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힘들고 열악한 요즘 20대의 삶…“영포티 조롱 이면엔 불안감·분노, 40대는 화풀이 대상”
요즘 20대의 경제적 자립 시기나 난이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당시 청년(15~29세) 고용률은 60.2%에 달했다. 이후에도 60% 수준을 유지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0% 아래로 떨어졌고 작년 기준 46.1%를 기록했다. 청년 고용률은 15세 이상 29세 이하 인구 중 실제로 취업한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결국 과거엔 청년 10명 중 6명이 취업에 성공했다면 최근엔 취업 성공자가 고작 4명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의 채용 문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의 여파로 신입 채용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앞서 채용 플랫폼 사람인이 371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하반기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력직이 입사지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은 90.8%에 달하는 반면 신입은 67.7% 밖에 되지 않았다. 올 상반기만 해도 신입을 뽑겠다는 기업 비율이 83.6%에 달했던 것과 대비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 취업 연령 역시 20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상승했다. 채용 플랫폼 인크루트가 IMF 이후 20년 간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을 살펴 본 결과, 1998년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은 25.1세였던 반 2016년에 처음으로 30세를 돌파했고 2018년 30.9세까지 상승했다. 올해는 2018년에 비해 소폭 하락하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인 30.7세를 기록했다. 성별로는 남성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1998년 26세에 불과했으나 올해 31.9세까지 상승했다. 여성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1998년 23.5세, 올해 29.5세를 각각 기록했다.
높아진 취업 문턱과 첫 취업 연령의 상승은 청년의 경제적 자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학사 캐치가 20·30세대 1903명을 대상으로 ‘경제적 독립 여부’를 조사한 결과, 아직까지 독립하지 못했다고 답한 청년 비율이 77%에 달했다. 독립을 하지 못한 이유로는 ‘안정적인 수입의 부재(56.0%)’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 아직까지 독립하지 못한 응답자 중 상당수(87.0%)는 추후 독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독립 시기는 ‘취업 후’가 53.0%로 가장 많았다.
서울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김은진 씨(23·여·가명)는 “요즘 20대는 과거의 20대와는 삶의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며 “불과 2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취업이나 독립이 어렵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취업에 성공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리 잡은 40대를 보면 내심 부럽기도 하고 특히 나 같은 대학생은 쉽게 사기 힘든 고가의 제품을 선뜻 사는 모습을 보면 약간의 시기나 질투심 같은 것도 생긴다”며 “요즘 ‘영포티’란 단어가 논란인데 그들을 조롱하는 것도 시기나 질투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양정훈 씨(27·남·가명)는 “요즘엔 신입을 뽑는 곳도 많이 없고 간혹 채용공고가 떠도 경쟁률이 워낙 높다보니 취업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며 “주변에 취업에 성공했거나 이미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과 동시에 괜한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취업 시기가 늦어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반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며 “내가 못 누리는 것을 누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역시 ‘영포티’ 신조어의 등장과 논쟁의 배경엔 각박한 현실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감정 등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기존의 직업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더해지며 청년층은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을 겪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경제적·사회적으로 여유를 가진 기성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부러움이 ‘영포티’라는 신조어로 희화화되는 문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청년 세대의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세대 간 갈등과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콘텐츠는 프리미엄 구독자 공개(유료) 콘텐츠로 무단 캡쳐 및 불법 공유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르데스크 구독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전주 월요일 00시부터 일요일 24시까지 집계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