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원 안)이 직접 조종해 주목받은 북한군 천마-2 전차. 최근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이 외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 파병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기갑 장비다. 뉴스1
러시아 홍보영상 보니… 북한군 달라졌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한국군보다 북한군이 더 심했다. “있다 치고” “했다 치고” “된다 치고” 식 훈련은 권위주의 국가 군대에서 심각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북한에선 실전 훈련은 고사하고 훈련 자체를 못 하는 부대가 태반이었다. 대다수 북한군 부대는 군사훈련보다 식량 재배나 건설, 채굴에 동원됐다. 이 때문에 10년 넘는 군 생활 동안 전차 조종 한 번 못 해본 전차 조종수, 포탄 사격 한 번 못 해본 포병이 넘쳐났다.지난해 3월 북한군 항공육전병여단에서 발생한 촌극은 훈련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 부대는 북한군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제11군단, 일명 ‘폭풍군단’ 예하 공수부대다. 당시 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녀 앞에서 강하 훈련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줄이 꼬여 낙하산이 펴지지 않은 탓에 사상자가 여럿 발생했다. 기존에도 북한 특수부대의 훈련 부족은 여러 선전 자료에서 드러난 바 있다. 실내 근접 전투 훈련을 한다면서 소총에 고배율 망원경을 장착한 채 근거리 표적을 조준하는가 하면, 소총 견착과 파지도 제대로 못 하는 엉성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군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가을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전투병을 보낼 때만 해도 북한군이 이렇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향해 무작정 돌격하는 ‘스톰Z’ 전술을 쓰고 있다. 북한군은 이런 전술에서 그저 총알받이로 동원됐다. 북한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현대전을 조금씩 파악하면서 전술·교리 발전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러시아 국방부가 4월 공개한 훈련 영상 속 북한군은 더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처절한 실전을 겪은 이들은 장비부터 세세한 움직임까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멋’은 없어도 은폐, 엄폐하면서 사격·기동하는 방법을 익혔고, 시가전에서 총기를 어떻게 겨누고 기동해야 하는지도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실전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 돌아온 뒤 북한은 이들을 교관 삼아 올해 초 교리와 전술, 편제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가운데)이 8월 20일 러시아 파병부대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BTR-80 장갑차 등 장비 보낼 듯”
북한은 초기 파병을 통해 보병·특수부대의 지상전 전술을 발전시켰다. 이어서 포병 무기를 러시아에 공급한 대가로 현대적인 대화력전 수행 메커니즘을 학습했다. 그런 북한이 이제 기갑·공병부대까지 러시아에 파병할 준비를 하고 있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은 최근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6000여 명 병력과 최대 100여 대 군사 장비를 러시아에 추가 파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해당 인터뷰에서 부다노우 국장은 “북한이 이번 파병에 전차와 장갑차도 보낼 것”이라면서 ‘M2010 천마-D 주력전차’와 ‘BTR-80 장갑차’라는 구체적인 종류까지 언급했다. 다만 여기서 M2010은 전차가 아니라 장갑차이고, 천마-D는 북한이 천마-2로 명명한 M-2020 전차를 잘못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부다노우 국장이 두 차종을 함께 거론했다는 점에서 북한 지상군 최정예 부대인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 파병 부대로 차출될 전망이다. 북한군에서 두 차종이 함께 배치된 부대는 해당 사단 예하 ‘제1땅크장갑보병연대’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최신 전차·장갑차가 가장 먼저 보급되는 제1땅크장갑보병연대는 6·25전쟁 당시 서울을 함락한 제9전차여단을 모체로 창설된 북한 최초이자 최정예 기갑부대다. ‘수도 방어’가 주된 임무로, 평양 남쪽 황해북도 곡산군에 주요 예하 부대가 배치돼 있다. 제1땅크장갑보병연대는 한국군으로 치면 기계화여단에 해당된다. ‘북한판 에이브럼스’ 전차로 불리는 M-2020 전차와 러시아제 BTR-80A의 북한 파생형인 M-2010 차륜형 장갑차로 무장하고 있다. 실제로 파병될 경우 해당 부대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예상되는 러시아 브랸스크·쿠르스크 지역에 방어 전력으로 투입되거나, 최근 러시아가 집중 공략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전선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 최정예 기갑부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러시아군 BTR-80 장갑차. 북한은 이 장갑차의 파생 모델을 러시아에 보낼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北 기갑부대, 지뢰·드론에 큰 피해 입겠지만…
천마-2 전차는 제원만 보면 현재 전장에 투입된 러시아 전차를 대부분 압도하는 성능을 지녔다. 주포는 러시아의 현용 주력인 125㎜ 활강포를 채택했다. 여기에 불새-4 대전차미사일 2발과 AGM-17 자동유탄발사기를 탑재해 화력 면에선 러시아 전차보다 우위다. 게다가 자체 개발한 폭발반응장갑과 능동방어장치를 갖춰 방어력도 러시아 T-72, T-80 계열보다 우수해 보인다. 일각에서 “북한이 걸프전 때 파괴된 M1A1 전차를 역설계했다”거나 “한국 K1A1 전차를 빼돌려 이를 기반으로 천마-2를 개발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걸프전 당시 파괴된 에이브럼스 전차는 전량 회수됐고, 한국 K1A1 전차도 도난·탈취당한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중국이나 이란의 기술 지원을 받아 중국 90식 전차, 이란 줄피카르(Zulfikar) 시리즈를 참고했을 개연성이 크다. 전자는 옛 소련 T-62, 후자는 미국 M60을 기반으로 외형만 그럴싸하게 개선한 모델이다. 따라서 북한 천마-2의 외형은 ‘스마트’하지만 실제 성능은 러시아 T-90M이나 T-80BVM에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M-2010 장갑차는 BTR-80A를 기반으로 북한이 역설계한 모델이다. 원형은 8륜구동이지만, 북한은 제작비용을 절감하고자 6륜구동 파생형 두 종류를 배치 중이다. 낡은 설계의 차륜형 장갑차다 보니 방어력이 대단히 취약하다. 게다가 보병 승하차용 출입구가 워낙 작아 피격됐을 때 탑승자 생존성이 극히 떨어진다는 사실이 여러 번 확인된 모델이다. 러시아군 장병들은 아무리 춥거나 더운 날씨에도 M-2010과 비슷한 장갑차를 탈 때면 외부에 걸터앉는 것을 선호한다. 일단 장갑차가 피격되면 탈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첨단 무기로 분류되는 이 장갑차도 우크라이나 전장에선 별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북한이 자기네 최정예 기갑부대를 전장에 보낸다고 해도 그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전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을 넘기면서 전선이 대부분 요새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장 곳곳이 지뢰밭이라서 기갑부대 활동이 크게 제약된다. 지뢰를 아무리 제거해도 로켓·드론·차량으로 다시 대량 매설하는 상황이라 기갑차량이 지뢰밭을 피할 수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운 좋게 지뢰를 피해도 쇄도하는 드론까지 피할 수는 없다. 8월 24일 우크라이나군 집계 기준으로 러시아는 1만1100대 넘는 전차와 2만3160대 장갑차, 5만9400여 대 차량을 잃었다. 여기에는 구형 전차·장갑차뿐 아니라 T-90M 전차와 BMP-3 장갑차 등 신형 기갑 장비도 여럿 포함됐다. 이제 러시아 전차나 장갑차는 주포 발사 능력을 포기한 채 사방에 괴이한 구조물을 붙여 드론이나 대전차 무기를 막는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러시아군 일선 기갑부대 장병 사이에선 “전차·장갑차가 후속 보병 대신 드론과 지뢰를 맞는 총알받이로 전락했다”는 하소연까지 나올 정도다.
러시아군 BTR-80 장갑차. 북한은 이 장갑차의 파생 모델을 러시아에 보낼 것으로 보인다.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