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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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2025.10.24
  • [정태겸의 풍경](91) 강원 태백 철암탄광역사촌-1970년대에 멈춰 선 골목 풍경
    [정태겸의 풍경](91) 강원 태백 철암탄광역사촌-1970년대에 멈춰 선 골목 풍경

    강원도 태백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길도 멀고 험해서 오지 중 오지였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 나오는 석탄은 수없이 많은 사람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20~30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태백의 철암지역은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다.서울의 명동이나 종로만큼 사람이 북적대던 태백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건 액화가스가 보편화하면서부터였다.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랬던 철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번화가였던 건물이 통째로 전시장이 됐고, 백두대간협곡열차라고 부르는 관광열차가 철암까지 이어졌다. 철암의 변화는 입소문을 타고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있다.페리카나, 호남슈퍼, 진주성, 봉화식당 그리고 한양다방. 옛 시절 이곳에서 장사하던 가게의 이름이 그대로 전시장의 이름이 됐다. 어떤 곳은 예술가의 전시공간이 됐지만, 어떤 곳은 예전 태백의 기록사진이 상설전시돼 있다. 그중 눈길을 끈 건 탄광회사 사무실의 월급날 풍경이다. 남편들이...

    1637호2025.07.16 06:00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8) 여성 서발턴의 삶에 대한 기록과 모성성 다시 쓰기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8) 여성 서발턴의 삶에 대한 기록과 모성성 다시 쓰기

    198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10년간은 한국사에서 좋았던 시간으로 회고된다. 6·10 항쟁 후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가 종식돼 민주주의가 제도화하고, 경제적으로는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이 활성화됐다. 문화적으로는 대중 소비사회가 출현해 욕망의 자유가 추구되고 정체성 정치 투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중산층의 체험에 기반한 것이다. 공선옥은 창작집 <피어라 수선화>에서 87년 체제 후 정치의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떠난 뒤 덩그러니 남겨진 자들의 삶을 그린다. 특히 광주항쟁의 시민군이었던 ‘서발턴(Subaltern·하위 주체)’들이 정치세력화에 실패하고 더욱 깊은 절망을 안게 된 상황을 그린다.어떻게 목숨 붙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선옥의 문학은 1990년대의 미적 정조인 ‘쿨’함과 거리를 두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예찬하기보다 상호의존과 돌봄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자유는 극소수 비장애 중산층 남성에게나 가능...

    2025.07.11 14:02

  • [문화캘린더] 온몸으로 만나는 지순한 사랑
    [문화캘린더] 온몸으로 만나는 지순한 사랑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일시 8월 8~24일 장소 빛의 시어터 관람료 R석 20만원 S석 15만원 A석 9만원 시야제한석 6만원 발코니 스탠딩석 7만원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삶을 살던 비올레타는 연회에서 순수한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진심 어린 사랑에 눈뜨고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가문의 명예를 이유로 비올레타에게 이별을 요구하고,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물러선다. 오해로 상처받은 알프레도는 연회 석상에서 비올레타를 모욕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뒤 병든 그를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죽음이 가까운 순간 두 사람은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비올레타는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쉰다.이번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몰입형 오페라로 관객이 공간 전체를 무대로 삼아 인물의 감정과 음악을 바로 곁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비올레타 역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아시아인 최초 우승자 소프...

    1636호2025.07.09 06:00

  • [시네프리뷰]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 새로움을 욕심낸 거대한 지리멸렬
    [시네프리뷰]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 새로움을 욕심낸 거대한 지리멸렬

    관건은 이야기다. 그릇을 아무리 새롭게 갈아치워도 결국 그 안에 담기는 것이 ‘맛’과 ‘영양’의 중요한 정수이자 본질이니 말이다.제목: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Jurassic World: Rebirth)제작연도: 2025제작국: 미국상영시간: 133분장르: 액션, 모험, SF감독: 가렛 에드워즈출연: 스칼렛 요한슨, 조나단 베일리, 마허샬라 알리, 루퍼트 프렌드개봉: 2025년 7월 2일등급: 12세 이상 관람가1993년 공개된 <쥬라기 공원>은 영화사에 획을 그은 중요한 영화 중 하나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소설부터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고, 가족 모험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아직 실험단계에 머물고 있던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의 사실상 완성단계를 보여준 작품으로 높이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실상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인해 이후 급속하게 사라지게 되는...

    1636호2025.07.09 06:00

  • [신간] 자연의 경이, 그리고 인간의 미래
    [신간] 자연의 경이, 그리고 인간의 미래

    버려진 섬들캘 플린 지음·황지연 옮김·문학동네·1만9800원지구에서 가장 섬뜩하고 황량한 장소들이 있다면 어디를 꼽을까. 전쟁, 원자로 용해, 자연재해, 사막화, 환경 독성, 방사선 피폭, 경제 붕괴 등으로 황폐화한 장소들이 그곳이지 않을까. 이 책은 생태학적 과정을 통해 황폐화한 장소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탐사 논픽션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가 직접 체르노빌, 키프로스 무인지대, 몬트세랫섬 화산 등 최악의 상태를 겪은 열두 곳을 여행하며 어둡고 절망스러운 환경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책 제목의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곳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인간에게 점유됐다가 문명사회에서 섬처럼 고립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실상은 참혹하지만 저자는 이 책은 ‘구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터주 식물은 콘크리트와 돌무더기를 헤치며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찾아내고 이끼는 황금빛 잔디로, 양귀비와 루핀, 관목, 수목 등은 느리지만 계속해서 생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

    1636호2025.07.09 06:00

  • [신간]코미디는 결국 ‘관계맺기’다
    [신간]코미디는 결국 ‘관계맺기’다

    적정 코미디 기술금개 지음·오월의봄·2만원성소수자인 저자는 퀴어 행사와 퀴어 팟캐스트 등 진행자로 활동하며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그에게 코미디란 “예술 장르라기보다는 인생의 태도”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희극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우스운 광대처럼 보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자신을 단련하며, 소수자들이 함께 웃는 기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순수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책은 실제 코미디에서 쓰이는 기술을 안내한다. 예컨대 코미디에서 ‘로스팅(roasting)’은 선을 넘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한 주제로 다른 사람을 재치있게 놀리는 기술이다. 미국 뉴욕의 성소수자 그룹, 특히 드래그 문화에서 상대를 놀리는 ‘리딩(reading)’이라는 행위가 코미디의 로스팅과 비슷한데, 드래그 문화에서는 상대를 잘 ‘읽고’ 상대와 나의 관계를 잘 파악해 놀리는 것을 성공적인 리딩으로 본다. 코미디의 로스팅 역시 불쾌함 없이 성공하려면 ‘관계성’을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1636호2025.07.09 06:00

  •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2) 인도네시아 부나켄-나비처럼 우아한, 나비고기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2) 인도네시아 부나켄-나비처럼 우아한, 나비고기

    나비고기(농어목 나비고깃과)는 전 세계적으로 120여종이 분포한다. 작고 납작한 체형에 주둥이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몸길이는 20㎝ 정도다. 몸빛은 대부분 노란색, 일부 종은 머리 부분에 눈을 가로지르는 검은색 세로띠가 있다. 색이 화려한 것은 서식지인 형형색색 산호초의 화사함에 맞추기 위함이다. 나비고기의 움직임이 산호색에 묻혀들면 포식자가 찾기 힘들지 않을까.나비고기는 가슴지느러미뿐 아니라 다른 지느러미도 큰 편이다. 특히 배지느러미는 가시 모양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나비고기란 이름은 지느러미 중 유난히 큰 가슴지느러미를 펼치면 나비 날개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들은 나비를 연상하게 하는 예쁜 이미지를 가진 데다 수족관에도 잘 적응해 관상용 물고기로 인기가 있다.나비고기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거친 파도와 조류에 맞서며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2012년 인도네시아 해양보호구역 부나켄 해역을 찾았을 때, 수중절벽지대에 보금자리...

    1636호2025.07.09 06:00

  • 7월 5일 새벽 4시 18분, ‘일본 대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7월 5일 새벽 4시 18분, ‘일본 대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대지진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만화가가 자신이 꾼 꿈을 바탕으로 대재난을 예고한 만화가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일본 정부 역시 대지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방재 대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만화 속 예언이 실제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국내외에서 일본 여행 취소가 이어졌고, 만화에서 예언한 날짜를 주시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인공지능(AI)이 노동력을 대체하고 우주 개척이 이뤄지는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뒤늦게 화제를 모은 예지몽 만화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가 자신이 꾼 예지몽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 <내가 본 미래: 완전판>(이하 ‘완전판’)에서 내놓았던 예언의 날은 2025년 7월이다.‘일본의 남쪽, 대만의 서쪽, 인도네시아 모로 타이 섬의 북쪽, 북 마리아나제도의 서쪽으로 선을 그었을 때 겹치는 부분’이 진원지로 지목됐다. 즉 일본 남쪽 태평양 부근이...

    1636호2025.07.07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1) 부성의 재구성, 공감·수용·함께 감당하기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1) 부성의 재구성, 공감·수용·함께 감당하기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은 여전히 유효할까? 2010년 전후, 입시 경쟁 필승의 조건으로 회자했던 이 우스갯소리는 들여다볼수록 냉소적이다. 아버지는 단순한 매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말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고, 부자 아버지에 기대 자녀에게 고스란히 그 후광만 전달하는 게 왕도라는 의미다. 최근 연이어서 본 네 작품 속 다양한 부성(父性)은 적어도 ‘무관심’은 지양한다. 오히려 무엇이든 함께하려 애쓴다. 아버지들은 더 이상 단순한 매개가 아니다. 그들은 때때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결국 감정의 무게와 책임을 끝까지 감당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부성’을 구성한다.공감하고 수용하는 아버지들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1910)이 원작인 뮤지컬 <팬텀>(아서 코핏 극작, 모리 예스톤 작곡·작사, 박천휘 한국어 가사, 로버트 요한슨 연출, 기진주 협력연출, 마이클 슈바이카트 무대, 김...

    2025.07.04 14:36

  • [문화캘린더] 사랑과 창작, 열망이 얽힌 이야기
    [문화캘린더] 사랑과 창작, 열망이 얽힌 이야기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일시 7월 5일~9월 14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관람료 OP석 12만원 R석 12만원 S석 9만원 A석 6만원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창작의 슬럼프에 빠진 젊은 작가 셰익스피어가 영감을 얻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집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16세기 런던, 무명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희곡을 준비하던 중 연극 오디션에서 ‘토마스 켄트’라는 이름으로 남장을 한 여인 비올라를 만나고, 그를 극단에 캐스팅한다. 이후 연회장에서 본래 모습의 비올라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린다.비올라는 이미 가난한 귀족 웨섹스와 정혼한 상태지만,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무대에 오르기를 감행한다. 셰익스피어는 그와의 관계를 통해 창작의 전환점을 맞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해간다. 그러나 여성 배우의 무대 출연이 금지된 당시 사회적 규범에 따라 비올라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

    1635호2025.07.0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