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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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패닉’을 부르는 트럼프의 연준 압박

[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1978년 악몽이 떠오른다”…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면 달러 가치 추락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입력2025-07-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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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우리에게는 정말 나쁜 연준 의장이 있다. 그가 금리를 낮춘다면 친절하게 대하겠지만 그는 얼간이 같다. 멍청한 사람이다. 정말로 그렇다”라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더 나아가 16일에는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파월 의장 해임 서한 초안을 보여주며 이를 집행해도 될지 의견을 묻기도 했다. 미국 금융시장은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국채 30년물 금리가 5.08%까지 상승하는 등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그래프1 참조). 

    1970년대 연준 의장이 굴복하자 벌어진 일

    이처럼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파월 의장 해임 검토 소식에 경기를 일으킨 것은 1970년대 말 일어났던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발표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King Dollar: The Past and Future of the World’s Dominant Currency(킹 달러: 세계 지배적인 통화의 과거와 미래)’를 보면 연준 의장이 대통령 말을 잘 들었을 때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1970년 2월부터 1978년 1월까지 연준 의장을 지낸 아서 번스는 명망 있는 경제학자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지 못했다. 게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후에도 우왕좌왕했다. 번스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행정부와 의회 양쪽에서 거센 비판이 어김없이 쏟아졌다”며 한탄했다. 

    결국 연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자 달러를 둘러싼 이상 흐름이 본격화됐다. 투자자들은 달러에 대한 신뢰가 높을 때 “미국달러 이자율이 이렇게 높다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금 달러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 금리가 높아질 때는 달러도 강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1978년 말 정반대 현상이 출현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가 8%를 넘어섰음에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가 15% 넘게 하락했다(그래프2 참조).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되며 달러의 실질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하자 달러 표시 채권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만성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사태였고,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1979년 8월 폴 볼커를 새로운 연준 의장에 임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저지해달라”고 당부하기에 이르렀다.  



    2차 달러 위기 가능성 남아

    이런 배경에서 임명된 볼커는 이후 어떤 정치적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연준은 정치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 선거를 치르는 해에는 정책금리를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볼커는 1980년 9월 25일 정책금리를 단번에 1%p 인상했다. 선거 유세 중에 이 소식을 들은 카터 대통령은 “무분별한 정책”이라며 연준을 비난했지만 중앙은행인 연준의 행보를 바꿀 힘은 없었다.

    1981년 집권한 도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감세정책에도 경기 회복이 지연되자 레이건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연준이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친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볼커는 그러한 비난에 거의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 대신 국제유가 급등세가 멈추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자 1982년부터 지체 없이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달러 지위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이에 따라 볼커 이후 연준 의장들은 정치권 압력에 반응하지 않았고,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연준의 권위를 인정하게 됐다. 실제로 2018년 파월 의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 닉 티미라오스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형편없는 연준 의장으로 역사에 기록될지는 몰라도 권위에 굴복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최근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정책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배경이 이해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만약 2026년 임명될 차기 연준 의장이 번스 같은 행보를 보인다면 1978년 못지않은 달러 위기(달러화 신용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불안정성이 높아졌던 현상)를 겪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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