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들이 병원 내 약국에서 반환된 알약들을 재분류하는 모습(왼쪽)과 메디노드의 알약 분류기 ‘필봇(PillBot)’에 반환된 알약들을 투입하는 모습. 필봇은 알약들을 자동으로 분류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재분류해야 하는 약사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메디노드 제공
일본 제품보다 5배 빨라
반환된 알약들은 마구 섞여 있다. 약사가 작은 알약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재분류한다. 똑같이 하얗고 동그래도 표면에 새겨진 알파벳 하나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약이다. 국내 한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반환된 알약들을 재분류하는 작업에 약사 4명이 하루에 3시간을 쓴다.2021년 설립된 인공지능(AI) 기반 약국 장비 개발 기업 메디노드의 알약 분류기 ‘필봇(PillBot)’은 안전한 약 제조에 집중해야 할 약사들이 분류 작업에 많은 시간을 쓰는 문제를 해결한다. 필봇이 개발되기 전 국내 알약 분류기 시장은 일본 제품이 독점하고 있었다. 기존 일본 제품은 한 번에 40~50종 알약을 분류하지만 필봇은 192종을 분류할 수 있다. 필봇의 분류 속도는 시간당 720정으로 일본 제품보다 약 5배 빠르다. 메디노드는 최근 필봇을 정식 출시하고 순천향대 부속 천안병원에 납품을 마쳤다.
필봇이 일본 제품의 성능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알약 분류기에 최초로 인공지능(AI) 딥러닝 이미지 분석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다. 필봇에 알약들을 쏟아부으면 카메라가 알약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AI 알고리즘이 알약의 모양, 색깔, 크기, 각인을 분석해 약을 분류한다.
기존 일본 제품은 굴러다니는 캡슐형 알약을 분류할 수 없었다. 캡슐형 알약은 조금이라도 구르면 특정 방향에서 보이는 알약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존 제품은 이론적으로 캡슐이 굴러서 내보일 만한 여러 모양을 사람이 일일이 입력해야만 캡슐이 굴러도 같은 약임을 식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캡슐이 구를 때 나오는 수많은 모양을 모두 다 입력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AI 딥러닝 이미지 분석 기술이 적용된 필봇은 캡슐이 굴러서 모양이 달라져도 같은 약이라는 것을 알아서 판단한다.
“약사가 고유 업무에 집중하도록 돕는 게 메디노드 임무”
황선일 대표 “AI 시대엔 기존 기업과 신생 기업의 출발선 같아”황선일 메디노드 대표. 메디노드 제공
한미약품을 그만둔 이유는.
“처음부터 창업할 생각으로 퇴사한 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건만 도태되고 있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AI를 배워 개발자가 될 생각이었다. 국비 지원을 받아 AI 딥러닝을 배웠다. 이 기술이라면 한미약품 재직 시절 목격했던 알약 재분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메디노드를 설립하게 됐다.”
일본 경쟁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난 알약 분류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은.
“AI라는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존 기업과 신생 기업의 출발선이 같아졌다고 본다. 무게·빛 감지 센서 등 기존 장비에 사용된 기술들은 이제 필수가 아니다. 기존 기업이 특허를 얼마나 많이 가졌든 AI 기술 경쟁에서는 신생 기업과 똑같은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 과거 기술에 맞게 체계가 갖춰져 AI를 위한 체질 개선을 해야 하는 기존 기업보다 신생 기업이 AI 기술에 더 빠르게 적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메디노드 대표로서 꿈이 있다면.
“국내 상급종합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 중 국산 제품 비율은 한 자릿수 수준이다. 현재 메디노드는 약국 장비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약사가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의료기기로까지 제품군을 넓혀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국산 제품 점유율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안녕하세요. 임경진 기자입니다. 부지런히 듣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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