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는 경주 못지않은 역사 도시다. 경주가 신라의 고도라면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부여였다. 경주에 비하면 부여에 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더구나 한여름이어서일까. 인적이 드물었다. 부여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백마강, 그리고 그 곁에 솟아오른 언덕. 우리에게는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낙화암이 있는 곳. 그곳이 부소산성이다. ‘부소’는 백제의 고어로 소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부소산은 곧 소나무산이다. 106m의 키 작은 이 산은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저 나무가 그때의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리 없겠지만,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만큼 산길을 오르는 내내 소나무가 길가를 지키고 섰다.
성왕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538년. 처음 토성을 쌓고 123년이 지난 후 백제는 마지막 빛을 잃었다. 낙화암까지 오르고 나니 백마강이 널리 휘돌아가는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서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고? 믿기지 않는다. 낙화암 아래는 백마강이 아니라 그냥 절벽이다. 의자왕을 깎아내리기 위해 지어낸 낭설이라는 소리도 있더라만. 그럼에도 저 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유히 흐른다. 늦은 오후 나지막한 햇살에 괜스레 눈물을 자아내는 자리다, 이곳은.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