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0월 16일 두 사람의 이혼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는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노 관장이 SK그룹에 전달됐다고 주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을 ‘뇌물’로 보고, 재산분할 등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노 관장에게 지급될 재산분할액이 재조정될 전망이다.
“노태우, 뇌물로 자녀 부부 지원” 판단
이날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 원 정도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면서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판시했다.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금전’ 지원은 두 사람 이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최 회장에게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한 2심 판결은 문제가 없다면서 판결을 확정했다.이날 대법원 판결로 최 회장이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 지난해 5월 2심 판결 1년 5개월 만에 이혼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천문학적 재산분할 판결이 파기환송됨에 따라, 최 회장은 일각에서 제기된 경영권 리스크 부담을 덜게 됐다. 앞서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협의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2018년 2월 정식 소송에 돌입했다. 노 관장도 이혼에 응하겠다며 2019년 12월 맞소송을 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이혼전문변호사는 ”최 회장-노 관장 2심 판결이 일반적인 판결 경향과는 달라서, 대법원에서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며 “노 관장 측이 주장한 ‘노태우 비자금’을 재산형성 기여의 근거로 보는 것은 법리뿐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향후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은 재산분할과 관련해 서울고법에서 다시 판단을 받는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노 관장 몫의 재산분할 액수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혼 소송을 다수 수행한 한 변호사는 “노 관장 측이 재산형성 기여와 관련해 또 다른 주장을 펴고, 이를 최 회장 측이 반박하는 등의 과정이 이어진다면 적어도 1년 정도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향후 재판에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아예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만약 해당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남더라도, 노 관장의 기여는 가사노동 정도에 국한해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은 대기업 총수와 전직 대통령 딸의 ‘세기의 이혼’이라고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막대한 재산분할 액수 외에도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된 새로운 의혹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2심 재판부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으로 흘러갔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인정해 재산분할 규모가 1심(665억 원)의 20배로 늘어나자 ‘불법 비자금 대물림’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국회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안’ 발의
두 사람의 이혼 소송에서 핵심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옛 대한텔레콤)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특유재산인지 여부였다. 2022년 12월 1심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 분할로 현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 현금, 노 관장 재산만 분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그러나 지난해 5월 2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에선 특유재산에 대한 1심 판단이 뒤집혔다. 2심은 두 사람의 재산을 약 4조 원으로 보고, 최 회장이 그중 35%인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위자료 액수도 20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2심 판결은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이 SK그룹 종잣돈으로 유입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노 관장 측은 항소심에서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경 비자금 300억 원을 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 전 회장에게 건네고 어음을 담보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해당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의 바탕이 됐으므로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이라는 취지에서다.
노 관장의 주장은 2심에서 천문학적 재산분할을 이끄는 주된 근거가 됐지만, 동시에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등장한 비자금 300억 원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수사와 이듬해 대법원 판결에서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의혹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검찰 수사를 통해 4600억 원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조성한 비자금 중 3690억 원의 사용처를 규명했으나, 나머지 900억 원의 행방은 찾지 못 했다.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은 노 전 대통령은 “친동생, 사돈에게 비자금 일부를 맡겼다”며 소송을 벌인 끝에 2013년 동생과 사돈이 대납하는 형태로 추징금 납부를 완료했다.
최 회장-노 관장 이혼 소송 결과와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노태우 비자금’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앞서 국회에선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안’이 발의됐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임광현 국세청장도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환수 및 세무조사 필요성에 공감을 표한 바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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