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사전예방, 한국은 사후징계…반복되는 프랜차이즈 갑(甲)질, 구조적 개선 시급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문제가 매년 반복되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와 과징금 부과가 이어지곤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과 사후적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후 제재가 아닌 구조 개편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갑질’해도 과징금내면 끝…푸라닭·교촌·명륜진사갈비, 이름만 바뀐 도돌이표
올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된 프랜차이즈 업체는 교촌치킨이었다. 교촌 본사가 가맹점에 원재료 수급 차질의 책임을 떠넘기고 이를 문제 삼은 점주들의 계약 갱신을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년째 원재료 공급 문제가 반복되는데, 신고한 점주에게 오히려 ‘보복성 갱신 거절’을 통보했다”며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자, 명백한 갑질 행위”라고 지적했다. 송종화 교촌F&B 대표는 “공급 안정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해명했지만 근본 대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같은 날 국감장에 오른 명륜진사갈비의 행태는 더 심각했다. 본사 명륜당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연 4%대 저금리로 690억 원을 빌린 뒤 이를 예비 점주에게 10%대 고금리로 재대출한 정황이 드러났다. 본사가 실소유한 대부업체를 통해 원리금 회수를 직접 관리한 의혹도 제기됐다. 박상혁 의원은 “사실상 불법 사금융 구조를 가맹 시스템 안에 들여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는 현재 명륜진사갈비 사건을 조사 중이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가맹사업법 위반뿐 아니라 부당지원·사익편취 혐의까지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런 조사가 일시적 경고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올해 초에는 ‘하남돼지집’ 가맹본부가 계약서에 없는 26개 물품(김치, 소면, 배달용기 등)을 사후 ‘필수품목’으로 지정하고, 이를 거부한 점주의 고기 공급을 중단한 사실이 적발됐다. 공정위는 하남에프앤비에 과징금 8000만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했지만 점주들은 공급 중단으로 이미 수개월간 영업 손실을 봤다며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치킨업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푸라닭과 60계치킨은 가맹점주들에게 포스용지, 보안스티커, 홍보용 패널 등을 본사로부터만 구매하도록 강제한 사실이 드러나 시정명령을 받았다. 공정위는 통일성 유지와 무관한 거래상대방 구속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카페 업계도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공정위는 메가MGC커피 본사인 앤하우스에 22억9200만원의 과징금, 외식업종 역대 최대 규모의 제재를 내렸다. 본사가 모바일 상품권 수수료 11%를 점주에게 몰래 전가하고, 설비를 본사 가격으로 비싸게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업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가맹사업법의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2%’에 불과하다. 본사가 얻는 부당이익이 그보다 크다보니 제재로 인한 과징금은 ‘비용’으로만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프랜차이즈 본사는 과징금을 ‘경상비 명목’으로 회계처리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을의 연대’ 없는 시장…해외는 민간 감시와 단체 교섭 등 사전예방 중점
프랜차이즈 갑질이 반복되는 근본 이유로는 제도적 감시와 점주 연대의 부재가 지목된다. 한국의 가맹점주 단체는 법적 ‘신고 단체’ 수준에 머물러 있어 협상력이나 재정적 지원이 거의 없는 반면 선진국들은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분담해 강제력있는 견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프랜차이즈 룰(Franchise Rule)’을 통해 본사의 정보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본사는 가맹 희망자에게 계약 14일 전 수익 구조, 비용, 소송 이력 등이 명시된 ‘프랜차이즈 공시문서(FDD)’를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점주 단체와 소비자 단체가 실시간 감시·공표·소송을 병행한다. FTC는 제도 개선 시 시민단체 의견을 공식 절차로 수렴한다. 정보 공개 ➞ 민간 검증 ➞ 법적 제재라는 삼중 견제 구조가 작동하는 것이다.
호주는 연방경쟁소비자위원회(ACCC)가 ‘프랜차이징 행동강령’을 둬 ‘선의의 의무(good faith)’를 법으로 명시하고 분쟁 발생 시 연방 중소기업 옴부즈맨이 조정 테이블을 운영한다. 점주는 본사와 직접 싸우는 대신 제3의 중재기관을 통해 객관적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영국은 영국프랜차이즈협회(BFA)가 업계 자율규제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회원사들은 윤리 코드와 인증 기준을 따라야 한다. 위반 시 자격 박탈이나 공개 경고가 내려진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BFA 인증 마크’가 소비자 신뢰의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평판 리스크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공정위가 신고 접수부터 조사, 처벌까지 모두 담당하는 단일 구조를 갖고 있다. 민간 감시단체나 업계 협의체의 권한은 사실상 없다. 정보 공개 의무도 불투명하다. 공시 주기가 연 1회에 불과한 데다 갱신 시기조차 지연되다 보니 실제 영업 상황과 괴리가 클 수 밖에 없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부의 역할을 ‘감독’에 한정하고, 실질적인 감시와 조정은 민간단체가 맡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은 공정위가 신고·조사·제재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신고는 느리고 조사 인력은 부족하며 제재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랜차이즈 점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창구가 부재한 셈이다.
최근 공정위는 개선책으로 가맹점주 단체의 협의권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개정안은 가맹점주 단체가 협의를 요청하면 본사가 반드시 응해야 하며 불응 시 고발 또는 제재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는 공정위에 등록해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폐업 시 위약금 없는 계약 해지권과 정보공개서의 분기별 공시제 도입도 포함됐다.
가맹점주의 협상력이 강화될 거라는 점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억제할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해선 여전히 미지수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점주 단체가 협의권을 행사하려면 자금·인력·법률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인프라는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법 제도와 함께 민간 감시·평판 시스템을 통한 견제 장치가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BFA처럼 업계 자율기구가 ‘윤리 인증제’를 운영하고 위반 시 회원 자격을 박탈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사 입장에서는 과징금보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 더 큰 손실인 만큼 평판 리스크를 제도화한 민간 감시체계가 마련될 거라는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는 “선진국은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 의무 공개와 민간 검증 시스템을 결합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정위 제재’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과징금보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 더 큰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만큼 영국 BFA처럼 자율규제형 인증제 도입을 검토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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