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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조사처 “위법 소지” 지적
사적연금 건보료 부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을 빚어온 사안이다. 감사원은 2022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감사 보고서를 통해 “사적연금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가입자 간 형평성을 해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관리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법적 근거 없이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그동안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은 것은 ‘사적연금 시장 육성’이라는 정책적 판단 때문이었다.또한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면 이중과세 문제도 불거진다. 사적연금은 대부분 월급에서 소득세와 건보료를 납부한 후 개인이 남은 소득으로 저축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는 국민연금만으로는 충분한 노후 대비가 어렵다는 현실을 인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며 국민이 자발적으로 사적연금에 가입하도록 장려해왔다. 따라서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은 이러한 정책 기조에 완전히 배치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8월 28일 사적연금 생활자의 건보료 부담을 완화하고 현행 제도의 불합리성을 바로잡기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사적연금 소득에는 건보료 부과를 면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 겉으로는 잠재된 위법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적인 내용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법안에는 ‘연금소득 외에 다른 과세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단서가 포함돼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은행 이자, 주식 배당금, 상장지수펀드(ETF) 분배금 같은 소득이 단 1원이라도 있으면 건보료가 부과된다는 의미다. 결국 이 조항은 사실상 모든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연금소득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미만일 때만’이라는 면제 단서도 포함돼 있어 혜택 폭이 매우 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퇴직금 운용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퇴직금을 IRP로 운영하면서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에 대한 세액 감면 혜택이 있다. 그런데 이런 감면 효과보다 건보료 부담이 훨씬 클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면 IRP에 보관했던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게 건보료 부담 측면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노후 자산 형성을 저해하고 정부의 노후 대비 정책 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건보료 부담액은 어떨까. 현재 건보료율은 7.09%이며, 함께 부과되는 장기요양보험료는 0.918%다. 이를 합치면 실질적인 건보료 부담률은 약 8%가 된다. 다행인 점은 연금소득은 소득의 50%만 부과 대상으로 하기에 연금소득의 약 4%에 해당하는 준조세 부담이 발생한다.
해외 직접투자·ISA 대안 되기 어려워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연금저축이나 IRP 계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연금저축은 세액공제, 과세이연, 저율과세라는 세 가지 핵심 혜택을 제공한다. 연간 납부액의 최대 900만 원(연금저축 600만 원, IRP 3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당장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운용 수익에 대한 과세를 연금 수령 시점까지 이연하면 복리 효과가 극대화된다. 연금 수령 시에는 3.3~5.5% 낮은 연금소득세가 적용된다. 만약 여기에 4% 건보료가 추가된다면 총 부담은 7.3~9.5% 수준으로 올라가지만 여전히 일반 계좌(15.4%)나 해외 직접투자(22%)에 비해 낮은 세율이다.한편에서는 해외 직접투자가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 직접투자의 경우 양도차익 25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22%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건보료 부담은 없지만 22% 세율이 건보료를 포함한 사적연금의 세율보다 높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한편에서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대안으로 얘기한다. ISA는 과세이연, 비과세, 분리과세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ISA는 사적연금이 아니라서 건보료 부과 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ISA는 총 납부 한도에 제한이 있다는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 연간 2000만 원까지 납부가 가능하고 총 1억 원을 저축해 운용할 수 있다. 이 금액만으로는 충분한 노후 준비가 어렵다. 따라서 ISA와 연금저축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사적연금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세금 부담을 넘어, 국가의 노후 소득 보장 체계와 정책 방향성을 뒤흔들 수 있는 복합적인 이슈다. 이에 따라 퇴직급여 운용 전략은 물론, 노후 자산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쳐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고, 그때마다 정부는 사회적 의견 수렴과 중장기적 검토를 약속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유리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연금저축과 IRP를 꾸준히 유지하고 ISA 같은 절세 상품을 병행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노후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노후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나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