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TikTok) 로고 앞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틱톡(TikTok)은 미국 자본과 중국 알고리즘이 결합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한때 개방된 세계에서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제경제 관계의 맥락에서 보면 틱톡 문제는 국가 안보, 데이터 주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가 소유한 이 플랫폼은 15억명 이상의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며 정보와 문화 전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2017년 제정한 국가정보법으로 인해 미국인의 데이터가 중국 정부에 유출될 위험을 국가 안보의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이 사안은 단순한 앱 금지를 넘어, 미국의 대중국 탈동조화(decoupling) 전략의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재등장과 함께 틱톡 사태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균형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틱톡 제재 과정은 지정학적 긴장이 점차 고조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틱톡을 ‘중국 스파이 앱’으로 규정하며 행정명령을 통해 금지를 시도했으나, 틱톡 측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위반을 주장하며 소송으로 맞섰다. 이후 2021년 틱톡 직원들이 자사 시스템을 이용해 미국 기자들의 위치를 무단 추적한 사건에 이어, 2023년 “중국 본사가 미국 사용자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내부 고발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논란은 다시 불붙었다.
미·중 정상의 ‘틱톡 동상이몽’ 부각
2024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외국 적대 세력 통제 애플리케이션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는 법안(PAFACA)’에 서명하며 바이트댄스에 2025년 1월 19일까지 틱톡의 미국 사업 매각을 요구했다. 틱톡은 헌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5년 1월 17일 미국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PAFACA의 합헌성을 인정하면서 “중국 정부의 잠재적 데이터 접근은 연방 직원 추적 및 첩보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한 판결이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유예 조치와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연장(75일)은 미·중 협상 여지를 남겨놓았다.
한 여성이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의 바이트댄스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틱톡 제재는 또한 미국 내에서 대중국 강경 노선과 경제적 실리 추구가 동시에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16일 PAFACA의 유예 기한을 또다시 90일 연장하는 등 법 집행의 유연성을 강조했으나, 동시에 의회와의 마찰을 유발해 권력 분립 원칙을 흔들 수 있다. 이는 ‘안보 우선’ 기조가 기술 교류를 어떻게 제약하는지 잘 보여주며, 동시에 동맹국들에 대한 유사 규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후 트루스소셜에 “무역, 펜타닐 유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그리고 틱톡 딜 승인 등 중요한 현안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밝히며, 이번 통화를 매우 생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틱톡 딜 승인에 감사드린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과의 만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틱톡 매각 협상이 사실상 타결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측 반응은 트럼프의 낙관적 평가와 뚜렷한 온도 차를 보였다. 관영 신화통신은 시진핑 주석이 틱톡 협상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지만, 동시에 ‘시장 규칙 준수’, ‘중국 법률과 이해관계 존중’, ‘미국의 공정한 경쟁 환경 제공’을 강조했다. 바이트댄스 역시 매각 약속 대신 미국 내 운영 지속 노력을 강조하며, ‘핵심 기술 보호’ 원칙을 재확인했다.
트럼프의 발언과 중국의 신중한 태도의 대비는 중국이 기술 주권 양보를 거부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두 정상의 통화는 진정한 합의 도출보다는 각각의 ‘동상이몽’을 부각하는 효과가 컸다. 이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이중 순환’ 전략과 미국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중국의 이중 순환 전략은 국내·국외 시장을 동시에 추구하지만, 기술 자립이 전제돼야 실현할 수 있다.
중국은 틱톡 알고리즘 통제권을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금지선으로 설정하고, 필요할 경우 엔비디아 칩 같은 반도체 수입 제한 등의 보복 조치를 시사했다. 또한 바이트댄스의 모호한 태도는 국내 국가주의적 여론을 고려한 전략으로, 이는 미·중 협상에서 국내 정치 변수가 국제 교섭을 제약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만약 협상이 지연된다면 APEC 정상회의 등 다자 무대에서 미·중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이며, 한국 같은 제3국에는 기술 중립성의 딜레마를 심화시킬 수 있다.
지난 9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미·중 경제무역 협상에서 양측 대표단이 마주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AFP연합뉴스
한국에 전략적 균형 외교 압박 요인 될 수도
2025년 9월 현재 틱톡의 향방은 미·중 정상 간 직접 대화로 이어지며, 바이든 행정부의 강경책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 중심 접근’으로 옮겨가고 있다. 합의가 실패하면 양국 갈등이 반도체, AI 등 다른 전략 기술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도 크다.
틱톡 사태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틱톡의 성장 과정에서 미국 자본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4년 바이트댄스 설립 이래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의 1억5000만달러 투자가 중국 AI 알고리즘(틱톡의 ‘포유 피드’)을 뒷받침하며 글로벌 확장을 이끌었다. 2018년 10억달러 규모의 뮤지컬리(Musical.ly) 인수는 월간 활성이용자 수(MAU)를 5000만명에서 5억명으로 끌어올렸다. 현재 약 15억명의 MAU를 확보한 틱톡은 지분 구조에서도 미국·글로벌 투자자(60%)와 중국 측(40%)이 공존하는, 미·중 경제 결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틱톡은 미·중 탈동조화의 희생양이 될 수 있으나, 협의가 성공한다면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 합의가 이뤄지면 미국 투자자의 지분은 80%로 확대되고, 바이트댄스는 20%로 축소될 전망이다. 이는 미·중 ‘윈-윈’ 모델로 진화할 수도 있지만, 알고리즘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한다면 ‘분절된 인터넷(splinternet)’을 가속하며 세계 경제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국제정치적으로 틱톡 문제는 미·중 리더십 경쟁의 축소판이며 제3국들, 예컨대 한국에는 전략적 균형 외교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