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 오토’가 선보인 픽업트럭(왼쪽)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 슬레이트 오토 제공
가장 먼저 살펴볼 브랜드는 슬레이트 오토다. 미국 신생 전기차 스타트업으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첫 전기 픽업트럭을 공개했다. 2026년 말 출시 예정인 이 차는 공개 2주 만에 예약 10만 건을 기록하며 전기차(EV)업계에서 새로운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다. 최근 브랜드들이 앞다퉈 강조하는 대형 인포테인먼트, 고급 오디오, 전동식 편의 장치, 심지어 도색까지 모두 빼버렸다. 속도계와 스마트폰 연동 기능 정도만 제공해 판매가를 획기적으로 낮춘다는 전략이다.
차량 모델 또한 기본형 하나다. 그 대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환 키트 등 액세서리 100여 종을 제공해 소비자가 직접 개조할 수 있도록 했다. 테슬라나 포드 등이 선보이는 고가 EV들과 여러모로 차별화한 셈이다. 당초 슬레이트 오토는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면서 “연방 세액공제(7500달러·약 1000만 원)를 적용하면 2만 달러(약 2800만 원) 이하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 홍보 문구를 삭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혁명을 이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자로 참여한 점은 슬레이트 오토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요소다. 다만 예약금이 ‘환불 가능한 50달러’라는 점에서 폭발적인 예약 건수가 실제 판매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페라리 플래그십 슈퍼 스포츠 ‘849 테스타로사’
메르세데스벤츠는 9월 ‘G-클래스 카브리올레’의 티저 이미지를 공개했다. 1980~1990년대 선보인 2도어 카브리올레, 2018년 단 99대 한정 생산한 마이바흐 G650 란도레의 전통을 계승하는 모델이다. 2026년 정식 출시가 예상되는데, 이 모델의 부활은 럭셔리 SUV 시장이 개성과 경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뜻한다. G-클래스 카브리올레는 전동화 시대에도 오프로더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 오픈 에어링(open airing) SUV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6기통(449마력), V8 트윈터보(585마력) 내연기관에 더해 EQ 전기 버전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페라리는 9월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플래그십 슈퍼 스포츠 ‘849 테스타로사(Testa Rossa)’와 ‘849 테스타로사 스파이더’를 공개했다. 2026년 출시 예정으로, 기존 SF90 라인업을 대체하는 모델이다. 총 출력 1050Cv를 발휘하는 V8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부터 페라리 사상 최대 크기의 신형 터보차저, 전기모터 3개를 통한 온디맨드 사륜구동(AWD)과 토크벡터링까지 최상위 모델다운 성능이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것은 이름이다. ‘테스타로사’라는 명칭은 1950년대 레이싱 엔진의 빨간색 캠 커버에서 시작해 1980년대 로드카로 이어진 전설적인 모델명이다. 이를 다시 꺼내 든 것은 페라리가 전통과 혁신의 공존을 지향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849 테스타로사는 브랜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V8 슈퍼 스포츠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페라리의 ‘849 테스타로사’(왼쪽)와 ‘849 테스타로사 스파이더’. 페라리 제공
플래그십 전기 GT ‘폴스타 5’
포르쉐는 올해 말 공개 예정인 ‘카이엔 일렉트릭’ 개발 과정에서 가상 개발, 현실 검증이라는 혁신적 방식을 선보였다. 2026년 양산을 앞두고 약 120대의 물리적 프로토타입을 디지털 모델로 대체해 개발 기간을 20% 단축하고, 자원 소비를 최소화했다. 카이엔은 포르쉐의 베스트셀러이자 브랜드 수익의 핵심이다. 여기에 전기 버전을 포함한 것은 포르쉐 전동화 전략의 분수령으로 평가할 만하다. 디지털 개발 방식을 통해 고성능과 품질, 효율성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카이엔 일렉트릭은 브랜드의 대량 전동화 시대를 여는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한편 폴스타는 9월 9일 플래그십 전기 그랜드투어러(GT) ‘폴스타 5’를 세계 24개국에서 온라인 주문 개시와 함께 공개했다. 한국 출시 시점은 2026년 2분기로 예정된다. 독자 개발한 알루미늄 플랫폼 ‘폴스타 퍼포먼스 아키텍처(PPA)’를 적용해 슈퍼카 이상의 강성을 확보했으며, 퍼포먼스 모델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을 3.2초 만에 마무리하는 성능을 갖췄다. SK온 배터리를 탑재해 유럽 국제표준시험방식(WLTP) 기준 최대 670㎞ 주행이 가능하다. 급속 충전으로 22분 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폴스타가 이번 모델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장을 확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슬레이트 오토부터 메르세데스벤츠, 페라리 등에 이르기까지 브랜드 각각의 전략은 다르지만, 공통된 목표는 EV 시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그 결과 2026년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선택지는 어느 때보다 다양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