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독감 예방접종 꼭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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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감 예방접종 꼭 해야 할까

입력 2025.10.03 14:55

수정 2025.10.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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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호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
한 시민이 독감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 시민이 독감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질병관리청은 2025~2026절기 독감 예방접종을 9월 22일에 시작해 내년 4월 30일까지 한다고 공지했다. 작년에는 4가 백신을 했지만, 이번에는 3가 백신으로 시행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와 국내 예방접종전문위원회 논의 결과를 따른 것이다.

환절기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한가하던 병원 대기실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젊은 남녀 학생에서부터 어르신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면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두려움 속에 주사실로 끌려가듯 들어가 팔을 걷어붙인다. 그리고 외면하듯 고개를 돌린다. 따갑게 어깨 근육을 파고드는 주삿바늘. 그 순간, 독감 예방접종이 더 이상 예방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계절마다 되풀이되는 우리의 일상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병원을 찾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오간다. “작년에 맞았는데 또 맞아야 해?”, “나는 건강한데 굳이 맞을 필요가 있나?”

겉보기에는 이런 의문이 꽤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제대로 된 예방주사라면 효과가 작아도 1년 이상은 가야 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 독감은 그렇지 못하다.

독감 바이러스는 변덕쟁이다. 매년 조금씩, 때로는 크게 모양이 변한다. 마치 변장술에 능한 악당처럼. 또한 우리 면역력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떨어진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독감은 계절마다, 해마다 다시 유행한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바이러스와 면역 그리고 유행의 리듬 때문에 독감 백신을 매년 새로 맞는 것이 좋다.

변신을 멈추지 않는 독감 바이러스

우리는 DNA(데옥시리보핵산)를 유전물질로 갖고 있다. 그런데 독감 바이러스는 RNA(리보핵산)를 쓴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유전물질로 DNA를 사용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이런 바이러스는 사람처럼 유전물질을 복제할 때 교정 능력이 있다. 자신의 DNA 합성 과정에서 오류가 나면 이 기능을 이용해 오류를 바로잡는다. 글을 베낄 때 맞춤법 사전을 옆에 두고 꼼꼼히 오탈자를 확인하는 필사자 같은 태도다.

하지만 독감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다. 이 바이러스는 성격이 급하다. 복제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베끼고, 오타가 나도 못 본 척 그냥 넘어간다. 이 바이러스에겐 교정은 사치다. 그래서 독감 바이러스는 증식하는 동안 자신의 RNA 게놈에 크고 작은 오타, 즉 돌연변이가 쌓인다.

역사 기록을 봐도 차이는 분명히 나타난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DNA를 유전물질로 갖고 있다. 자신이 가진 교정 능력 때문에 DNA가 복제돼도 변이가 적었다. 그래서 인류는 20세기 후반 백신 접종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완전히 박멸할 수 있었다. 반면 독감 바이러스와 같은 RNA 바이러스는 매년 새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변이를 일으킨다. 그래서 백신을 맞더라도 다음 해엔 또 다른 모습의 독감 바이러스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독감 바이러스의 항원 소변이(antigenic drift)라고 한다. 이것이 해마다 혹은 주기적으로 새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돌연변이가 독감 바이러스 입장에선 어떨까. 이들의 생존에 유리할까? 아니면 오히려 불리할까? RNA 바이러스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이런 형태의 변이는 놀랍게도 바이러스 생존엔 별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많다. 주요 부위가 변하는 경우 바이러스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 좋게 면역계를 교란할 수 있는 부위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독감 바이러스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외투 단백질이 구조를 바꾼 탓에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분명 작년에 봤던 그 병원체인데 면역계는 처음 접하는 병원체라 판단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몸은 애써 준비했던 방어 시스템을 사용도 못 해보고 독감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독감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드는 순간

독감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를 한 줄로 길게 연결해 보관하지 않고, 마치 잘린 영화 필름처럼 8개의 RNA 조각에 나눠 보관한다.

평상시에는 이런 구조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독감 바이러스가 같은 세포에 동시에 감염돼 들어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치 퓨전요리를 하듯, 각자 가져온 8개의 RNA 조각이 뒤섞여 새로운 조합의 독감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 이 경우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 변이가 크게 나타난다. 이것을 항원 대변이(antigenic shift)라고 부른다.

다행스럽게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연이라도 한 번 발생하면 인류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1918 인플루엔자(스페인 독감)’가 유행하던 1918년 미국 캔자스주의 군 병원 / 위키피디아

‘1918 인플루엔자(스페인 독감)’가 유행하던 1918년 미국 캔자스주의 군 병원 / 위키피디아

역사적으로 ‘스페인 독감(1918년 봄~1920년 초)’ 때는 항원 대변이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나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 전사자 수가 약 2000만명이니 스페인 독감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이후에도 1957년에 아시아 독감이, 1968년에 홍콩 독감이 발생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발생했다. 모두 독감 바이러스의 항원 대변이 산물이었다.

매년 업데이트되는 백신

학자들은 변신하는 독감 바이러스와 매년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연구소에서 모은 수십만건의 독감 바이러스 샘플을 분석한다. 어떤 변이가 앞으로 판을 흔들지 예측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유력한 형태의 독감 바이러스를 겨냥한 백신 조합을 권고한다.

이 과정에서 남반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나라가 한여름일 때 호주나 브라질과 같은 남반구 국가는 겨울이라 독감이 기승을 부린다. 이 시기의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면, 몇 달 뒤 우리나라 겨울에 어떤 종류의 독감이 유행할지 예측할 수 있다. 일종의 예고편인 셈이다.

이 추천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은 부지런히 백신을 준비한다. 올겨울 우리나라에 권고된 조합도 이런 방식으로 나왔다. A형 독감 바이러스 2종(H1N1과 H3N2)과 B형 1종(Victoria), 총 세 가지 바이러스를 겨냥한 3가 백신(trivalent vaccine)이 이번 백신 접종에 쓰인다. 3가 백신이란 한 번 접종으로 최소 세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는 백신을 말한다. 바이러스의 얼굴이 바뀔 때마다 백신의 조합도 달라지니, 매년 맞는 예방주사가 사실은 우리에게 첫 접종인 셈이다.

해커들이 새로운 바이러스를 퍼트리듯, 독감 바이러스도 매번 다른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컴퓨터를 안전하게 쓰려면 보안 프로그램을 매번 업데이트해야 하듯, 건강을 지키려면 새로운 종류의 독감 백신을 해마다 맞아야 한다.

<김정호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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