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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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정신과 포용으로 고려아연 세계 1위 만든 故 최창걸 명예회장

아연 제련업 불모지 한국에서 세계 최고 종합비철금속 기업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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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10-1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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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왼쪽)은 고려아연 창립 과정부터 참여해 세계 1위 제련기업으로 키워냈다. 고려아연 제공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왼쪽)은 고려아연 창립 과정부터 참여해 세계 1위 제련기업으로 키워냈다. 고려아연 제공 

    “자원 빈국이자 비철금속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과감한 도전과 불굴의 의지로 세계 1위 제련 기업을 일궈냈다. 이는 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기반을 세운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10여 종의 기초 소재는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오늘날 우리 첨단산업의 근간이자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에 대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추모 글이다. ‘비철금속 거목’으로 일컬어지던 최 명예회장은 10월 6일 향년 84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연 제련업 불모지였던 한국에 고려아연을 세워 세계 최고 종합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인생 여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고려아연 기틀을 닦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유학 후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최 명예회장은 1973년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도와달라”는 부친의 편지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수립하며 울산 온산에 비철금속 단지 건설 계획을 내놨다. 

    최기호 창업주는 제련업이 글로벌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판단하고, 장남인 최 명예회장과 함께 온산제련소 건설을 추진하는 데 매진했다. 최 명예회장은 제련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백방으로 움직였다. 국민투자기금, 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한 데 이어, 세계은행 산하 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와도 접촉해 차관을 도입했다. 

    이때 그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협상 능력이 빛을 발한다. IFC는 온산제련소 건립에 소요되는 자금이 약 7000만 달러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 명예회장은 5000만 달러에 지을 수 있다고 IFC 측을 설득했다. 건설 과정에서도 일괄 계약 대신 토목공사업체들과 건건이 계약하는 방식을 택해 공사비를 절감했다. 그 결과 4500만 달러로 고려아연의 출발점인 온산제련소를 건립할 수 있었다.



    “기업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죽는 것입니다.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회사도 사람처럼 노화 방지가 필요합니다.”

    2014년 고려아연 창립 40주년을 맞아 진행한 사내 인터뷰에서 최 명예회장이 한 말이다. 그의 도전 정신은 경영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최 명예회장은 부친과 함께 고려아연 창립에 참여한 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고려아연 사장과 부회장으로 재임했다. 

    1978년 4월 온산제련소가 준공됐다. 고려아연 제공

    1978년 4월 온산제련소가 준공됐다. 고려아연 제공

    ‘비철금속 거목’ 멈추지 않는 기업가 정신

    최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최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당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그는 기업 발전을 위해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데도 힘썼다. 고려아연은 세계 최초로 아연·연·동 제련 통합 공정을 구현한 것은 물론, DRS 공법을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 상용화해 연 제련에 적용했다. 종전 2단계(산화, 환원) 공정을 한 단계로 통합한 기술로, 다양한 원료 처리 과정에서 에너지 절감 및 공해 방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 명예회장은 1980년대 후반 연 제련 사업 진출을 회고하면서 “환경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던 상황이라 새로운 공법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높았다”며 “당시 개발된 신공법이 모두 상업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우리는 과감하게 기존 공법이 아닌 신공법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1992~2002년 회장 재임 시절에는 연 제련공장, 열병합발전소를 준공하고 호주에 진출하는 등 여러 성과를 내며 고려아연과 국내 제련업계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고려아연은 아연·연·동 외에도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 같은 전략 광물로까지 생산을 확대하며 국내외 자원 수급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4년 창립된 고려아연은 올해로 51주년을 맞았다. 반세기 동안 세계 1위 기업으로 입지를 공고히 한 데는 최 명예회장의 포용 리더십이 큰 몫을 했다. 고려아연은 인재를 중시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단행하지 않았다. 여기엔 임직원의 화합과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최 명예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 그는 “나는 개인보다 조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스타플레이어도 좋지만 탄탄한 조직력이 우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임직원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관심도 이어졌다. 최 명예회장은 ‘임직원 기본급 1% 기부’ 운동을 솔선수범해 나눔 문화를 사내에 정착했다. 부인인 유중근 경원문화재단 이사장과 함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최 명예회장(가운데)은 임직원의 화합과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고려아연 문화를 확립했다.

    최 명예회장(가운데)은 임직원의 화합과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고려아연 문화를 확립했다.

    기본급 1% 기부 운동 솔선수범

    그의 도전 정신과 포용을 바탕으로 한 경영 철학은 아들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창립 이래 노사 분규 없이 10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올해 상반기 전략 광물 판매량 증가와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등 신사업 부문 약진으로 매출액 7조6582억 원을 달성해 역대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아연 연매출은 반세기 만에 100억 원대에서 12조 원대로 성장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나흘간 진행된 최 명예회장의 장례식에는 김정관 장관을 비롯한 정재계 주요 인사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을 비롯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 등이 근조 화환을 보내 최 명예회장을 추모했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10월 10일 열린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최 명예회장은 황무지 같았던 한국의 비철금속 제련 분야를 개척해 자원 강국을 이루겠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한평생을 달려왔다”며 “고려아연이 세계 제련업계 선두주자로 앞서가게 된 것은 기술도, 인재도, 자원도 부족한 시대에 격동의 파고를 헤쳐 나온 최 명예회장의 혜안과 진취적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의 공적을 기렸다. 

    10월 1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최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고려아연 제공

    10월 1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최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고려아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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