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열과 돌발 폭우로 쿨링 브레이크 잇단 발동…관중 안전과 선수 보호 비상
맨체스터시티의 엘링 홀란이 지난 6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클럽월드컵 16강전 도중 얼굴에 물을 뿌리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미국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폭염이 화두였다. 지난 7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은 한낮 경기에서 쿨링 브레이크가 여러 차례 발동됐다. 이달 초 끝난 US오픈 테니스에서는 습열과 돌발 폭우가 번갈아 경기 운영을 흔들었다. 지난 7월 영국 런던에서 치러진 윔블던 테니스 대회도 개막일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하며 관중 안전과 선수 보호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내년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월드컵은 폭염 리스크와 이동 거리 증가로 인한 탄소발자국 논란까지 더해지며 ‘기후 적응력의 시험장’이 되리라 전망된다.
클럽월드컵은 혹서·뇌우가 뒤섞인 북미 여름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수 경기가 정오부터 오후 초반에 배정되며 선수단과 코치진의 불만이 폭증했다. 마르코스 요렌테(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경기를 치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끔찍하게 더웠다”며 “발가락이 아프고 발톱까지 욱신거려 달리거나 멈추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엔조 페르난데스(첼시)는 “솔직히 말해 더위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며칠 전에는 현기증이 심해 경기 도중 땅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이런 기온에서 경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루이스 엔리케 파리 생제르맹 감독은 “이런 더위 속에서는 경기 내용 자체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이비치 알 아인 감독 역시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최 측은 현장 냉각 조치를 확대했다. ESPN은 “선수단의 체력 고갈과 지연·중단 위험은 내년 월드컵의 일정 편성에도 직접적 경고로 받아들여졌다”고 보도했다.
윔블던 개막일 기온 섭씨 32~33도
윔블던은 지난 6월 30일 개막일 기온이 섭씨 32~33도로 치솟았다. 언론은 “147년 대회 역사상 최고 온도”라고 보도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아이스 타월·자외선 차단제 비치, 볼퍼슨(공을 줍고 선수에게 전달하는 경기 진행 요원) 순환, 의료 인력 증강 등 대응책을 가동했고 일부 경기는 관중 열탈진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아드리안 마나리노(프랑스)는 “태양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며 “평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고 첫날 체감 더위를 토로했다. 아르나 사바렌카(벨라루스)는 준결승 도중 “런던은 이런 날씨에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더웠다. 계속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US오픈은 고습 환경으로 파행 운영됐다. 대회 기간 강한 뇌우가 뉴욕 퀸스를 덮치며 관중 대피와 운영 혼선을 낳았다. 미세 조정 수준의 ‘극한 더위 정책’이 있었지만, 무조건 경기를 중단해야 하는 기준이 없는 등 한계도 재확인됐다.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는 가장 더운 날 치러진 안드레이 루블레프와의 8강전 이후 “선수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영국 비영리단체와 연구기관이 공동 작성한 ‘Pitches in Peril’ 보고서는 2026년 월드컵 16개 개최지 중 10곳을 ‘매우 높은 열 스트레스 위험’으로 분류했고, 2050년에는 90% 가까운 경기장에 폭염 적응이 필요하리라 내다봤다. 댈러스·휴스턴은 WBGT 35℃ 초과 일이 최대 51일에 이른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WBGT는 습구흑구온도(Wet-Bulb Globe Temperature)로 사람의 체감 더위를 수치로 나타내는 국제표준지표다. 단순 기온이 아니라 습도, 태양 복사열, 바람까지 고려해 계산된다. WBGT 28℃ 이상은 강한 열 스트레스로 인한 운동 수행능력이 저하하는 수준이다. WBGT 32℃ 이상이면 극심한 열 스트레스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플레이를 하기 힘든 정도다. WBGT 35℃ 이상이면 경기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수준임을 뜻한다. 보고서는 “긴급한 적응 없이는 북미에서 열리는 마지막 여름 대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축구선수노조(FIFPRO)는 하프타임 20분 연장, 수분 보급 빈도 확대 등 규정 수정을 공식 요구했고, FIFA는 주간(낮) 경기를 지붕 있는 경기장으로 우선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오·오후 시간대 편성 축소에는 글로벌 중계 시간대·수익 구조를 이유로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지난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4회전 도중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선수단·관중 이동으로 탄소 배출 논란
대회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2026년 월드컵을 앞두고 FIFA의 환경·지속가능성 계획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지난 6월 “48개국·104경기 체제로 경기 수와 이동이 폭증하며 탄소 배출 370만t이 예상된다. 이중 85%가 이동(국제선 51%·도시 간 34%)에서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존 32개국 체제 대비 직접 배출 감축은 제한적인 반면, 광범위한 지리적 분산이 이동 배출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FIFA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2021)에서 2030년 탄소 배출 50% 감축, 2040년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를 약속했지만, 카타르 2022 ‘탄소중립’ 주장은 스위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입증 불가 판정을 받았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탄소 배출권 구매 등 상쇄 크레딧에 대한 의존, 스폰서 구성(화석연료 기업 포함)과 맞물려 공약의 진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가디언이 비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북미 3개국 팬 36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91%가 “2026 월드컵이 지속가능성의 모범이 되길 바란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적응기금 조성, 신뢰 가능한 탈탄소 계획 공개, 넷제로 2040 이행을 업계 전반에 권고했다.
축구계, 환경단체 등에서는 정오·오후 초반 킥오프 최소화, 야간 경기 확대, 지붕(돔) 경기장 주간 배치 원칙화 등 경기 일정·시간대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기 규정도 개선해 하프타임 20분, 15분 간격 수분 보급 등 열 스트레스 표준 운영 절차(SOP)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중을 위해서도 그늘·냉풍·급수 인프라 상시화, WBGT 실시간 공개와 좌석별 ‘열 위험’ 가시화 등이 필요하다고 언론이 지적하고 있다. 가디언은 “이동할 때 배출되는 탄소도 감축해야 한다”며 클러스터 편성으로 장거리 항공 이동 최소화, 대중교통·전기차 루트 확충, 항공사와 지속 가능 항공연료(SAF) 파트너십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올해 여름 클럽월드컵·US오픈에서 나온 여러 장면은 내년 북중미 월드컵 예행연습과 다름없다. 폭염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로이터는 “선수 보호와 경기 품질 유지, 이벤트 지속가능성 제고 등을 이루려면 일정·인프라·규정·이동 체계를 기후 현실에 맞게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월드컵은 더위 앞에 흔들리는 가장 큰 스포츠 축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