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부부 정해용 씨(왼쪽)와 임아람 씨가 직접 재배한 작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해윤 기자
경남 사천에서 엽채류 농장 ‘그로운’을 운영하는 농부 부부 정해용 씨(43)와 임아람 씨(40)가 9월 16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단열재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둘은 2022년 직장을 그만두고 농부가 되기로 한다. 각각 기계공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한 정 씨와 임 씨의 지식 및 기술이 “농업 분야에서 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매출 2억 원 돌파
2023년 4월 폐허 같았던 1322㎡(약 400평)짜리 옛 토마토 농장을 임차해 하우스를 세우고 같은 해 7월 바질 씨앗을 처음으로 심었다. 농사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해 여름 농장에 노균병이 돌아 바질이 모두 죽었다. 한 달 넘게 직원을 고용해 병 걸린 바질을 모두 버리고 장비를 전부 소독해야 했다. 정 씨 부부는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지난해 1억7000만 원, 올해는 현재까지 2억 원 매출을 올렸다. 연내에 직접 개발한 하우스 운영 시스템에 대한 특허도 출원할 예정이다. 정 씨와 임 씨 부부에게 귀농 생활과 농사 비결을 물었다.농업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우리 부부는 서울과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촌 삶도 전혀 몰랐다. 식물이라고는 집에서 취미로 화분에 바질을 키우는 정도가 다였다.”
농사를 시작한 계기는.
“함께 일하던 단열재 개발 회사에서 농식품부 국가 과제에 참여했다. 겨울철 냉기를 땅속에 저장했다가 봄여름에 꺼내 농사짓는 데 쓰자는 게 과제 목표였다. 냉기를 땅에 저장하려면 단열이 필요하니까 당시 회사가 해당 과제에 참여했던 것이다. 과제를 하면서 보니 우리가 가진 기술로 더 싼 농업 장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농사에 첫발을 들였다.”
농사에 뛰어들기 막막했을 텐데.
“농업 관련 지식이 전혀 없던 상태라 농사짓기를 바로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체계적으로 농업 관련 교육을 받고 싶어 농협창업농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청년농부사관학교’에 갔다. 청년농부사관학교에서 약 6개월간 농업 관련 이론을 배우고 농사일을 실습한 뒤 농장을 차렸다.”
무슨 작물을 키우고 있나.
“유럽 상추 6종과 바질을 키워 판매하고 있다. 시험재배하는 작물까지 포함하면 재배 작물은 총 10가지다. 바질은 재배 당일 가공해 페스토와 크림치즈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판매 중인 작물을 자랑한다면.
“우리 농장 작물은 모두 뿌리까지 살아 있는 채로 고객에게 배송돼 신선함이 오래 유지된다. 어떤 고객은 물이 든 컵에 우리 작물을 넣어 식탁이나 부엌에 놔두고 따 먹기도 한다는 후기를 올렸다. 1~2개월까지 신선하게 보관했다는 후기도 있다.”
경남 사천에 있는 정해용-임아람 부부의 농장 ‘그로운’. 박해윤 기자
수천만 원짜리 자동화 장비 800만 원에 제작
시중보다 싼값에 스마트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하우스 내부에 온도, 습도, 광량 등을 측정하는 센서가 설치돼 있고 하우스 외부 지붕에는 풍향, 풍속, 기온, 강우 여부 등을 측정하는 기상대가 있다. 하우스 내부 온도가 18°C를 넘으면 창문이 자동으로 30%만큼 열린다. 20°C를 넘으면 50%, 22°C를 넘으면 창문이 완전히 열리도록 설정돼 있다. 이러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본래 수천만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산장치, 센서 등을 직접 구매하고 연결해 비용을 800만 원대까지 줄였다.”
새로운 농법도 개발했다던데.
“작물을 수경재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작물 뿌리가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하는 방법과 뿌리 일부만 물에 잠기게 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은 물의 온도 변화가 심하지 않아 작물이 외부 온도 변화에 덜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뿌리가 공기와 닿지 않아 작물 성장이 느리다. 두 번째 방법은 뿌리가 공기에 노출돼 성장은 빠르지만 작물이 외부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2시간 간격으로 수위를 높였다 낮추는 농법을 개발했다.”
2시간마다 물을 주러 농장에 와야 하는 건가.
“타이머 장비를 설치해 2시간마다 자동으로 수위가 오르내리게 설정해뒀다. PVC 파이프와 금속 걸쇠, 1만 원짜리 타이머, 차단기 등 시중에서 싸게 파는 부품들만 있으면 하우스에 새 농법을 도입할 수 있다.”
기존 발아기보다 싼 제품도 개발했다고.
“발아기 기성품은 가격이 수천만 원까지 된다. 우리는 스티로폼, 산업용 에어컨 등을 사용해 재료비 50만 원에 발아기를 직접 만들었다. 발아기는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단열 관련 일을 하면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 덕에 값싼 발아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씨앗 3000개를 발아시키면 10개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발아에 성공한다.”
농부는 ‘종합 예술인’ 돼야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돈을 많이 버나.“돈은 회사에 다닐 때 더 많이 벌었다. 현재 수익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 농장은 애초 우리의 새 농법과 자동화 시스템을 시험해보고자 만든 곳이라 크기가 크지 않다. 내년에 직접 고안한 시스템을 도입해 새로 하우스를 지을 예정이다. 재배 면적을 2배로 늘리면 수확량은 3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농장에 있으면 직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생기는 스트레스가 없어 마음은 훨씬 편하다.”
꿈이 뭔가.
“스티로폼이나 PVC 배관처럼 시중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부품들로 4000㎡(약 1200평)짜리 ‘자동화 하우스 유닛(Unit)’을 제작해 우리뿐 아니라 다른 청년들이 농촌에서 농사짓고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유닛을 여러 개 연결해 다른 농부들과 함께 재배하고 공동 출하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하우스 유닛 설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귀농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농사는 일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는 분야다. 귀농 청년에게 주는 정부 혜택도 많으니 청년들이 농사에 많이 뛰어들었으면 한다. 하지만 열심히 할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한다. 장비 관리부터 상품 판매까지 모두 해야 하는 농부는 ‘종합 예술인’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