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실적 발표 시즌 이후 국내 증시에서 투자 의견 하향 리포트가 쏟아지고 있다. 동아DB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표류 중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시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투자자의 피로감도 지속돼 현재 코스피는 50일 이동평균선 부근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
상향보다 많은 하향 리포트
새 정부 출범 전후 주가 상승세를 타고 급등했던 종목들이 2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고평가 논란에 휘말리며 재평가받고 있다. 기대에 못 미친 실적을 낸 기업에 대해 증권사들이 투자 의견을 대거 하향하면서 과열 종목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세제개편안 리스크까지 겹치자 코스피는 3100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8월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분기 종료 이후인 7월 1일부터 이날까지 국내 상장사에 대한 투자 의견 하향 리포트가 총 125건 발표됐다. 이 가운데 124건이 ‘매수’에서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해석되는 ‘중립’으로 표시됐다. 같은 기간 투자 의견 상향 리포트는 58건으로, 하향 리포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이례적인 수치다. 지난해 7월 코스피가 연고점(2896.43)을 찍었을 때 발표된 하향 리포트는 40건에 불과했고, 상향 리포트는 50건으로 더 많았다. 2020년 이후로 범위를 넓혀도 같은 기간에 하향 리포트가 50건을 넘은 사례는 없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에 따르면 6월 30일 기준 국내 대표 27개 증권사 리포트의 90% 이상이 매수 의견으로 채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매수 의견 중립으로의 하향은 보기 드문 일이다. 현직 기관투자자 A 씨는 “애널리스트들은 기업과의 관계를 의식해 매도 의견을 쉽게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직 리서치센터장 B 씨는 “2분기 실적 발표 후 실적 가시성이 낮거나 주가가 과도하게 올라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진 경우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리서치센터 내부 문화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B 씨는 “증권사들도 요즘은 투자 의견을 다양하게 내자는 분위기가 점차 생기고 있다”며 “일부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는 매수 의견만 반복적으로 내는 증권사 신뢰도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전했다.
증권가 의견이 바뀐 배경엔 코스피가 정부의 증시 부양 기조에 힘입어 단기간 과도하게 상승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특히 방산·원전·증권 등 강세를 주도한 업종에서 하향 리포트가 집중됐다.
8월 들어 가장 많은 하향 조정 리포트를 받은 종목(5건)은 방산·항공우주 기업 LIG넥스원이다.
2분기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며 8월 8일 실적 발표 이후 8월 20일까지 주가가 21.06% 하락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좋은 회사라도 가끔은 좋은 주식이 아닐 수 있다”며 LIG넥스원의 고평가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동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높은 이익 성장이 기대되지만 최근 가파른 주가 급등으로 단기 상승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코스피 과열 식히는 중”
한국전력도 매수 의견이 중립으로 조정된 대표 종목이다. 실적 개선에도 10년 만에 최고 수준의 PER(주가수익비율)을 기록해 추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산업용 전력 시장에서 한전의 입지 약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2년 사이 2배 가까이 오르면서 대기업이 한전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대신 발전사업자·전력도매시장을 통해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자사주 비중이 큰 증권주 역시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은 7월 한 달간 가장 많은 하향 리포트(6건)를 받았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상법 개정에 따른 지배구조 이슈,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출원 등 막연한 기대감이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됐다”며 투자 의견을 낮췄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코스피 상승세는 금리인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면서 “그만큼 통화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코스피는 현재 대내외 불확실성을 맞아 단기 매물 소화와 과열 해소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지금까지 가파른 상승에 따른 되돌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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