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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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AI 배우와 가상 아이돌의 성공 조건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5-10-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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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 스튜디오 시코이아(Xicoia)가 제작한 AI 배우 틸리 노우드. 인스타그램 @tillynorwood 계정 캡처

    인공지능(AI) 스튜디오 시코이아(Xicoia)가 제작한 AI 배우 틸리 노우드. 인스타그램 @tillynorwood 계정 캡처

    틸리 노우드라는 배우가 최근 할리우드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배우인 그가 에이전트 계약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려 한다는 점, 외모가 여러 실존 인물 얼굴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궁극적으로 인간의 예술성을 훼손한다는 점 등이 주된 비판점으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제작자는 “노우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새로운 창작 도구”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논지는 대중문화계의 AI 논란에서 대체로 유사하게 반복돼온 것들이다. 다만 노우드에 관한 한 외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노우드는 매우 예쁘고 어리며 상냥해 보인다. 인간이 상품으로서 창조한 가상인간이 굳이 혐오감을 일으키는 외양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자의 말을 기꺼이 잘 듣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만들어냈다는 사실과 그것에서 연상되는 어떤 음험한 동기에 찜찜함을 느끼지 않기도 어렵다.

    ‘허리하학적’ 창작물의 한계

    K팝 산업에도 이른바 ‘가상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다. AI와는 기술적으로 전혀 다른 지평에 있지만, 인간의 가치관과 욕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대중을 만난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면도 있다. 2023년 데뷔한 보이그룹 플레이브는 명실상부 가장 성공한 가상 K팝 아이돌이다. 음악방송 1위와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 고척 스카이돔 콘서트를 비롯한 세계 투어 등 인간 아이돌이라 해도 정상급에 해당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 지난 10년 사이 많은 업체가 가상 아이돌 제작을 시도했지만 그중 상당수가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유는 직관적으로 거의 분명했다. 인간과 유사성이 높지만 차이도 분명해서 불쾌감을 준다는 이른바 ‘불편한 골짜기’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특히 실패한 여성 가상 아이돌의 경우 국내 정상급 연예인 여러 명을 짜깁기한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얼굴로 기이하리만치 상냥한 미소를 띠곤 했다. 부르면 따라올 듯한, 꼭 그런 얼굴이었다. 왜인지 일부 대중은 애니메이션 기술력을 오직 여성 캐릭터의 가슴이 흔들리는 모양에서만 측정할 수 있는 듯한데, 가상 아이돌 중 상당수도 빼어난 춤 실력을 보여줄 때마다 그 기준을 따르고 있었다.

    ‘창작물’은 물론 누군가의 욕망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천편일률적이라 할 정도로 납작하게 ‘허리하학적’일 때 창작물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받기는 대단히 어렵다.



    실패한 가상 아이돌들이 K팝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K팝도 여느 스타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정념을 소구하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사람들이 아이돌에게서 보고 싶은 핵심은 결코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즉물적 욕망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예술적 가치를 담보하기 어렵다. 상업적 성과도 대단치 못할 수 있다. 가상 아이돌이나 AI 배우가 어차피 다가올 미래라면, 이제는 그들이 어떻게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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