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도이수텝 사원. GETTYIMAGES
태국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700㎞ 떨어진 치앙마이는 과거 란나 왕국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다. 도심을 네모반듯하게 둘러싼 옛 성벽과 해자(垓子)는 치앙마이가 한때 방어 기능을 가졌던 도시임을 증명한다. 지금 치앙마이는 도시의 활기와 오래된 숨결이 공존하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방콕이나 치앙마이 직항 노선을 이용하면 편리하게 오갈 수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15분 남짓. 택시보다 ‘그랩’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동 자유롭고 물가도 저렴
치앙마이는 이동이 자유롭고 물가도 저렴해 요즘은 디지털 노마드나 장기 체류 여행자의 베이스캠프로 인기다. 동남아 도시 가운데 와이파이 환경이 안정적이고, 저렴하면서도 감각적인 숙소가 많아 온라인 기반 일을 병행하는 이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코워킹 공간처럼 열려 있는 셈이다.치앙마이는 작은 도시지만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단단하다. 정해진 명소만 둘러보기보다 한적한 골목을 천천히 걷거나, 매일 다른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 도시에 어울리는 여행 방식이다. 올드시티 안팎에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카페와 레스토랑, 로컬푸드 마켓이 가득하고 매 주말이면 수공예 장터와 야시장도 열린다. 가볍게 요가나 명상 클래스에 참여하고 무아이타이(태국 전통 무술)나 태국어 수업도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하루는 단순한 관광보다 현지인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에 가깝다. 시장에 들러 갓 지은 찰밥과 코코넛 밀크, 망고 한 봉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그 짧은 동선에도 삶의 충만함이 깃들어 있다.
느리게,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여행자의 리듬을 바꾸는 도시 치앙마이는 자연과의 거리도 가깝다. 도심에서 차로 30분만 달리면 도이수텝 사원이 있는 산자락에 닿는다. 계단을 오르며 마주하는 금빛 불상과 치앙마이 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히피 감성이 살아 있는 예술가 마을 빠이, 백색사원과 고요한 분위기로 유명한 북부 문화 도시 치앙라이 같은 소도시로의 짧은 여행도 추천할 만하다.
음식 또한 이 도시에 머물러야 할 이유 중 하나다. 태국 북부 특유의 향신료가 은은하게 밴 ‘카오소이’는 카레 국물에 바삭한 면을 얹은 대표적인 로컬 요리다. 찐 고기와 허브가 어우러진 ‘칸톡’과 구운 소시지에 레몬그라스를 곁들인 ‘싸이 우아’도 치앙마이의 토속적인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요리다. 채식 식당부터 재래시장, 미니멀한 카페까지 입맛이 까다로운 이에게도 놀라울 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돼 있다. 치앙마이에서는 식사마저도 느긋한 사유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여행 질감마저 바꿔놓는다.
태국 북부 특유의 향신료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카오소이. GETTYIMAGES
반복 가능한 하루를 살게 되는 곳
치앙마이는 머물수록 선명해지는 도시다. 처음엔 그저 한적하다고 느꼈던 풍경이 어느새 익숙한 온도로 다가와 내 삶의 리듬을 조율한다. 일주일 혹은 한 달 이상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저 여행을 좀 더 오래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자, 조금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실험하는 기회가 된다. “지금 여기서 살아볼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되는 도시.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반복 가능한 하루를 살게 되는 곳이기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각은 맑아진다.언제든 출발할 수 있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느슨한 구조의 도시이기에 스쳐 가기보다 머물기를 선택하고, 머무는 동안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수많은 여행자가 ‘살고 싶은 도시’로 꼽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오래 머문다는 것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숙소는 한 달 기준 20만 원대부터 50만 원대까지 다양하고, 교통은 오토바이 렌트나 그랩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마트와 로컬 시장이 가까워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 생활비를 훨씬 절약할 수 있다. 부담 없이 살아볼 수 있는 조건이 이미 잘 갖춰진 도시다.
분주한 일상에서 한 발 비켜 서 있는 시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시 집중할 수 있다. 마음에 주름졌던 부분이 천천히 펴지고, 머릿속 복잡한 질문들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여유로운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치앙마이다. 계획 없이 오래 머물기에 딱 좋은 도시가 우리 삶에도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이곳에서 꼭 살아보길 권한다. 마음이 가장 맑아질 때까지.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