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개인용 컴퓨터(PC) ‘DGX 스파크’ 내부 구조. 엔비디아 제공
하지만 이후 20년 가까이 PC 시장은 정체기에 머물렀다.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의 성능은 꾸준히 향상됐지만 사용자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변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에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PC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비관론마저 고개를 들었다.
엔비디아 AI PC 국내 예약 주문 시작
지금 PC 시장은 다시 한 번 거대한 변혁을 맞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1월 엔비디아는 2025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개인용 AI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디지츠(Project DIGITS)’를 공개하며 PC의 새로운 진화를 선언했다. 엔비디아는 프로젝트 디지츠에 ‘DGX 스파크’라는 새 이름을 붙이고 7월 29일부터 국내 예약 주문을 받고 있다. DGX 스파크는 단순히 연산 성능이 좋은 PC가 아니다. AI 작업을 실시간으로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다. 과거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만 가능했던 AI 작업이 이제는 가정 내, 사무실 내 책상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DGX 스파크 사용자는 더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명령을 입력하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AI 에이전트와 대화하고,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며,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AI 에이전트의 협업자’가 된다.
DGX 스파크에서 핵심은 엔비디아의 시스템 온 칩(SoC) ‘그레이스 블랙웰 수퍼칩’(Grace Blackwell Superchip·GB10)이다. GB10은 ARM 아키텍처 기반의 그레이스 중앙처리장치(CPU)와 최신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128GB의 통합 메모리로 AI 연산에 최적화된 구조를 갖췄다. 그 덕에 GB10 1개를 사용하면 최대 200억 개 파라미터(매개변수)의 거대언어모델(LLM)을, 2개를 연결하면 400억 개 넘는 파라미터의 LLM을 구동할 수 있다.
DGX 스파크의 하드웨어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클라우드 없이도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온디바이스 AI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3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AI 연산에 특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 생성형 AI 구동을 위한 GPU, 그리고 이 둘이 제 성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대용량 메모리가 그것이다. 이 3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온디바이스 AI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AI PC의 본질이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를 사용해 AI 작업을 수행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뿐 아니라, 강력한 보안도 제공한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AI 기능을 사용할 수 있어 서버의 통신 지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엔비디아·AMD·퀄컴·마이크로소프트 AI PC 경쟁
앞으로 AI PC는 발전이 정체된 PC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기존 피처폰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대거 옮겨간 것처럼 AI PC 보급도 급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 AI PC가 제공하는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은 소비자에게 AI PC를 구매해야 할 확실한 명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AI PC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세계 빅테크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엔비디아는 독보적인 GPU 기술력을 바탕으로 AI PC 시장의 표준을 제시하며 ‘AI 시대 인텔’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인텔과 AMD는 NPU를 통합하는 전략으로 AI PC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모바일 강자 퀄컴은 ARM 아키텍처 기반의 ‘스냅드래곤×엘리트’ 칩을 통해 저전력-고효율 AI PC 시장을 공략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PC’라는 새로운 윈도 PC 모델을 발표했다. 윈도 운영체제 단계에서부터 AI 경험을 도입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AI PC 생태계를 주도하려는 것이다.
AI PC가 대중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AI PC는 초기 가격이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커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AI PC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돼야 한다. 성능이 좋은 하드웨어가 있어도 소비자가 그 가치를 체감하려면 매력적인 소프트웨어가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PC는 지난 30여 년간 인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1990년대 데스크톱이 정보 접근성 시대를, 2000년대 노트북이 정보 휴대성 시대를 열었다면 현재 AI PC는 ‘지능 대중화’ 시대를 불러오고 있다. AI PC가 이끌 PC 시장의 세 번째 비상은 우리의 삶과 산업, 그리고 사회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