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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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2025.10.23
  •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7) 남태평양 팔라우-블루코너 상어의 먹이 사냥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7) 남태평양 팔라우-블루코너 상어의 먹이 사냥

    적도 인근 팔라우 해역은 300여개의 아름다운 섬과 푸른 바다로 펼쳐진,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2018년 팔라우의 대표적인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인 ‘블루코너’를 찾았다.수심 20m 지점, 수중 언덕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몸에 부착한 등산용 카라비너에 연결된 갈고리를 암초 틈에 고정하고, 까마득한 해저에서 치솟아 오르는 거센 상승 조류를 버티고 있으니, 심해로부터 유유히 올라오는 상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헤엄치던 수만 마리의 물고기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물고기 떼 사이로 잠입해 들어간 상어는 먹잇감을 고르는 듯, 한참을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턱을 아래로 당기며 몸을 잔뜩 수축시켰다. 상어가 턱을 당긴다는 것은 앞으로 튕겨 나가기 직전의 예비 동작이다. 이를 눈치 챈 물고기 떼가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동시에 지느러미를 퍼덕이며 내는 ‘윙~’ 하는 진동음은 ...

    1646호2025.09.17 06:08

  • AI 다룬 책 많은데 ‘먼저 온 미래’ 왜 화제?
    AI 다룬 책 많은데 ‘먼저 온 미래’ 왜 화제?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은 기술 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넘어 인간의 질서와 위상을 되묻게 한 사건이었다. 장강명 작가의 논픽션 <먼저 온 미래>는 그 충격 이후 8년, 인공지능(AI)이 한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취재 대상은 전·현직 프로기사 29명과 관련 전문가 6인.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AI 도입이 바둑계에 남긴 구조적 변화를 따라간다.작가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 이후의 충격을 포석의 변화부터 입단 제도의 수정, 관전 문화의 쇠퇴, 프로기사 위상의 하락 등 바둑 생태계 전반에서 ‘인간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추상적인 예측이 아니라 특정 커뮤니티의 붕괴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양상을 심층 인터뷰와 현장 중심으로 그려낸다.출판계 넘어 바둑계에도 반향<먼저 온 미래>는 지난 6월 출간 이후 두 달 만에 8쇄를 돌파했고, 누적 판매 2만5000부를 기록했...

    1646호2025.09.15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6) 고정관념 전복, 재해석의 기쁨? 상처?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6) 고정관념 전복, 재해석의 기쁨? 상처?

    본적 없는, 경험하지 못했던 관객 체험형 혹은 몰입형 작품이 연달아 상연되고 있다. 8월 말~9월 초 한국 공연예술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할 만큼 파격적인 작품이 연속 상연됐다. 효심을 상징하는 고소설 <심청>을 기반으로 한 판소리 <심청>을 해체한 잔혹 창극 <심청>,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모티브로 섬에 갇힌 소년들의 약육강식을 추출해 8명 남성 무용수의 컨템포러리 댄스(동시대적 무용)와 전라 퍼포먼스로 폭력의 악순환을 감각하게 한 <김성훈 on Sync Next 25 ‘pink’>(이하 ‘핑크’),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와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 <레베카>를 모티브로 하면서 서사적으로는 분절하고 해체한 관객체험형 몰입극 <슬립노모어> 등이 대표적이다.해체로 시작하는 동시대적 사유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창극단의 <심청>이다....

    1646호2025.09.12 14:41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12) 기억의 봇물이 터질 때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12) 기억의 봇물이 터질 때

    침묵은 미덕으로 칭송되지만, 침묵한다는 것은 사실상 발언권이 없거나 자기표현이 억눌려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누가 말하고, 무엇이 이야기되는가는 사실상 정치적 문제다. 가령, 여성들은 자신들이 보고 겪은 전쟁에 대해서 침묵한다. 반면에 남성들에게 전쟁은 상처이자 훈장으로 빈번히 회고된다. 사회학자 조은은 군국주의와 반공이데올로기, 친미와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일상 문화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여성들은 국가와 남성이 만들어낸 전쟁 이야기에 포위돼왔으며, 그 결과 불완전한 시민권자, 최하위 민중(서발턴)에 머물게 됐다고 꼬집는다. 전쟁과 냉전체제는 사병으로서의 남성을 1등 시민으로 인정하고 보호를 명분으로 여성에게 종속을 요구하는 가부장제다.왜 여성의 전쟁 경험은 함구되는가? 전방에서 총을 든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이 머무는 후방이 더 안전하기 때문일까? ‘전쟁은 남성에게 부여된 암묵적인 강간 면허’라는 수잔 브라운밀러의 말처럼 전시에서 성폭력은 전술로 사용된다. 여성의 신체...

    1646호2025.09.12 14:41

  • [김정호의 생명과 환경](2) 잃어가는 젊음, NAD⁺는 어떻게 시간을 거스르는가?
    [김정호의 생명과 환경](2) 잃어가는 젊음, NAD⁺는 어떻게 시간을 거스르는가?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이젠 늙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고왔던 얼굴엔 주름이 생기고, 술술 떠오르던 이름도 머릿속에서 흐릿해진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노화는 은밀하게, 그러나 틀림없이 찾아온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조용히 일하던 우리 몸의 NAD⁺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기 시작한다. 연구자들은 이 NAD⁺의 감소와 노화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세포 속의 작은 일꾼NAD⁺의 원래 이름은 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다. 한 번에 읽기도 힘든 이름이다.그렇지만 이 물질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에 다 있다. 세포가 살아 숨 쉬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NAD⁺는 우리 몸에서 ATP(아데노신삼인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에 관여한다.우리가 먹은 음식은 ATP 에너지로 바뀌어야 근육을 움직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NA...

    1646호2025.09.12 14:39

  • [문화캘린더] 한국형 가족 뮤지컬로 재구성
    [문화캘린더] 한국형 가족 뮤지컬로 재구성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일시 9월 27일~12월 7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관람료 VIP석 17만원 R석 14만원 S석 11만원 A석 8만원1993년 개봉한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이 3년 만에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원작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가족 코미디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거쳐 한국 관객에게도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다.이번 한국 공연은 ‘리메이크’ 수준을 넘어서 한국형 공연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연출 김동연, 음악감독 김문정, 안무 송희진, 번역가 황석희 등 국내 창작진이 참여해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정서와 무대 환경에 맞는 각색을 시도했다. 가족 해체 이후에도 아버지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심리를 강조하며 정서적 공감대 형성에 무게를 둔 연출이 특징이다.이혼 후 양육권을 상실한 아버지 다니엘이 자녀들과의 ...

    2025.09.10 06:00

  • [시네프리뷰] 살인자 리포트-성취와 가능성 사이의 밀실 스릴러
    [시네프리뷰] 살인자 리포트-성취와 가능성 사이의 밀실 스릴러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밀실 스릴러’ 장르라는 점만으로도 높이 살 만하다. 시나리오와 연출의 재능이 크게 빛을 발하고, 나름대로 밀도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제목: 살인자 리포트(Murderer Report)제작연도: 2025제작국: 한국상영시간: 107분장르: 미스터리, 스릴러감독: 조영준출연: 조여정, 정성일, 김태한개봉: 2025년 9월 5일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한정된 공간’을 주 무대로 선택하는 영화의 특색이 있다.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만큼 등장인물의 수도 소수인 경우가 많다. 또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로 관객들을 압도해야 한다. 연극무대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상상력의 범위가 무한대라 할 수 있는 영화 작업에서 굳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상업적 측면에서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기본적인 묘책임은...

    1645호2025.09.10 06:00

  • [신간] 루소와 스미스에 대한 선입견 깨기
    [신간] 루소와 스미스에 대한 선입견 깨기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이슈트반 혼트 지음·김민철 옮김·오월의봄·2만3000원책을 펼치면 서두에 두 사상가의 초상화가 나란히 실려 있다. 애덤 스미스(1723~1790)와 장 자크 루소(1712~1778)다. 저자는 이 책에서 통상 ‘반대되는 두 쌍’으로 여겨져 왔던 상업사회의 두 사상가 스미스와 루소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스미스는 상업사회의 이론가였지만 루소는 상업사회에 반대하는 공화주의자였다는 선입견이다.스미스는 18세기의 상업사회를 단순히 상거래 활동이 늘어난 사회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상업적 개인으로서 행동하는 사회라 정의했다. 역사가 이슈트반 혼트의 비교 연구를 통해 우리는 각기 다른 궤적으로 루소와 스미스가 상업사회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탐구해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대 지성사 연구를 대표하는 혼트의 역작을 김민철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번역했다. 책에 함께 실린 저자와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제는 독서에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1645호2025.09.10 06:00

  • [정태겸의 풍경] (95) 충남 부여-백제의 마지막 지켜본 소나무산
    [정태겸의 풍경] (95) 충남 부여-백제의 마지막 지켜본 소나무산

    충남 부여는 경주 못지않은 역사 도시다. 경주가 신라의 고도라면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부여였다. 경주에 비하면 부여에 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더구나 한여름이어서일까. 인적이 드물었다. 부여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백마강, 그리고 그 곁에 솟아오른 언덕. 우리에게는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낙화암이 있는 곳. 그곳이 부소산성이다. ‘부소’는 백제의 고어로 소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부소산은 곧 소나무산이다. 106m의 키 작은 이 산은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저 나무가 그때의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리 없겠지만,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만큼 산길을 오르는 내내 소나무가 길가를 지키고 섰다.성왕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538년. 처음 토성을 쌓고 123년이 지난 후 백제는 마지막 빛을 잃었다. 낙화암까지 오르고 나니 백마강이 널리 휘돌아가는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서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고? 믿기지 않는다. 낙화암 아...

    1645호2025.09.10 06:00

  • [기고] 파지, 스크랩북, 이력서, 출판계약서로 읽는 염상섭
    [기고] 파지, 스크랩북, 이력서, 출판계약서로 읽는 염상섭

    아닌 밤중에 퍼즐 맞추기2025년 7월 30일, 국립한국문학관 자료실에서 난데없는 퍼즐 맞추기가 벌어졌다. 근대문학 대표작가인 염상섭의 기증 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봉투 안에 담긴 종잇조각은 언뜻 보기에도 수십 장이 넘었다. 수북이 쌓인 종잇조각만으로는 그 정체를 알기가 어려웠다. 책상 2개를 붙여 놓고 종잇조각들을 펼쳐 놓기 시작했다. 작가가 별세 직전 ‘사상계’에 연재했던 ‘문단회상기’라는 제목이 곳곳에서 보였다. 펼쳐 놓은 조각들을 맞춰 보았다. 찢어진 조각, 이어진 글자들이 단서가 돼주었다. ‘문단회상기’ 첫 페이지가 여러 장이었고, 그 내용은 저마다 달랐다. 몇 시간에 걸친 퍼즐 맞추기 끝에 그 종잇조각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문단회상기’ 초고의 파지(破紙)를 모아 놓은 것이었다.지금 세대에게는 생소한 이야기겠지만, 작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고전적인 이미지가 있다. 좁고 어두컴컴한 방, 앉은뱅이책상 위에 봉두난발의 작가가 앉아...

    1645호2025.09.05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