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 조감도. 서울시 제공
“우리 아파트가 대한민국 재건축 대명사가 됐는데, 그래서인지 정비사업을 ‘악’으로 보는 세력에게 공격을 많이 받았다. 이제라도 정비계획안이 통과돼 다행이다.”(은마아파트에 사는 60대 조합원)
9월 1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만난 소유주들은 최근 재건축 확정에 대해 “많이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 변경안’(정비계획안)이 9월 1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수권분과위원회에서 수정 가결됐다. 1996년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처음 추진된 지 29년 만이다.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1979년 입주해 올해 준공 46년을 맞은 은마아파트는 현재 최고 14층·4424채에서 최고 49층·5893채 규모 신축 단지로 변모할 예정이다. 은마아파트는 대치동 학원가와 명문고, 서울지하철 3호선 대치역이 지척인 입지 조건 덕에 ‘재건축 대어’로 불린다.
“집주인들 호가 42억 원 이상으로”
9월 10일 기자가 찾은 은마아파트 단지에는 ‘경축 정비계획변경안 확정’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요즘 공사비가 많이 올랐다는데 분담금은 어찌 되려나 걱정이다” “공공주택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우려하는 주민도 보였다. 단지 곳곳에는 건물이 노후화된 흔적이 역력했다. 아파트 복도 천장은 페인트칠이 벗겨졌고, 콘크리트가 녹아서 생겼는지 ‘종유석’처럼 생긴 물체도 눈에 띄었다. 3년 전 1억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입주했다는 한 주민은 “리모델링하듯이 싹 공사한 덕에 겉보기에는 새집 같지만, 녹물이나 벌레가 나오는 걸 보고 40년 넘은 아파트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불편은 주차 공간 부족. 또 다른 주민은 “몇 년 전 주차장을 넓히기는 했지만 지금도 저녁 8시 이후에는 주차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는 주차 실력이 부족해 늦게 퇴근한 날이면 남편에게 주차를 부탁할 정도”라고 말했다.재건축이 가시화되자 은마아파트 가격은 올해 들어 12억 원 가까이 올랐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7월 15일 42억 원에 거래돼 최고가를 찍었다. 1월 17일 같은 평형 실거래가 30억4000만 원보다 11억6000만 원이 오른 것이다. 9월 10일 만난 대치동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은마아파트 84㎡가 42억 원을 찍은 후 가격이 다소 낮아졌고, 6·2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자 대출 규제 강화로 상당수 계약이 엎어지기도 했다”며 “최근 정비계획안이 통과되면서 집주인들이 호가를 다시 42억 원 이상으로 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튿날 ‘네이버페이부동산’에 은마아파트 84㎡가 44억 원에 매물로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은마아파트뿐 아니라 강남권 아파트 거래 자체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6·27 부동산 대책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가 6억 원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30억 원을 호가하는 강남권 아파트를 매입하려면 현금이 20억 원 이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9·7 부동산 대책으로 강남 3구와 용산구의 주담대 비율이 40%로 낮아지는 등 규제가 더 강화됐다.
최근 강남 3구를 비롯해 서울 아파트시장은 거래량이 줄어든 가운데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7월 서울 아파트 매매 3946건 중 신고가 거래는 932건(23.6%)으로 2022년 7월(27.9%)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별로 보면 서초(61.5%)와 용산(59.5%), 강남(51.6%)의 경우 전체 거래 절반 이상이 신고가였다. 같은 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946건으로 6월(1만935건)의 36%에 그쳤다. 강남구에서 20년 이상 일한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최근 타지에서 강남이나 서초로 진입하려는 현금 부자들이 주요 단지 아파트를 많이 매입하고 있다”며 “신고가 기록이 나와 이목을 끌고 있지만 거래 자체는 적어 공인중개사들은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9월 10일 찾은 은마아파트. 김우정 기자
“재건축 제외하면 강남권 신축 공급 부족”
최근 서울 부동산시장 흐름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 강화가 서울 아파트 가격 양극화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서울 부동산시장에선 경기침체와 대출 규제 여파로 ‘똘똘한 한 채’에 자산을 묻어두려는 현금 부자만 주로 움직이고 있다”며 “강남 집값이 오르자 풍선효과로 다른 지역도 덩달아 뛴 문재인 정부 때의 상승장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최근 강남 부동산은 매도자 우위 시장”이라면서 강남권 아파트 신고가 행렬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지난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완화돼 강남 아파트 소유주로선 급매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강남권에는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단지를 제외하면 신축 아파트 공급 물량이 부족할 것이다. 시장에 물건 자체가 많지 않다보니 자금 여력이 있는 현금 부자들이 강남권 아파트를 고가에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강남권 집값에 대해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눈치 보기 장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살 만한 물건이 모두 소진되면 집주인이 부른 높은 호가에 실거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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