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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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2025.10.23
  • [신간] ‘독재의 상처’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신간] ‘독재의 상처’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마르첼 디르주스 지음·정지영 옮김·아르테·3만원우리는 ‘독재자’에 대해 신화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두려울 게 없고,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의 모습이다. 정치학자 마르첼 디르주스는 그것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역사상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정치지도자는 아무도 없었다. 권좌를 지키기 위해선 미세한 비판도 원천차단해야 한다. 권력을 손에서 놓는 순간 끝이기에, 독재자가 된다는 것은 마치 트레드밀에 오르는 일과도 같다. 그는 실각에의 두려움 때문에 상식적이지 않은 일마저 감행한다.디르주스는 정권 붕괴를 불러오는 핵심 요인은 대중의 평화적인 대규모 저항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평화를 얻게 된 후가 더 중요하다. 한 여인은 말했다. “혁명은 텅 빈 새집을 얻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전히 고치고 가구를 채워야 하죠”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건 보수·진보보다 민주 대 반민주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할 때다.학벌-입...

    1643호2025.08.27 06:00

  • [신간] 미국 정치지형 바꾼 가난과 수치심
    [신간] 미국 정치지형 바꾼 가난과 수치심

    도둑맞은 자부심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이종민 옮김·어크로스·2만3000원미국 중동부 켄터키주 파이크빌은 한때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다. 대다수가 백인인 주민들은 “우리가 미국 전역에 불을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료도 우리가 공급했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석탄 산업이 쇠락한 지금은 많은 주민이 낮은 보수의 일자리를 전전하고, 청년들은 마약에 손을 댄다. 과거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 등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많은 표를 던졌던 이곳은 이제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텃밭이 됐다.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2017년부터 8년간 파이크빌 주민들을 만나며 다양한 감정을 살폈다. 한때 타투숍을 운영하다 폐업한 주민은 “석탄 산업의 쇠퇴 같은 큰 흐름까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그런 변화가 타투숍을 찾는 고객 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의주시하지 않은 건 내 책임이고, 결국 내 탓”이라고 말한다. 상실감과 박...

    1643호2025.08.27 06:00

  • [정태겸의 풍경](94) 강원 정선-쉼터가 돼준 뒷골목 성당
    [정태겸의 풍경](94) 강원 정선-쉼터가 돼준 뒷골목 성당

    내리꽂히는 햇볕이 견디기 어려웠다. 투명하게 맑은 하늘이어서 좋았지만, 그래서 태양이 더 뜨거운 것만 같았다. 강원 정선읍을 거닐고 있었다. 아리랑시장에서 콧등치기국수에 메밀총떡을 먹고 나온 길. 파란 하늘이 예쁘길래 그저 한가롭게 걷고 싶었다. 그 결정을 후회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어디론가 들어가야 하나 싶었다. 막상 둘러보니 그럴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보인 곳이 정선성당이었다. 건물의 생김새가 묘했다. 콘크리트 건물인데 처마 끝을 한옥처럼 곱게 들어 올렸다. 문 창살도 한옥의 그것을 닮았다. 문외한의 눈에도 지은 이의 의도가 보였다.본당 바로 옆 정원 의자에 앉았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지만, 본당 덕분에 그늘이 졌다. 잠시 앉아 둘러보니 이 성당은 뜰이 정말 아름답다. 뒤편의 커다란 나무, 그 앞의 성모상, 주변을 에워싼 초록의 생명들. 한쪽에는 주보 성인이 십자가를 들고 본당의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1643호2025.08.27 0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65) 미국 초파리 기지의 비극
    [김우재의 플라이룸](65) 미국 초파리 기지의 비극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광기가 학문의 전당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 야만적 칼날이 마침내 현대 유전학의 심장부, 하버드대학의 플라이베이스(Flybase)를 겨눴다. 전 세계 초파리 유전학자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하던 이 위대한 지식의 보고가, 자금난이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해고의 칼바람을 맞았다. 지식의 등대가 꺼져가고 있다. 연구자들의 항해를 돕던 큐레이터들이 해고되면서, 인류가 쌓아 올린 유전학의 위대한 서고는 이제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과학은 축적의 역사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선 그 역사를 지우려는 퇴행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학 옥죄기 속에 초파리 유전학의 살아 있는 데이터베이스 플라이베이스는 존폐의 기로에 섰다. 하버드 팀의 해고는 단순한 실직이 아니라 기초과학과 질병 연구의 초석을 허무는 지적 파괴 행위에 가깝다. 20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초파리 유전학의 최전선 기지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종언을 고하려 한다.초파리 유전학의 탄생과 ...

    1643호2025.08.22 14:31

  • [문화캘린더] 효녀 심청 넘어 MZ 심청의 ‘파격’
    [문화캘린더] 효녀 심청 넘어 MZ 심청의 ‘파격’

    [창극] <심청>일시 9월 3~6일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관람료 VIP석 8만원 R석 6만원 S석 4만원 A석 2만원국립창극단이 전통을 바탕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번 시즌 개막작 <심청>은 지금 이 시대가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를 전한다. 판소리 ‘심청가’가 효와 희생을 노래했다면, 이번 작품의 심청은 사회 속 약자를 대변하는 존재로 재해석됐다.연출은 오페라 전문지 ‘오펀펠트’ 선정 ‘올해의 예술가’이자 독일 최고 권위의 파우스트상 후보에 오른 요나 김이 맡았다. 그는 원작의 틀을 해체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레지테아터 기법을 적용해 시공을 초월한 해석을 선보인다. 작창·음악감독은 <귀토>, <리어> 등에서 음악을 이끌어온 한승석이 맡아 깊고 섬세한 음악 언어로 중심을 잡는다. 무대는 세계 유수 오페라 페스티벌 경력을 지닌 독일 무대팀이 합류해 시각적으로도 완성도를 높인다.주...

    1642호2025.08.20 06:00

  • [시네프리뷰] THE 자연인-오랜만에 느끼는 진짜 독립영화의 ‘괴랄한’ 맛
    [시네프리뷰] THE 자연인-오랜만에 느끼는 진짜 독립영화의 ‘괴랄한’ 맛

    제목: THE 자연인(The Nature Man)제작연도: 2025제작국: 한국상영시간: 124분장르: 코미디, 미스터리감독: 노영석출연: 변재신, 정용훈, 신운섭, 이란희개봉: 2025년 8월 20일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제작/배급: 스톤워크한밤중 잠에서 깬 주인공. 방에서 나와보니 주인장 ‘자연인’은 방에 호롱불을 켜고 앉아 뭔가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 몰래 엿보니 그가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것은 짜장면이다. 그리고 군만두. 첩첩산중 초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배달음식이다. 가게는커녕 도로도 없어 주인공들도 차를 놔두고 꽤 오랜 시간을 걸어 올라간 곳인데? 미스터리다.영화 이야기는 <요재지이> 같은 괴담집에 실릴 법한 형식이다. 왜 있잖는가. 산길을 헤매던 과객이 어느 집에 묵었는데 밤에 술 가지러 나간 여주인이 안 돌아와 헛간 문틈으로 엿보았더니 여주인이 천장에 커다란 구렁이를 매...

    1642호2025.08.20 06:00

  • [신간] 성장 과정과 같은 사물 만들기
    [신간] 성장 과정과 같은 사물 만들기

    만들기팀 잉골드 지음·차은정 외 옮김·포도밭·2만5000원영국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집필한 ‘선의 인류학 3부작’(<라인스>·<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중 두 번째 저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네 개의 A’(Anthropology(인류학)·Archaeology(고고학)·Art(예술)·Architecture(건축))를 통해 만들기, 앎, 실천, 관찰 등에 대한 본질적인 사유에 착수한다. 과연 만들기란 ‘재료’를 가지고 ‘주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방적인 과정일까? 저자는 이러한 아이디어에 반대한다. 그는 “사물의 만들기는 성장의 과정과 같다”고 주장한다. 쓰기, 관찰, 배움도 마찬가지라서 한 책을 써내는 일은 곧 저자가 관찰의 대상, 질료‘와 함께’ 존재하고,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계획된 결과로서의 인공물 역시 어느 정도 허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저자는 ‘네 개의 A’라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

    1642호2025.08.20 06:00

  • [신간] 더 큰 문제는 청년 극우다
    [신간] 더 큰 문제는 청년 극우다

    내란 예방 경제학원승연 외 지음·생각의힘·1만9800원12·3 불법 계엄에 대한 책임은 내란 수괴와 그 일당에게 묻는다고 치자. 더 큰 문제는 탄핵과 대선을 거치며 드러난 청년 극우의 존재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집회에 대규모 인파가 결집하고, 법원을 습격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한국사회가 심각한 병리 현상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저자로 참여한 13명의 경제학자는 “(극우 세력의 위협은)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근저의 구조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들은 극우 세력의 확산에 경제적 요인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살폈다.책은 극우가 부상한 원인으로 저성장과 역동성 상실, 능력주의의 확산과 양극화 등을 꼽는다. 역동성의 상실을 짚은 대목은 인상적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단순히 성장률이 떨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도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

    1642호2025.08.20 06:00

  •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5) 남태평양 팔라우-상어에 붙어 호가호위, 빨판상어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5) 남태평양 팔라우-상어에 붙어 호가호위, 빨판상어

    호랑이에게 잡힌 여우가 임기응변을 발휘한다. “나는 천제의 명을 받은 귀한 몸이다. 네가 나를 해치게 되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니 큰 벌을 받을 짓이다. 천제의 명을 다른 동물들은 다 알고 있는데 너는 어찌 모른단 말이냐.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 뒤를 따라와 봐라.”호랑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우를 앞세우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만나는 짐승마다 꼬리를 내리고 달아나기 바쁜 게 아닌가.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를 따라가던 자신 때문이지만, 호랑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는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에 관한 이야기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행위를 말한다.바닷속에는 상어나 바다거북 등 대형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다. 2020년 남태평양 팔라우 해역에서 만난 빨판상어도 그중 하나다. 상어의 배와 꼬리지느러미 앞쪽에 붙은 채 상어에게 몸...

    1642호2025.08.20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4) 장애와 장해, 대륙과 군도 사이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4) 장애와 장해, 대륙과 군도 사이

    지난 8월 4일, 서울과 제주에서 ‘상통하면서 대치’하는 국제학술대회가 동시에 열렸다.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시각: 탈식민, 군정, 민주주의)와 제주대학교에서 열린 ‘비판적섬연구 국제학술대회’(군도적 전환과 다른 아시아들: 문학, 정치, 문화 속의 행성적 돌봄)다. 각기 역사와 인문학을 대표하는 별도 행사인데 곱씹을수록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된다.대한상공회의소에서 스티븐 코트킨 교수(이하 코트킨)는 기조연설 ‘스탈린과 한국: 계산, 계산 착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한반도 분단은 국제 질서와 소련의 지정학적 이익이라는 ‘구조적 맥락’ 속에서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냉전과 신식민주의 근현대사를 정세와 ‘대륙적 사고’(Continental Thought·서구 중심적 사고)로 다시 들여다본 것이다. 한편 제주대에서 가야트리 스피박 교수(이하 스피박)는 기조연설 ‘행성성에 대한 재사유’(Selling Pl...

    1642호2025.08.15 1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