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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임신 일기

입력 2025.09.19 14:19

대중교통 이용 시 도움받을 수 있는 임신부 배지 / 탁지영 제공

대중교통 이용 시 도움받을 수 있는 임신부 배지 / 탁지영 제공

출산 예정일을 한 달쯤 앞두고 있다. 임신은 신기하고 경이롭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무엇보다 임신부는 스스로 엄격해지는, 자기 검열의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신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견딜 만했다. 입덧도 지나가니 언제 그랬지 싶다. 오히려 ‘임신 전과 후가 크게 달라선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짓눌렀다. 임신 초기부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나약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되뇌곤 했다. 주변에서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그랬다. 아이를 낳고 나면 1년 정도는 일을 놓게 된다는 불안한 마음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그 불안함을 메우기 위해선 이 순간만큼이라도 잘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임신부 배지도 불편한 대상이었다. 분홍색인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방에 매달아 놓으면 나의 정체성을 ‘임신부’로만 한정하는 것 같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는 다녔지만 거의 꺼내지 않았다. 평소 대중교통을 탈 때 앉지 않는 편이라 습관처럼 일어서서 다녔고, 정말 힘들 때만 임신부 배려석에 앉아 배지를 가방에 달았다. 때로는 나보다 더 힘든 임신부가 앉길 바라는 마음에 임신부 배려석을 비우고 일반 좌석에 앉았다. 그때마다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임신부인 나의 ‘지정석’은 저곳인데 괜히 여기 앉아서 다른 사람의 좌석을 빼앗은 건가 싶었다. 임신 전엔 아무 생각 없이 타던 대중교통도 복잡한 마음이 들게 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워준 건 경험자들의 조언이었다. 한 선배는 “임신부는 80%만 해도 다른 사람의 100%를 하는 것과 같다”고 늘 말해주었다. 다른 선배는 농담 삼아 “누구를 이겨 먹으려고 이상한 객기를 부리냐”고 했다. 이들도 임신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임신부는 자기 검열을 계속하게 되니 주변에서라도 그러지 말라고 잡아줘야 한다고 했다. 주변의 애정 어린 말 덕분에 나만 유별난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으론 나보다 더 취약한 고용구조에 있는 임신부는 이 끊임 없는 자기 통제를 어떻게 버티나 싶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 우연히 본, ‘임신 사실을 사장님께 말하지 못했다’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영상이 아른거렸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극성이냐’, ‘너무 소심한 것 아니냐’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임신부가 자기 검열의 굴레에 빠지는 건 한순간, 소수자가 돼버린 상황에서 다수와 ‘달라 보이지 않기 위해’ 분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래야만 출산 이후에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위를, 역할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놓고 표현하는 사람은 줄었지만, 암묵적으로 ‘임신하니 유세 부린다’라고 여기는 문화도 임신부가 자기 검열을 강화하는 데 한몫한다.

당신이 마주친 임신부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직장에서 배려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아마도 혼자 수십 번, 수백 번을 고민하고 검열한 끝에 겨우 내뱉은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무 못마땅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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