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철 제공
무화과라는 이름은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이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에서 무화과를 보고 “꽃이 피지 않고도 열매를 맺는 이상한 나무 한 그루”라고 ‘열하일기’에 적었다. 정말 그럴까. 사실은 과육 안에 촘촘히 박힌 작은 알갱이들이 일종의 꽃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꽃이 없지만, 인류 역사에서 무화과는 언제나 특별한 열매로 여겨져왔다. 고대 그리스에선 올림픽을 앞둔 선수들이 힘을 보충할 때 먹는 승리의 열매였고, 로마에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결혼식 잔칫상에 올리는 과일이었다.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인 보리수 역시 무화과나무(Ficus carica)에 속한다.
오늘날 무화과는 그 자체로 시선을 끄는 오브제다. 반으로 가르면 붉은 속살이 별처럼 빛나고, 하얀 크림치즈와의 대비나 짭짤한 프로슈토와의 조합은 시각·미각 모두를 자극한다. 샐러드나 타르트에 올려 풍성한 가을을 표현하고, 퓌레 형태로 만들어 음료나 소스에 더하면 사계절 내내 무화과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최근엔 노슈거 아이스크림이나 막걸리와 페어링해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가을에 무화과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화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꽃을 피우듯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계절의 이야기를 은은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무화과 한 알에는 가을의 풍요, 오랜 문화의 상징, 지금의 식탁을 새롭게 제안하는 감각까지 담겨 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던 꽃이 우리 안에서 가을을 피워낸다.
‘무화과 치즈 샐러드’ 만들기
만드는 법
1 무화과는 껍질째 흐르는 물에 씻어 부드럽게 닦은 뒤 반으로 갈라 준비한다.
2 접시에 루콜라를 깔고, 크림치즈와 무화과를 올린다.
3 프로슈토를 곁들여 올린 뒤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시럽을 가볍게 뿌린다.
4 마지막으로 레몬 제스트를 살짝 올리면 풍미가 훨씬 살아난다.
Chef’s Kick
•무화과는 먹기 직전 잠시 냉장해두면 과육이 단단하고 단면이 선명해져 플레이팅이 더욱 돋보인다.
•크림치즈는 바로 쓰지 말고 포크로 살짝 휘저어 공기를 머금게 하면 재료와 부드럽게 섞인다.
•프로슈토가 무화과 단면에 닿게 해 말면 과즙이 배어들어 짭조름한 맛이 한층 살아난다.